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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윤 시인의 세 번재 시집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에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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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4. 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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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슬픔과 죽음을 넘어서는 웅숭깊은 긍정의 세계

 

 

 

하린 기자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2006년 전태일문학상을 받고, 2007년 계간지 시안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명윤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를 걷는사람 시인선으로 출간했다.

 

이번에 펴낸 이명윤의 시집은 절망과 슬픔과 죽음을 넘어서는 웅숭깊은 긍정의 세계로 가득 차 있다. 수록작을 한편 한편 읽게 되면 아득하지만 선명한 슬픔이 울음의 발톱을 세우고 걸어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발톱은 상처를 입히고 부각시키는 발톱이 아니다. 낯익은 삶의 면면을 다정한 시선으로 묘파하는 일에 능숙한 시인이기에 애틋한 시선을 슬픔의 배면에 깔고 화자의 언술이 다가오게 만들었다.

 

이명윤 시인은 세계를 톺아보는 특유의 조심스럽고도 섬세한 시선으로 자신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마음을 들여다 본다. 가령 최선을 다해 걷는 하루는 어떤 감정일까”(안녕 하셉)를 궁금해하고,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사람으로/눈부시게 완성되는”(눈사람) 이가 감내해 왔을 감각을 가만히 떠올려 보는 식으로 슬픔이 가진 속성을 섬세하게 읽어 낸다.

 

시인은 다감한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울림뿐만 아니라 국가 폭력으로 고통받은 생의 윤곽까지도 세밀하게 천착해낸다.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지만 혁명은/심장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는 시를 쓴 미얀마의 한 시인이/무장 군인에게 끌려간 다음 날,//장기가 모두 적출되고 심장이 사라진 채/가족의 품으로 돌아”(사라진 심장)오는 비윤리적인 세계에서, “아직도 그때 세상이 진압하려 한 것이/무엇인지”(오빠들이 좋아 산동입니다) 알지 못한 채로 남겨진 이에게 반복되는 절망과 슬픔과 죽음, “얼마나 많은 꽃잎을 덮어야”(사라진 심장) 감히 채울 수 있는 것인지 고심하면서.

 

다만 시인은 세계를 둘러싼 의문과 불확실함, 실재하는 폭력을 피하지 않고 대면함으로써 죽음을 완성하는 삶의 간절함을 이야기한다. 이때 이명윤이 그려내는 심연은 곧 위대한 철학이 아니라 울음과 쓸쓸함과 서러움과 슬픔, 외로움과 미안함과 식은땀으로 엮은 그물망”(김수우, 추천사)이며, 현실을 감내하기 위해 필요한 긍정의 힘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삶을 대하는 견고하고도 우아한 태도로 귀결된다.

 

이명윤의 시 세계는 절망과 슬픔과 죽음을 매우 혹독하게 겪은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생성과 긍정의 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이명윤의 작품이 보여 주는 조용하고 따뜻하고 웅숭깊은 긍정의 세계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생성을 자신의 시적 윤리학으로 선택한 데서 온다는 점을 짚어내며, 자연 대상에의 감정이입과 물아일체의 고요한 서정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시법(詩法)에서 과감히 벗어날 수 있는 시인의 힘을 포착해낸다.(김재홍 평론가)

 

독자들이 이 책을 한 시간 만이라고 펼친다면,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조명하는 여리고도 강한 마음이 건네는 안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이명윤

 

사람이 죽어도 얼마 동안, 귀는 싱싱한 이파리처럼 살아 있다고 한다. 심장도 멎고 팔다리도 고무처럼 축 늘어졌는데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눈도 뜨지 못하고 입술은 또 거멓게 변해 가는데 신기하게 살아 있다고 한다. 친구들 발자국 소리? 엄마가 부르는 소리? 무슨 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흘러들기를 기다리는 건지,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것인지, 모든 불이 꺼지고 칠흑 같은 어둠만 깃들어 차갑게 숨이 식어 가는 빈집에서 귀는 끝내 고집을 부리며 저 홀로 남아 도둑고양이처럼 세상을 엿듣고 있다고 한다.

이명윤,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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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이 사는 집

 

이명윤

 

그날 복지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노인이 느닷없는 울음을 터뜨렸을 때 조용히 툇마루 구석에 엎드려 있던 고양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단출한 밥상 위에 내려놓은 놋숟가락의 눈빛이 일순 그렁해지는 것을 보았다. 당황한 복지사가 아유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하며 자세를 고쳐 앉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흐느낌은 오뉴월 빗소리처럼 그치지 않았고 휑하던 집이 어느 순간 갑자기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과 벽시계와 웃옷 한 벌과 난간에 기대어 있던 호미와 마당가 비스듬히 앉은 장독과 동백나무와 파란 양철 대문의 시선이 일제히 노인을 향해 모여들어 펑펑,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이명윤,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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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심장

 

이명윤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지만 혁명은

심장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라는 시를 쓴 미얀마의 한 시인이

무장 군인에게 끌려간 다음 날,

 

장기가 모두 적출되고 심장이 사라진 채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어느 컴컴한 건물에 심장을 남겨 두고

정육점에 걸린 고깃덩어리처럼

거죽만 헐렁헐렁 남은 몸이 돌아왔다

 

심장이 사라진 몸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뉴스에선 말해 주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꽃잎을 덮어야 저 슬픔이

채워질 수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쓸쓸히,

아무도 모르는 먼 길을 다녀왔다는 것

 

굶주린 하이에나가 이빨을 드러내는

어둠과 공포의 길

인간의 심장이 검은 봉지에 담겨

버려지는 절망의 길 위에서

 

홀로 우는 심장, 미얀마여

 

그 깃발,

그 눈동자,

그 외로움.

이명윤,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 2024.

 

이명윤 시인의 세 번재 시집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에서 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이명윤 시인의 세 번재 시집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에서 출간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2006년 전태일문학상을 받고, 2007년 계간지 《시안》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명윤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를 걷는사람 시인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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