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남규
1인 시위하듯 종일 서서
예언을 기다렸지만
실패에서 도망 나와
눈물 흐르게 나뒀습니다
마음은
하나의 관棺 같아서
열어보기
겁났습니다
땅에 박힌 나무처럼
마침표 하나 서 있고
주삿바늘 앞 핏줄처럼
떨고 있는 시의 첫 행
1에서
마침내, 꽃은 필까요
빈 소주병 같이
텅 비었는데
―『그렇게 했을 것이다』, 헤겔의휴일, 202.
-
무엇이든 처음 시작이 어렵다. 시에서 ‘관(棺)’은 죽은 자가 머무는 곳으로, 아무런 창조도 일어나지 않는 완벽한 정체와 침묵을 의미한다. 시적 주체는 자신이 아무런 작품도, 생명체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두려움 때문에 마음의 관을 열어보기를 겁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모두 기존에 있던 것을 조금씩 새롭게 변주하는 과정일 뿐이다. 무엇이든 유(有)에서 유(有)로 시차를 두고 창조가 이뤄지는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이것은 숫자 ‘0’이라는 공백이 있어야만 ‘1’이라는 시작이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텅 비어 있는 침묵의 상태가 선행되기에 1이라는 탄생도 가능한 것이다. 시적 주체는 이 변주의 첫걸음이 늘 두렵다. 처음은 언제나 어렵고 두렵다는 것을 앎에도, 그는 “1인 시위하듯 종일 서서” 기적 같은 예언(영감)을 기다린다. 비록 그 기다림이 실패로 끝나 도망치듯 눈물을 흘릴지언정, 그 멈춤과 서성임은 창작자로서 마땅히 겪어야 할 고독한 통과의례다.
창작의 과정에서 첫 문장을 쓰는 일은 살을 도려내는 일만큼 쉽지 않다. 주목할 점은 시의 제목인 ‘1’의 형태다. 땅에 곧게 박힌 ‘나무’, 잉크의 점으로 찍힌 ‘마침표 하나’, 그리고 주삿바늘 앞에 선 가느다란 ‘핏줄’은 모두 수직으로 서 있는 숫자 ‘1’의 시각적 형상과 닮아있다. 특히 백지 위에 찍힌 “마침표 하나”는 끝이 아니라, 오히려 비장하게 서 있는 “시의 첫 행”의 출발점이 된다. “주삿바늘 앞 핏줄처럼/ 떨고 있는 시의 첫 행”이 “마침내, 꽃은 필까” 염려하는 마음은, 속이 “빈 소주병 같이 텅 비어”버린 현실 앞에서 절망감으로 더 깊어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텅 빈 곳이야말로 새로운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비로소 꽃이 피어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없었으므로 비로소 있는 것이 가능해지는 창조의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비어 있음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텅 빈 소주병 같은 내면은 결핍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과 잠재력이 꿈틀대는 자궁과 같은 상태가 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장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비어 있음’은 작가에게 본능적인 공포를 준다. 만약 떨고 있는 첫 행이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무언가 드러나면서 비로소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창작행위란 보이지 않는 심연의 영역에서 보이는 현상의 세계로 실마리를 끌어내는 지난한 과정이다. 이 시는 첫 단추를 꿰어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중압감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채, 지금도 1인 시위하듯 종일 서서 영감의 예언을 기다리고 있을 모든 누군가를 향한 위로이자 예언이다. 비어 있음의 공포를 묵묵히 버텨낼 때, 비로소 단 하나의 존재(1)인 시가 탄생할 수 있다는 역설을 이 시는 나지막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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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대명사들』,『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 등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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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41 _ 김남규의 「1」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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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남규 1인 시위하듯 종일 서서예언을 기다렸지만실패에서 도망 나와눈물 흐르게 나뒀습니다마음은하나의 관棺 같아서열어보기겁났습니다 땅에 박힌 나무처럼마침표 하나 서 있고주삿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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