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퍼
유선철
두 손을 마주 잡고 계단을 올라가지
잠시만 삐끗해도 하루가 엉키니까
마지막 한 발짝까지
조신하게 내딛지
살가운 눈빛으로 빈틈을 채워가며
안과 밖의 경계를 확실히 그어주지
눈길을 피할 수 있게
체온을 지킬 수 있게
손 놓친 한순간에 양쪽으로 분리되지
하나란 그 느낌도 낯익은 착각일 뿐
몸피가 다 드러나고
바람의 먹이가 되지
―『가히』, 2026,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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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꽉 막힌 추위 속에서 몸을 감싸듯, 양쪽의 톱니가 서로 정교하게 맞물려야만 비로소 안과 밖을 가르고 체온을 지켜내는 하나의 면이 완성된다. 일상의 평범한 사물인 지퍼는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붙들어 매고 살아가는지 그 생존의 은유를 슬며시 내보인다. “두 손을 마주 잡고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이 맞물림의 과정은 혼자가 아닌 타인과의 공존과 연대가 지닌 온기를 상징한다. 만약 어느 한쪽이라도 삐끗하거나 손을 놓치는 순간, “하나란 그 느낌도 낯익은 착각일 뿐” 곧바로 양쪽으로 분리되어 매서운 “바람의 먹이”가 되고 마는 법이다.
지상의 모든 생명 중에 홀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겠다는 오만이나 각자도생의 태도는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취약성이 된다. 지퍼가 마주 물려 손발이 맞아야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듯, 인간 역시 서로 의존하고 결속할 때 비로소 찬바람을 막아내는 최소한의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다. 틈을 내어주지 않는 살가운 연대 속에서만 삶의 온기가 지켜진다는 사실을, 이 투박하고도 정교한 사물의 도구적 지혜는 조용히 일깨워준다.
특히 현대 사회가 개인의 자립과 효율성을 지상 과제로 내세울수록, 타인과의 관계는 점점 파편화되고 저마다의 섬처럼 고립되기 쉽다. 그러나 지퍼가 상기시키듯 온전한 자아란 결코 홀로 완성될 수 없으며, 서로의 결핍을 포개어 안아주는 마찰과 호흡 속에서만 비로소 생명의 실체에 닿게 된다.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고 타인의 손을 잡는 일, 그것은 차가운 세상의 바람으로부터 우리의 체온과 내면을 지켜내는 유일하고도 근원적인 방어 방식인 셈이다. 결국 매 순간 어긋남의 위험을 품은 채 아슬아슬하게 동행해야 하는 이 관계의 구속성이야말로, 거센 풍파 속에서 우리를 인간이게끔 붙들어 매어주는 가장 따스하고도 질긴 명줄인지 모른다.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대명사들』,『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 『불협화음의 위로』 등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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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43 _ 유선철의 「지퍼」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43 _ 유선철의 「지퍼」 - 미디어 시in
지퍼 유선철 두 손을 마주 잡고 계단을 올라가지잠시만 삐끗해도 하루가 엉키니까 마지막 한 발짝까지조신하게 내딛지 살가운 눈빛으로 빈틈을 채워가며안과 밖의 경계를 확실히 그어주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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