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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독자 곁으로 돌아온 매혹과 몽환의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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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9.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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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하린 기자

 

2010년 창비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재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가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무중력 화요일(창비, 2015)을 선보인 지 9년 만이다. 첫 시집에서 김재근은 기묘하고 대담한 발상으로 낯선 감각과 이미지의 세계를 펼쳤다는 평과 함께 우리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다음 시집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시집에서도 김재근은 여전히 개성적인 심미적 세계의 매혹과 한층 더 농익은 시적 사유를 보여준다. 음울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개성적인 화법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거침없는 그의 상상력은 우리 문학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진경을 펼친다. 평범해 보이지만 뛰어난 은유적인 언어 구사력, 견고한 시의 구조, 따뜻한 현실 의식도 눈여겨 볼만하다.

 

김재근이 첫 시집에서 사랑의 불확실성에 부유하는 유령의 사랑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사랑의 한계와 균열과 운명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시들은 삶과 사랑의 국면들을 포착해 내는 고독한 자기 응시와 생의 전모를 통찰하는 깊은 사유로 이루어져 있다. 사유와 은유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감각을 잘 포착하면서 낯선 것을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끄는 힘을 보여준다.

 

김재근은 등단 이후 한결같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가 가미한 매혹적인 시편들을 선보였는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호소력 짙게 다가오던 그의 시 걸음은 이번 시집에서 더욱 노련한 면모와 묵직한 면모를 더한다. 첫 번째 시집보다 시적 공간을 가까운 현실에 두려고 한 점 때문에 독자들이 갖는 공감의 폭도 넓어졌다.

 

한편 김재근 시인은 건설 현장의 토목 감리를 하고 있다. 그는 시와 건설의 성취 과정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삭막한 백지 위에 첫 삽을 떴을 때, 집중 끝에 한 편의 구조물이 완성되었을 때, 그 기쁨과 자부심이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그는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시가 아름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에 예술의 존재 가치가 있다며, 이 아름다움은 처절할 수도 있고 맑을 수도 있는, 감각을 깨우는 그런 감정을 가진 아름다움이며, 이를 위해 자신은 아름다운 시적 공간을 창조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아름다운 시적 공간에 살아 있는 시어가 꿈틀거릴 때, 시는 스스로 빛나며 살아 움직인다고 믿는 김재근 시인. 시적인 것에 대한 갱신과 개성적인 시적 영토를 개진하는 치열함이 이번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에 오롯이 담겨 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장마의 방

 

김재근

 

여긴 고요해 널 볼 수 없다

메아리가 닿기에

여긴 너무 멀어 몸은 어두워진다

시간의 먼 끝에 두고 온

목소리

하나의 빗소리가 무거워지기 위해

몸은 얼마나 오랜 침묵을 배웅하는지

몸 바깥에서 몸 안을 들여다보는

자신의 눈동자

아직 마주친 적 없어

침묵은 떠나지 않는다

말없이 서로의 몸을 찾아

말없이 서로의 젖은 목을 매는 일

빙하에 스미는 숨소리 같아

잠 속을 떠도는 몽유 같아

몸은 빗소리를 모은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시인의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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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김재근

 

밤 기차는 어둡고 어두울수록 혼자지

풍경은 빠르고 차창에 얼굴만 남겠지

 

먼 밤을 두드린다

 

아무도 몰래

아무도 들리지 않게

아무도 오지 않게

 

밤을 건너는 눈 속 레일 소리

여기는 누구도 내리지 않아

누구도 탈 수 없지

 

해변에는 바람 불고 모래알 흘날리는데

얼굴을 떠나는 표정들

밤의 울음들

 

해변은 어디까지 검어질까요

언제 내려야 할까요

여기가 천국의 계단이라면

검은 몸을 벗어둘 텐데

물결 위에 누워 실핏줄에 흐르는 물결 소리 들을 텐데

 

무릎에 올려놓은 손가락

 

암전해진다

 

식은 거니,

죽은 거니,

이제 검은 밤이.

파도 너머로 데려갈 텐데

―『같이 앉아도 될까요, 시인의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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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발

 

김재근

 

풀벌레 잠속에서 여름은 시작되었다

 

바람을 놓친 풍향계의 느낌으로

 

떠오르는 잎사귀

 

계절은 느려진다

몸속에 흐르는 고요

고요가 다다를 때쯤

여름은 시간 너머로 몸을 데려갔다

 

고요를 입는 시간

고요를 점멸하는 시간

 

시간 너머를 걷기 위해 몸은 벗는다

 

고사목 사이 벗어놓은

숲을 떠도는 죽은 새들의 발들

 

여름이 질어지면 누구도 숲을 빠져나올 수 없겠지

 

귓속이 뜨거워

한낮을 알게 되듯

미로 속으로 미아가 찾아들 듯

몸은 잊기로 한다

 

밤이 오래 머물면

그림자는 몰래 몸을 건너와 자신의 식은 발을 보여 주었다

 

낮이 밤을 부르는 착각

한낮의 태양이 그림자를 용서하듯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환청처럼

죽은 새는 저녁을 날고

풀벌레의 잠속으로 여름은 발자국을 옮겨 놓았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시인의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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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독자 곁으로 돌아온 매혹과 몽환의 이중주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2010년 창비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재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가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무중력 화요일』(창비, 2015)을 선보인 지 9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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