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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40 _ 정온유의 「울음 놓는 자리」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6. 6. 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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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놓는 자리

 

정온유

 

아흔여덟 할머니는 고요히 눈을 감고

일흔여덟 엄마는 엄마 엄마 울면서

서러운 아기가 되어

엄마를 찾았지

 

엄마의 안식처가 사라진 그 해부터

할머니 산소는 또 다른 휴식처로

엄마의 기댈 산 되어

눈물을 받아 안았지

 

나도 어느 먼 먼 날 엄마 등에 기대어

엄마 엄마 서러운 어리광을 부리겠지

그렇게 엄마도 내게

안식을 내어주겠지

―『빌딩숲에 바람이 불면』, 우리보리,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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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의 회귀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가장 여리고 순수한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살아가며 사회적 역할이라는 단단한 외피를 덧입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힘없이 벗겨진다. 정온유 시인의 「울음 놓는 자리」는 붕괴 이후에 남겨진 감정을 조용히 응시한다. 시는 할머니의 임종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사건 자체를 비극적으로 부풀리지 않는다. 대신 남겨진 이들의 몸과 마음에 슬픔이 번져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비춘다. “아흔여덟”의 할머니와 “일흔여덟”의 엄마, 그리고 주체인 ‘나’는 서로 다른 생의 층위에 놓여 있으면서도 끝내 같은 울음의 자리에서 만난다.

 

  상실 앞에서 노년의 인물이 “서러운 아기”로 돌아가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상태를 환기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Sein zum Tode)’다. 수많은 관계와 책임을 짊어진 채 살아가지만, 결정적인 이별 앞에서는 결국 생의 시원(始原)으로 수렴된다. “엄마 엄마”라는 호명 역시 존재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원초적인 울음에 다름없다. 시는 노년의 연약함을 감상적으로 그리기보다, 인간이 마지막까지 기대고 싶어 하는 최초의 존재가 누구인지를 담담하게 증명해 낸다.

 

  이제 “할머니 산소”는 죽은 이를 기리는 물리적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곳은 슬픔을 내려놓고 다시 생을 견디게 하는 내면의 쉼터가 된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잃었지만, 아픔이 남긴 적막한 틈에서 다시 기대는 법을 배운다. 주체는 엄마의 울음을 바라보며 아직 오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함께 떠올린다. “나도 어느 먼 먼 날”이라는 구절에는 아득한 시간에 대한 거리감과 언젠가 자신 역시 누군가의 품을 찾게 되리라는 예감이 배어있다. 인간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또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생의 원형을 완성해 나간다. 설명보다 여백이 많고 비탄보다 침묵이 길기에, 독자는 그 속에서 인간의 가련하면서도 따스한 연대를 목격하게 된다.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유심상을 수상했다.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40 _ 정온유의 「울음 놓는 자리」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40 _ 정온유의 「울음 놓는 자리」 - 미디어 시in

울음 놓는 자리 정온유 아흔여덟 할머니는 고요히 눈을 감고일흔여덟 엄마는 엄마 엄마 울면서서러운 아기가 되어엄마를 찾았지 엄마의 안식처가 사라진 그 해부터할머니 산소는 또 다른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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