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별꽃
오승철
멀쩡한 오름 하나
건들고 가는
쏘내기야
가다가 다시 와서
또 건드는
쏘내기야
내 누이 사십구재날
떼판으로 터진 꽃아
― 『오키나와의 화살표』, 황금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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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별꽃은 제주에서 많이 자생하는 들꽃이다. 봄철, 밭이나 논둑 또는 공터에서 흔히 볼 수 있어서 잡초로 취급받기도 한다. 쇠별꽃은 5~7mm 크기의 아주 작은 꽃을 피워 특별히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꽃받침, 꽃잎, 수술, 암술 등 모두 갖춘 귀엽고 예쁜 꽃이다.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별 모양의 꽃이라고 하는데 ‘별’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스텔라(stella)와 ’물‘을 뜻하는 아콰(aqua)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박범신은 소설 『은교』에서 주인공인 은교의 청순함을 쇠별꽃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열대 엿 살이나 됐을까. 명털이 뽀시시 한 소녀였다. 턱 언저리부터 허리께까지, 하오의 햇빛을 받는 상반신은 하얬다. 쇠별꽃처럼.”이라고.
이 시의 화자가 특별히 누이의 사십구재날 “떼판으로 터진” 쇠별꽃을 호명하는 것은 누이의 존재와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누이는 쇠별꽃처럼 특별히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외모를 지녔을 것이고 잡초처럼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지만 화자가 기억하는 누이의 모습은 언제나 솜털이 가시지 않은 열 댓살 소녀같이 앳되고 여린 꽃이었을 것으로 인식된다. 장난치듯 다녀가는 소나기(쏘내기)의 반복적 호명으로 화자의 슬픔은 극대화되고 있다. “멀쩡한 오름 하나”라든가 “가다가 다시 와서/ 또 건드는”이라는 표현에서 간신히 참고 있는 마음을 뒤흔드는 소나기에 대한 원망을 느낄 수 있다. 화자의 절제된 감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으로 읽힌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등 수상, 문학박사 졸업(한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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