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사람
- 베트남 댁
이석구
바람이 잦아들면 늪의 입을 여는 여자
가슴이 두근대던
첫사랑이란 말 앞에서
속내를
짚을 수 없는 흙덩이가 무겁다
진흙 바닥 들어 올린 악어의 꼬리 닮은
강둑에 바짝 붙어 여자의 손목 잡고
야자수 잎을 흔들며 넘어졌던 그 사람
수면의 파문들을 걷어낸 부레옥잠
연꽃 한 송이 피자
물살 위로 이는 안개
허공에
떠오른 얼굴 낮달처럼 그립다
- 이석구, 『마량리 동백』, 고요아침,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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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다름’의 결과는 비극을 불러오곤 했다. 이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마찬가지다. 인종, 젠더, 지역, 정치, 종교 등의 문제로 인류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논쟁하고 분열을 일으킨다. 다른 것들을 배척하고 동일한 것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다른 것이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흔들고 자기 생존의 위협을 가한다고 여기는 미련한 생각 때문에 더 큰 불행을 낳는다. 나와 수많은 타자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 중 하나가 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문화 다양성’에 주목하면서 공감과 존중의 가치를 주요 키워드로 내 건다. 그중에서도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 북한이탈주민, 유학생 등은 우리로 하여금 집단과 사회의 문화, 표현의 차이를 고민하게 한다.
이석구 시인은 다문화 가정의 풍경을 참 많이 그려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본다. 「두고 온 사람」에 등장하는 베트남 댁은 “첫사랑”의 추억을 가슴에 묻고 낯선 사회에 유입된 이방인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흙덩이”, “진흙 바닥”, “파문”, “안개”와 같은 이미지는 그녀가 타국 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두고 온 사람’은 이제 여기 없다. “허공에// 떠오른 얼굴” 앞에 애잔한 슬픔이 피어오르지만 그녀는 그리움을 품고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이 있음.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 선정, 2019년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수상.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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