안과 밖
고광식
내가 전철 안에 있을 땐 전철은 안의 세계고 전철 밖은 밖의 세계다 나는 전철 안에 있었으므로 마주앉은 당신의 웃음으로 경주마도 만들고 인형도 만들고 솜사탕도 만들어 당신에게 줄 것이다 하지만 창밖의 세계는 소리가 지워져 있어 그것이 두려운 나는 몸을 떤다 그때 나는 안과 밖으로 각인된 갓 태어난 한 마리 조류이므로 내가 전철 밖에 있을 땐 전철 안은 밖의 세계고 전철 밖은 안의 세계다 나의 임무는 고속으로 달려오는 미친 속도를 막는 것 일정한 거리마다 쏟아놓는 소문을 항아리 속에 넣고 영원히 밀봉하는 것 전철 밖에 있는 건 두 다리를 가진 자의 특권이므로 그때 나는 당신에게 내 귀를 떼어줄지도 모른다 전철은 공간을 찢으며 달린다 안과 밖을 나누는 고속의 전철이 커다란 항아리 앞에 정차한다
― 『외계 행성 사과밭』, 파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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