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고래
김산
나는 멕시코의 따뜻한 바하칼리포르니아 해안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컸던 나는
큰 바다에 몸을 눕히고 물의 출렁임을 온몸으로 읽어야만 했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 달라붙었는지 흰 따개비들과 바다벼룩이
얼굴과 등 위에서 작은 분화구처럼 열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머니! 이 여드름을 당신의 지느러미로 시원하게 짜주세요
얼마나 더 많은 상처들을 거느려야 바다와 한 몸이 될 수 있을까요
나는 크릴새우와 백상아리와 포경선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왼발이 오른발을 오른발이 왼발을 끌고 가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어머니는 큰 바다에 몸을 맡기면 가자는 쪽으로 그 어느 곳이든
맘껏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큰 입을 벌리고 갸우뚱거릴 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나는 왜 태어났는가
태어나자마자 긴 머리칼도 없이, 흰 소복도 없이,
유선형의 해저 귀신이 되어 유령처럼 살아야하는가
어느 날, 바깥세상이 궁금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직립을 한 적이 있었다
작은 요트 위에 탄 일가족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물 위에 떠있는 것을 보면, 모른 척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이가 까르륵 웃으며 손을 내뻗었기에 내 등을 내주었다
아이는 내 등에 핀 열꽃을 작은 손으로 더듬으며 어루만져 주었다
아이의 작은 손바닥에서 옅은 지문이 나의 온몸을 파고 들어왔다
언젠가 내가 살았을 따뜻한 육지의 기억이 한낮의 윤슬로 빛났다
사람들은 나를 귀신고래라고 부른다 악마의 고기라고도 부른다
흰 따개비들과 바다벼룩을 주홍글씨처럼 온몸에 붙이고 사는 나는
오늘도 잠수함처럼 바다 깊은 그곳에 숨어 바다와 함께 역사한다
이제는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가며 긴 한숨을 내뱉었을,
그 항로를 따라 세상에서 가장 납작 엎디어 큰절을 올린다
칠흑으로 어두운 밤, 측량할 수 없는 이 깊은 바다의 모든 생명들이
모래돗자리를 깔고 죽은 얼굴들을 하나둘 불러 모은다
나는,
그 옛날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며,
바다 속에 흩뿌린 슬픈 뼛가루다
태어날 때부터 검버섯이 가득한,
明明白白한 바다의 귀신이다
― 2017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대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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