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분홍 기자
이명우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 『관리소장』이 파란시선으로 출간됐다. 『관리소장』에는 「지출명세서」 「관리소장」 「이티」 등 52편이 실려 있다.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난 이명우 시인은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달동네 아코디언』을 발간한 바 있다.
『관리소장』은 「지출명세서」 「직업」 「관리소장」 「노예계약」 「연장 근무」 「불면증」 「공황장애」 등의 시에서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직장인들의 녹록하지 않은 삶과 애환을 담고 있다. “지출은 돈으로만 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말의 지출이 끝나”야 퇴근하는 피곤하고 씁쓸한 현실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지출명세서」). 그의 일과는 “누구에게도 잘 보이지 않을 구석에 쪼그려 않아”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전부인데, “어떤 반항”도 하지 않고 주민들이 던지는 민원을 “덥석덥석 받아 먹”는 종량제 봉투처럼 어느 날 “장렬한 한 봉지의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직업」)하게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를 연상하게 만든다. 돈을 벌어서 온 가족을 부양했지만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뒷방으로 밀려난 현대인의 고독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이 시집은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장인들의 치열한 삶의 궤적이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남승원 문학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도시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기록된 삶의 일지”이며 “강제되는 도시의 논리 속에서도 개별적 삶을 복원하기 위한 분투의 기록”으로 『관리소장』을 요약”한다. 이경림 시인 또한 추천사에서 “그날이 그날인 생은 사실 치욕과 오욕의 연속이었지만 그 속에서 재미와 보람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임을 강조한다.
오늘날 고용의 형태는 평생직장은 없고 ‘평생직업’만 존재한다. 이 시집은 고용이 불투명한 직장인들의 자화상이다. 언젠가 떨어져야 하는 속성을 가진 벚꽃 피는 봄날, 읽기 좋은 시집으로 『관리소장』을 추천한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지출명세서
이명우
지출은 돈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치의 말의 지출이 끝나면 퇴근을 한다.
오늘을 지출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매주 월요일 회의 시간에는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화장실 청소가 잘되지 않았어요.
직원들과 유기적인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직원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요.
그것이 오늘의 지시 사항이 된다.
작년의 지시 사항과 올해의 지시 사항이 똑같다.
365일을 되감으면 내일의 할 일이 나온다.
내뱉은 말이 거절당하면 가난할 때도 있다.
내 급여는 작년과 똑같다.
5%의 인상안을 올렸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작년도 급여와 지금의 급여가 똑같아서 좋다?
그 급여 항목을 보고 오케이 사인을 한다.
이제 신문을 보면 제목만 읽어도 무슨 뜻인 줄 알게 되었다.
말하지 않아서 좋다.
오늘이나 작년이나 그날이 그날이어서 좋다.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밥을 먹는 동안 머리카락이 반백이 되었다.
또 변한 것이 있다면 날씨다.
시간당 100밀리 비가 쏟아진다는 것이다.
비바람이 우산을 뚫고 들어오면 내 마음도 끝없이 펄럭인다.
빗줄기가 파도치는 거리에는 가로등 하나가 나를 인도하고 있다.
말을 하지 않을수록 왜 나는 배가 고픈가.
날은 날마다 저물고
내가 잠자는 동안 시간은 밤새도록 어둠을 벗긴다.
나를 감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관리소장』, 파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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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소장
이명우
그의 몸에 천둥이 들어 있을 줄 그는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들에게 얻어먹고 자란 천둥소리가 그때 그의 몸속에서 요동쳤다고 한다.
벼락을 수십 번 맞고 익은 대추 알처럼 그때 그의 얼굴은 붉게 타고 있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흥분된 목소리는 그의 몸이 스펀지처럼 다 빨아들였다고 한다.
그때마다 그의 팔다리는 덜덜덜 떨면서 그들을 향해 온몸으로 춤을 추었다고 한다.
바람이나 공기나 눈에 보이지 않듯이
그의 소리는 아무리 요란해도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소리는 한 번도 변하지 않고 관례처럼 내려온 것이라 한다.
그들은 늘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관리사무소 급여는 내가 내는 관리비로 받잖아!
도무지 소장이 관리비를 얼마나 해 처먹은 거야!
계단 석재 공사비를 얼마나 부풀려서 해 먹었는지 알 수 없잖아!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천둥소리가
어느 날부터 그의 몸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한다.
그 소리는 그의 몸을 빠져나오려고 구멍이란 구멍을 다 찾아다니다가 이리 부딪고 저리 자빠지며 요란을 떨었다. 어느 날은 태풍에 자동차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마치 쓰나미가 지나가는 것처럼, 그때마다 그는 그 천둥소리를 홀로 맞섰다고 한다.
가끔 가쁜 숨을 쉬면서 그의 입에서 그들의 주장을 맞서는 소리가 나왔지만 그들의 소리를 막기에는 너무 힘이 없어 직원들조차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는 늘 죽을힘을 다해 그들을 막았지만
그들은 태풍을 조정하는 마술사처럼 그의 약점을 잘 다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그는 낙엽처럼 바람 부는 대로 떠돌다가
돌에 나무에 부딪히다가 모서리에 숨어서
천둥이 잠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말했다. 자신의 몸에서 자라나는 천둥소리를 없애는 방법이 있다고.
사람이 죽으면 천둥소리도 사라진다고.
그러면 이생의 사표도 자동으로 수리된다고.
다만 두려운 것은 그 같은 관례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그의 몸은 천둥소리로 가득해 여러 번 사표를 제출했지만,
수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몸에서 자란 천둥소리를 막기에는
몸이 너무 늙었다고 중얼거렸다.
―『관리소장』, 파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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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티
이명우
세면대에 얼굴을 꺼내 놓는다.
물이 출렁거리면서 얼굴을 다 받아들이고 있다.
두 손이 비누를 칠하고 얼굴을 문지르고 있다.
두 손이 미끄러지다가 툭 튀어나온 광대뼈를 꺼내 놓는다.
두 손이 코를 꺼낸다.
두 손이 입을 꺼낸다.
두 손이 두 눈을 꺼낸다.
두 손이 얼굴을 만지니 손님과 주고받았던 웃음 하나가 나온다.
두 손이 얼굴을 만지니 우글거리던 주름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두 손이 얼굴을 만지니 고성과 삿대가 나온다.
두 손이 얼굴을 만질수록 얼굴은 없고 뼈만 남아 있다.
세면대에 물이 떨어진 것들을 본다.
어제까지 생기지 않았던 반점이 툭 떨어져 있다.
목에서 검버섯 하나 자라고 있다.
저건 내 얼굴이 아니다.
저 물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나.
저 눈꼬리에 저장했던 주름이 무슨 말을 하려다 멈춘 것일까.
저 속에 떨어진 표정이 왜 이글거리고 있을까.
또 얼굴 하나가 물 위로 떠오른다.
몰래 숨겨졌던 얼굴이
미끄러지다가 이리저리 펴지다가 다시 우글거린다.
세면대에 물을 내린다.
물이 회오리치면서 주름들을 다 지우고 있다.
얼굴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
―『관리소장』, 파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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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관리소장』 파란시선으로 발간 - 미디어 시in
김분홍 기자 이명우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 『관리소장』이 파란시선으로 출간됐다. 『관리소장』에는 「지출명세서」 「관리소장」 「이티」 등 52편이 실려 있다.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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