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윤 기자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임채성 시인의 네 번째 시조집 『메께라』가 열린시학정형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임채성시인은 경남 남해 출생으로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조)로 등단했다. 김만중문학상(시·시조) 우수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정음시조문학상, 백수문학상, 한국가사문학대상 등을 수상하였고,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2010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왼바라기』(2016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야생의 족보』(2021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및 시조선집 『지 에이 피』 발간. 〈21세기시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메께라』는 제주 4·3항쟁의 현장을 시조의 3·4조로 승화시킨 시조집이다.
제주도의 4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붉고 슬프다. 한국의 비극적인 현대사라 할 수 있는 제주 4·3항쟁의 희생자를 여전히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임채성 시인은 작정하고 제주 4·3항쟁의 현장을 하나씩 살펴가며 시조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제주도의 수려한 풍경과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낯선 이미지들을 배경으로, 임채성 시인의 이번 시조집은 애절한 슬픔을 어떻게 승화시켜야 할지 그리고 시조의 리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독자에게 제주 4·3항쟁을 추모하고 희생자를 기억해야 할 당위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고명철 문학평론가(광운대 교수)는 “임채성의 시집 바탕에는 해방공간의 제주 공동체에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4·3항쟁의 주체뿐만 아니라 이와 분리할 수 없는 제주의 자연과 일상에 대한 순례(또는 답사)의 시적 수행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하여 그의 이번 시집에서 눈여겨볼 것은 “무너진 산담 앞의 풀꽃들과 눈 맞추며/ 4·3조, 때론 3·4조로 톺아가는 제주올레”를 함께 걸으면서, “온몸에 흉터를 새긴 현무암 검은 돌담/ 섬 휩쓴 거센 불길에 숯검정”을 묻힌 “팽나무 굽은 가지가 살풀이춤 추”(「올레를 걷다」)며, 섬의 상처를 응시·위무·치유하는 시의 감응력이다. 이것은 ‘시인의 말’에서, “씻김의 해원상생굿 그 축문을 외고 싶다”는, 이번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시적 재현으로 실감된다. 여기에는, “죽어서 할 참회라면 살아서 진혼하라// 산과 들 다 태우던 불놀이를 멈춘 섬이// 지노귀 축문을 외며/ 꽃상여를 메고 간다”(「제주 동백」)가 함의하듯, 4·3항쟁의 영령들에 대한 축문으로서 시 쓰기의 진혼이 이승에서 봄의 새 생명의 불길을 타오르게 한다.”라고 평했다.
현기영 소설가는 추천사를 통해 “시인 임채성은 화산섬의 대지에 엎드려 땅속의 웅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혔어도 원한 때문에 결코 삭지 않고 푸른 피로 살아있는 수만 영혼들의 음성이다. 그 음성을 들으면서 시인은 절실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수만 영령의 그 원한을 달래면서, 그 원한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간절한 진혼곡”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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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제주 동백
임채성
바람에 목을 꺾은 뭇 생령이 나뒹군다
해마다 기억상실증 도지는 봄 앞에서
상기된 얼굴을 묻고
투신하는 붉은 꽃들
죽어서 할 참회라면 살아서 진혼하라
산과 들 다 태우던 불놀이를 멈춘 섬이
지노귀 축문을 외며
꽃상여를 메고 간다
- 『메께라』, 고요아침,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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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를 걷다
임채성
걸음발이 무직하다
순례인 듯 답사인 듯
무너진 산담 앞의 풀꽃들과 눈 맞추며
4·3조, 때론 3·4조로 톺아가는 제주 올레
총탄 맞은 자국일까
창칼에 찔린 상처일까
온몸에 흉터를 새긴 현무암 검은 돌담
섬 휩쓴 거센 불길에 숯검정이 됐나보다
오름을 감아 돌다
바다로 틀어진 길
바람이 봄을 밀고 골목 안을 배회할 때
팽나무 굽은 가지가 살풀이춤 추고 있다
- 『메께라』, 고요아침,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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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동백동산
임채성
하르방은 피라 했고, 할망은 불이라 했다
추깃물에 목을 적신 까마귀 혓바닥처럼
울 아방 산담을 따라
비명처럼 지는 꽃들
붉은 꽃잎 어디에나 검은 멍이 들어 있다
그 겨울 시반屍斑 같은 들고양이 호곡소리
곶자왈 야만의 숲이
바람도 없이 출렁인다
화산도의 눈물인 듯 마르지 않는 먼물깍*
벙글다 진 꽃봉오리 두 손으로 받쳐 들면
봄볕에 말문이 트인
동박새가 홰를 친다
*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의 가장 큰 습지
- 『메께라』, 고요아침, 2024.
임채성 시인의 네 번째 시조집 『메께라』 열린시학정형시집으로 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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