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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42 _ 강영임의 「불의 다른 이름」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6. 9. 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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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다른 이름

 

강영임

 

두 발 쿵쿵 구르다 작살 쌩쌩 날리다

인간이 부싯돌에서 첫 불을 꺼낸 후

굳었던 모든 것들은 다른 이름으로 태어난다

 

미동도 소리도 없이 어귀에 웅크려

 

불질을 견뎌가며 호미가 된다는 건

 

흉터도 오래도록 만지면 제 몸에 꽃 드는 것

 

대장장이 손끝에 튀어 오른 파란 불꽃

인디고 코발트블루 피콕블루 울트라마린

우리가 보는 푸른빛은 시시각각 변한다

 

바다 너머 알지 못한 불의 색은 별이 돼

깃들지 않은 날카로움 세상에 풀어 놓는다

 

어둠을

만날 때마다

가슴속 빛줄기로

강영임, 햇살이 술이었던가 바람이 춤이었던가, 상상인, 2026.

 

 

-

 

 

  불은 흔히 모든 것을 재로 돌리는 정복자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러나 강영임의 시에서 불은 파괴에 머물지 않는다. 굳은 형상을 달구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변형의 힘으로 솟아오른다. 인류가 부싯돌에서 첫 불꽃을 일으킨 이래, 세상의 사물들은 불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며 저마다 새로운 쓰임을 부여받아 왔다. 불의 다른 이름은 그 뜨겁고 오묘한 변화의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시의 초반부에는 거칠고 원초적인 기운이 감돈다. “두 발 쿵쿵 구르다 작살 쌩쌩 날리다라는 구절은 대장간의 망치질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동시에 인간 문명의 태동을 떠올리게 한다. “부싯돌에서 튀어 오른 작은 불씨는 차갑게 굳은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사물의 존재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그중에서도 눈부신 변화는 뜨거운 불질을 견딘 쇠가 호미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흙을 일구고 삶을 보살피는 도구가 되기 위해 쇠는 제 몸을 불길에 내맡긴다. 주체는 이 단련의 시간을 끝까지 응시하며 흉터도 오래도록 만지면 제 몸에 꽃 드는 것이라는 통찰에 이른다. 불길이 남긴 상처는 세월과 견딤을 거쳐 마침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이어지는 시선은 대장간을 넘어 아득한 공간으로 뻗어간다. “대장장이 손끝에 튀어 오른불꽃은 푸른빛을 머금고 있다. “인디고”, “코발트블루”, “피콕블루”, “울트라마린으로 이어지는 색채의 스펙트럼은 극한의 열기 속에서 피어나는 불꽃의 깊이와 변화를 감각적으로 펼쳐 보인다. 주체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푸른 불빛을 바다 너머의 미지, 과 연결한다. 대장간의 불꽃은 어느새 우주의 별빛으로 번져가고, 눈앞의 노동은 세계를 움직이는 생성의 원리와 맞닿는다.

 

  이 시의 백미는 종장에 있다. “어둠을/ 만날 때마다/ 가슴속 빛줄기로라는 미완의 종결은 긴 여운을 남긴다. 어둠 앞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밖에서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이 아니다. 열기를 견딘 흉터에서 끝내 꽃을 피워낸 기억과 인고의 시간 속에서도 가슴 깊이 살아남은 푸른 기척이다. 타오르고 사라지는 화염을 넘어 삶을 거듭 빚어내는 힘, 그것이 이 시가 정의하는 불의 다른 이름이다.(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유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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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42 _ 강영임의 「불의 다른 이름」 - 미디어 시in

불의 다른 이름 강영임 두 발 쿵쿵 구르다 작살 쌩쌩 날리다인간이 부싯돌에서 첫 불을 꺼낸 후굳었던 모든 것들은 다른 이름으로 태어난다 미동도 소리도 없이 어귀에 웅크려 불질을 견뎌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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