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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는 시인’ 고성만 시인이 펼치는 시의 진경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4. 5. 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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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달려가는 상상력과 생의 의미를 묻는 화두

 

 

하린 기자

 

고성만 시인의 신작 시집 파씨 있어요?가 시인의 일요일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26년 동안 8권의 시집(시조집 1권 포함)을 출간하면서도 태작 없이 매번 시적 밀도를 유지하고 사유의 깊이를 더하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는 우주로 달려가는 상상력과 생의 의미를 묻는 화두를 담았다.

 

해설을 쓴 차창룡 시인은 고성만 시인을 일컬어 시를 사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대학 문학동아리에서 만났던 선배 고성만 시인과에 일화를 들어 다음과 같이 언술했다. “시는 기성 시인들을 대충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삶을 통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고성만의 이 말이 그의 시를 명쾌하게 관통하는 시론적인 성격을 갖는데, 그 지평에 맞춰 그가 창작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시골에서 나서 도시로 나와 살아온 또래의 그들처럼 고성만 시인이 지닌 꾸준함과 성실함은, 삶에서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일상에서 마주한 슬픔과 생채기를 시적 자양분으로 삼아 모순된 정서와 왜곡된 자연 질서, 삶의 순리를 회복하고자 한다. 이것은 어떤 사명이나 시대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저 그의 삶과 시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면서 만들어지는 진경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경험들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는 산 넘어 바다 건너 우주로 달려가는 상상력이 있고, 생의 의미를 묻는 다양한 화두가 살고 있다. 그 화두는 통일된 의미로 모아지기보다는 의문이 분화되는 양상으로 던져진다. 닫힌 결론이 아니라 열린 결론 같은 화두에 독자들은 도대체 무슨 뜻이지? 곱씹어 보다가 각자 만의 감성 지점과 감동 지점을 만나게 된다. 그만큼 여백이 많다고 할 수도 있고, 시의 숨구멍이 풍부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전 시집을 통해, 살아가면서 인간이 느끼고 맞닿아 있는 다양하고 원초적인 슬픔을 단단하고 아름다운 무늬로 표현해내고 있다는 평을 받았던 고성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는 한층 더 따뜻하고 감동적인 시편들을 선보인다. 이 따뜻함은 메시지가 아니라 간략한 상황이나 풍경, 이미지만으로 그려낸다. 독자 스스로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시인은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소통 부재의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의미를 헤아리고 짐작해 보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방식을 파씨 있어요?는 자연스럽게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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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갑자기 비를 만났어

 

고성만

 

 

산행 중 느닷없이 빗방울 떨어진다 급하게 찾아든 큰 나무 밑 먼저 와 있던 사람들 틈 비집고 들어간 자리

 

미안해요 하면서 뛰어든 여자 모락모락 김 나는 목에 걸린 금빛 십자가 행여 내 입김 닿을까 봐 숨소리조차 조심하는데 더욱더 큰 가지 벌리는 진초록

 

흙먼지 가라앉히며 후드득 소나기 지나간 후 무지개다! 외치는 소리에 가슴이 저절로 뛰던,

 

왜 갑자기 떠오르는 것일까 꽤 오래전의 그 일

― 『파씨 있어요?, 시인의 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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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는 이별을 꿈꾼다

 

고성만

 

얼굴에 매화가 피었다는 여자에게서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젊어서는 남자를 주무르고 늙어서는 음식을, 조금 더 늙어서는 말랑말랑해진 기다림을 주무른다는 그 여자의 남편은 외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먹은 것도 없이 자주 체하던 나는 죽은피를 빼기 위해 그 여자의 집에 들렀다 아직 이별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알지 못하던 시절

 

산동네 맨 꼭대기 그 집 앞에는 환한 별밭 뒤 언덕에는 새털구름 떼 손끝이 흘리는 냇물 분홍으로 내리는 눈

 

풀이 자라기 시작한 뒤란 은은한 향기 퍼지는 날

 

남편 없이 낳은 딸의 얼굴에 매화 꽃잎이 번졌다

― 『파씨 있어요?, 시인의 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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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파는 남자

 

고성만

 

거의 매일 붉고 푸른 다라이 앞에 놓고 앉은 사내의 얼굴에 잠의 씨앗이 덕지덕지합니다 아주 오래 기다렸으므로 이미 성불을 하였거나 도를 통하였을 법한데 소나기 내리는 것도 알지 못하고 가로등에 기댄 채 단잠 빠졌던 사내는 투덜투덜 비닐을 씌웁니다 비록 원산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콩과 식물은 넌출넌출 기어오르고 수수는 초록 줄기 밀어 올리고 파씨 있어요?” 납작 눌린 아랫도리 황급히 털고 일어서려는데 없으면 관두세요그냥 가 버리는 젊은 여자가 마냥 섭섭하여 파씨스트, 파씨스트, 중얼거려 보는 오후 브래지어 팬티 늘어놓은 김 씨와 소주 안주 내기 장기 한 판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으로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 『파씨 있어요?, 시인의 일요일, 2024.

 

방탄소년단(BTS) 제이홉의 국어선생님, 고성만이 펼치는 시의 진경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방탄소년단(BTS) 제이홉의 국어선생님, 고성만이 펼치는 시의 진경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의 은사로도 알려진 고성만 시인의 신작 시집 『파씨 있어요?』가 시인의 일요일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26년 동안 8권의 시집(시조집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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