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in> 신간 소식
정지윤 기자
올해로 등단 45년을 맞는 이승은 시인이 새 시조집 『분홍입술흰뿔소라』를 도서출판 작가 기획시선으로 출간하였다. 이승은 시인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9년 제1회 〈만해백일장〉 장원, 그해 KBS 문공부 주최 〈전국민족시대회〉 장원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 『첫, 이라는 쓸쓸이 내게도 왔다』 『어머니 尹庭蘭』 『얼음동백』 『넬라 판타지아』 『꽃밥』 『환한 적막』 『시간의 안부를 묻다』 『길은 사막 속이다』 『시간의 물그늘』 『내가 그린 풍경』, 시선집 『술패랭이꽃』이 있으며, 이영도시조문학상, 중앙일보시조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백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승은 시인의 새 시조집 『분홍입술흰뿔소라』는 5부로 나뉘어 총 71편의 가편들을 수록하였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조는 모두 해외에서 뜨겁게 존재하는 “목숨”들을 만나고 온 체험의 산물이라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데뷔 때나 지금이나 “시조의 항심(恒心)에는 변함이 없다”는 “그 말씀을 어줍게 또 받아 적는다”는 이승은 시인은 가람 이병기의 독보적인 금강산 기행시조를 뛰어넘어 세계화 시대를 여는 새로운 단계의 ‘신’ 미학을 선보였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문학평론가) 교수는 “이 시조집은 가람 이병기, 외솔 최현배, 자산 안확 같은 이들의 ‘기행시조’와 확연히 다른 세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분홍입술흰뿔소라』는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기행시조집”이라고 해설에서 언급했다. 또한 “이 시조집에서 “필사적”인 “목숨”들에 얽힌 이야기를 이끌어냈지만 수록된 많은 작품들은 시인이 넓은 세계에서 우연히 마주친 외로우면서도 자유로운 존재의 안부들“을 담았고, “새로운 단계의 『분홍입술흰뿔소라』는 그 아름다운 이름만큼 자유롭고 탐스러운 존재들에 훌쩍 더 다가선 ‘신’ 미학의 시조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했다.
문태준 시인은 “부드럽고 감도 높은 서정의 힘이 느껴”지는 이 시집을 읽노라면 “기억의 잔양(殘陽)을 바라보는, 뒤척이는 옛 숨결을 듣는 시인의 예민한 시안(詩眼)을 주목하게 된다”며 “이국의 땅에서도 시심(詩心)을 탑처럼 쌓아 올릴 수 있다니 놀랍다”고 평가했다.
독자들이여 어디로, 어떤 여행을 꿈꾸는가. 낯선 여행지에서도 서늘하게 빛나는 이승은의 『분홍입술흰뿔소라』 한 권 챙겨 들고 그녀가 읊어주는 시조의 메타포에 한 번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시집 속 시 맛보기>
저 꽃처럼
이승은
시들해진 감자 서너 개 새들이나 먹으라고
지난해 뒷담 밑에 아무렇게 던졌는데
무성한 잎사귀 달고
피어있네
연보라 꽃
순간 흐려지며 눈 끝에 매달리는
일렁이는 환절기여 못 견딜 낯빛이여
그대가 날 잊으려할 때
저리 한번
피었으면,
― 『분홍입술흰뿔소라』, 작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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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
이승은
1.
텍사스 35번국도 방향은 한 줄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검은 개의 역주행
클랙슨 파열음에도 겁 없이 달려든다
2.
승강장에 진입하는 열차의 물빛 소리
의자 위 먹구름이 선로로 뛰어내렸다
열차는 정지했으나 이유는 낭자했다
바람을 끌어 덮는 하늘 끝을 보았다
층층이 덧칠하며 짙어오는 석양 아래
뜨겁게 무거워지다 거칠게 식어갔다
― 『분홍입술흰뿔소라』, 작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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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놀룰루 일기
이승은
해가 환한 앞뜰 가득 빗줄기 들었습니다.
바람도 눈 가리고 비켜서는 순간입니다
초록이 아가들처럼 목욕 중에 있습니다
떨어진 꽃잎 위로 발꿈치 살짝 듭니다
꽃신 삼아 신느라고, 오종종 걷습니다
상냥한 체온까지도 이 아침 선물입니다
새들도 숲에 들어 부리를 숨깁니다
서울 소식 감감하여 카톡창을 띄웁니다
아무도 노크한 흔적 남기지 않았습니다
― 『분홍입술흰뿔소라』, 작가, 2024.
이승은 시인의 시조집 『분홍입술흰뿔소라』 작가 기획시선으로 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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