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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18 _ 홍성란의 「내일은 안녕」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4. 2. 2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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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안녕

 

홍성란

 

알 수 없는 어둠에 잠길 줄 알았다면 행여 말했을까 이 나이쯤엔 아픈 거라고 아, 안녕 아프지 말고 나와 같이 안녕

 

안 아픈 데 없는 세상은 널 가두었는데 이런 약속도 있나, 코 막고 입 가리고 말갛게 두 손을 씻고 나와 같이 안녕

 

호랑가시나무 지팡이 너에게 쥐여주고 호랑가시나무 가지 문간에 걸어두리 헐렁한 거리마다 안녕 나와 같이 안녕

 

언제였던가 이 길, 너와 걷던 이 길 벚꽃 귀룽나무꽃 다들 반짝이는데 하느님 너그러운 눈빛도 천천히 가는데

 

홍성란, 매혹, 현대시학,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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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고행이 내일을 말해줄 수 있을까. 창밖으로 펼쳐지는 우리의 현실은 매일 불안과 맞서고 있다. 아름다운 은유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우리는 상실과 몰락, 실패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종종 길을 찾기 위해 길을 잃어야 하는 당혹감 혹은 혼돈과 싸우기도 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파고드는 외로움이나 두려움의 크기에 비례한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결핍감이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좁히면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무수한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아정체성을 찾으면서 비로소 진실된 나에게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다.

안녕이라는 말에는 뭉클함이 있다. 안녕은 아무 탈 없음을 의미하는 한자어인 동시에 한국에서 흔히 쓰는 인사말이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사용하는 인사말로 주로 만날 때는 안녕한지를 묻고, 헤어질 때는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는 만남의 공간 속에 머무르다가 이원화된 공간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이는 안녕이라는 의미가 제시하는 딜레마적 상황을 그대로 담는다.

홍성란 시인의 시 내일은 안녕에 등장하는 상황들은 암흑의 경계를 허물지 못한 채 안녕이라는 의문을 품고 있다. “알 수 없는 어둠나와 너를 지배하는 권력자인 셈이다. “이 나이쯤엔 아픈 거라고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서로의 곁에서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안녕은 또 다른 안녕을 반문하게 된다. “안 아픈데 없는 세상은 우리를 가두었다. “코 막고 입 가리고 말갛게 두 손을 씻고서로의 안녕을 약속하는 것은 일종의 견딤인 것이다. 행복과 평화를 의미하는 호랑가시나무 가지 문간에서 우리가 외치는 안녕의 구호는 줄곧 오늘을 빠져나와 헐렁한 거리에 퍼진다. 우리는 시간을 욕망하는 동시에 현실로 돌아오는 행위를 반복하며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벚꽃 귀룽나무꽃이 다시 얼굴을 드러내는 깊은 기다림을 꿈꾸면서 나와 너에게 건네는 굳건한 확신의 말이 여기 있다. “나와 같이 안녕”.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에 선정되었다.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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