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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배 시인의 첫 시집 『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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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4. 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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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돌볼 줄 아는 슬픔과 따뜻한 숨결의 시

 

 

하린 기자

 

2019영남일보문학상으로 등단한 서진배 시인의 첫 시집이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심사를 맡았던 이하석 시인과 이경수 교수는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을 담담히 말하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라고 언급하며, 등단작 이름에 대해 서정시의 전통적 주제 안에 놓여 있으면서도 자기 삶과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인의 예민한 시선을 높이 평가했다.

 

서진배의 시는 주로 결핍에서 온다. 아픈 가족사와 그 중심에 있는 어머니, 그리고 벗어날 길 없는 가난. 흔하다면 흔한 사연일 수도 있지만 결핍의 시간을 지나며 거기서 꽃핀 것이 서진배의 시다. 그런데 서진배 시에 돌올한 개성을 입힌 것은 마음을 돌볼 줄 아는 예민한 시선에 있다. 결핍에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감각화 된 시선은 같은 시간을 견딘 독자에게만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서진배의 시에 짙게 드리운 슬픔과 페이소스는 삶의 고단한 체험에서 빚어진다. 가난에 익숙해진 서민들이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사소한 순간들에서 서진배 시인은 시적인 순간을 발견한다. 서정시가 오랫동안 내내 지켜 온 자리를 서글프지만 담담하게 그의 시가 지키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는 담담한 전언은 지독한 슬픔과 지난한 아픔의 시간을 견디며 생성된 것이다.

 

따라서 서진배 시인의 첫 시집에 지배적으로 흐르는 정서의 중핵은 슬픔이다. 슬픔은 누군가를 상실한 체험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결핍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감각이나 버림받은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서진배의 시는 그런 이유로 흘러나오는 슬픔을 예민하게 감각하지만 결코 감상적으로 슬픔에 젖어 들어 음산한 분위기로 매몰되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슬픔을 느끼는 결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사실을 시로써 보여준다.

 

오랜만에 독자들은 슬픔이 마음을 돌보는 힘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를 통해 느끼게 될 것이다. 따뜻한 숨결의 시를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봄날에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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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이사2

 

서진배

 

셋집으로 이사하고 너는 가장 먼저 묻는다

 

이 집에도 못을 마음대로 박을 수 없겠지?

너는 벽을 똑똑 두드리며 사나운 벽과 순한 벽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우리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못이 튈까, 망치로 못을 때릴 때마다 눈을 감으면서도 오래 때릴 수 있는 우리의 벽을 가진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벽에 못을 박을 수 없는 셋집에서는 우리의 액자를 높은 곳에 걸지 못하고 바닥에 기대어 놓아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액자 속에서도 어깨를 기대는 버릇이 있는 거라고,

 

왜 우리는 이미 박혀 있는 못에만 시계를 걸어야 하냐고,

이 집에 세 들어 살다 간 사람들은 왜 같은 높이에 걸린 시간만 살다 가야 하냐고,

 

우리가 새로 못을 박는다면 집을 떠날 때,

새로 박은 못을 모두 빼고 떠나야겠지?

못을 뺀 자리에 껌이라도 붙이고 떠나야겠지?

 

마음대로 상처 낼 수 없는 집은 우리의 집이 아니라고,

서진배, 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 시인의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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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서진배

 

거 봐라 네가 가진 자루가 작더라도 왼쪽 오른쪽 나누어 담으면 너를 다 담을 수 있잖니,

 

너를 붙잡을 곳 마땅치 않아 들고 걸어가기 어려울 때는 너를 자루에 담아 들고 걸어가면 한결 편할 거야

 

방으로 드는 식당에서 너를 구멍 난 자루에 담아 왔다는 걸 발견하는 순간 너는

그 구멍으로 줄줄 새는 너를 들키고 싶지 않아 발을 숨겨야 할 거야

 

자루를 아무리 당겨 올려도 자루는 내 무릎도 담지 못할 뿐인데요

 

네 발만 담아도 너를 자루에 담는 거란다

황금색 계급장을 찬 어깨 앞에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것만으로도 떨고 있는 너를 감출 수 있거든,

 

쓰레기봉투에 너를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 발을 넣고 밟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야

 

유리 거울처럼 깨진 너의 얼굴 조각들이 그 안에 담겨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러니,

 

너를

나누어 담아라

눈물도 왼쪽 눈 오른쪽 눈 나누어 담으면 넘치지 않잖니,

서진배, 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 시인의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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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동 콩나물국밥집

 

서진배

 

밥풀을 얼른 주워 입에 넣는 건, 누구한테도 당신의 가난한 시간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밥풀을 얼른 주워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입에 넣는 건, 바닥에 떨어진 밥풀이 제가 대접 밖으로 밀려난 걸 눈치챌 새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밥풀은 제가 대접 밖으로 밀려나 식탁에 흘린 밥풀이라는 걸 알게 되면,

밥풀이 밥풀떼기가 되는 기분일 테니까요

 

당신은 밥풀의 기분을 아는 사람

 

대접 속에서 식은 밥이 콩나물과 얽히고설키며 간장의 맛으로 물들어 갈 때,

밖으로 밖으로 밀려난 밥풀

 

그 밥풀의 허연 기분을 아는 사람

 

얼마나 푸짐하게 밥을 담는지 흘린 밥풀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당신

 

밥을 달래듯 비비래도,

배곯은 사람이 누굴 달랠 시간이 어디 있겠니,

침이 고인 웃음을 웃는,

 

그런 당신을 얼른 주워 입에 넣고 싶은,

서진배, 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 시인의일요일, 2024.

 

 

서진배 시인의 첫 시집 『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서진배 시인의 첫 시집 『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 시인의일요일에서

하린 기자 2019년 《영남일보문학상》으로 등단한 서진배 시인의 첫 시집이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심사를 맡았던 이하석 시인과 이경수 교수는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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