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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집중 조명〉 1 _ 이병철 시인

스페셜 집중조명

by 미디어시인 2022. 10. 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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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을 통해서 바라본 시간강사의 현존성

하종기 기자

 

시와 문학평론을 쓰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병철 작가가 특별한 에세이를 발간했다.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걷는사람, 2022)인데, 제목이 독특하다. 삶의 코드 두 가지를 동시에 묶어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이병철 작가는 직접 배달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시가 아닌 산문으로 생생하게, 명징하게 풀어냈다.

이 책은 일종의 ‘배달 분투기’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하며 연구와 창작에만 매진해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문학적 ‘이상’에 도달하는 데 힘이 들 텐데, 그는 왜 ‘배민’ 라이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을 것이지만 본지의 집중 조명을 통해 일부분을 미리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

 

 

Q: 첫 번째 질문은 정체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생계를 위해 ‘배민 라이더’를 하면서 시인으로서, 강사로서, 평론가로서 가진 정체성 혼란은 없었는지요? ‘생계’라는 말 자체가 아픈 말이지만 그래도 왠지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A: 네,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대목이 있는데요, 작년 한 해 제 첫 시집 인세로 4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2017년에 낸 시집인데, 작년에는 한 50권 정도 팔린 모양이에요. 그런데 배달 라이더 일을 하면, 4만원 쯤은 두세 시간 만에 벌 수 있거든요. 여기서 유혹이 생기죠. ‘문학이고 뭐고 다 그만 둘까’ 하는. 특히 시간과 노력에 비해 고료는 박한 평론 쓰기가 점점 환멸스러워지더라고요. 원고 청탁을 거절하고, 차라리 배달 일을 더 하자는 마음이 들었죠. 그러면서 ‘아, 이렇게 멀어지는구나’ 싶었습니다.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 나란히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수많은 배달 라이더들도 다 처음부터 라이더는 아니었을 텐데, 자기 꿈이 있던 사람들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시간강사’라는 말은 ‘시간’과 ‘강사’의 개념이 합쳐진 말입니다. 시간은 강의 시수로서 강사료를 받는 이미지이고 강사는 정식 교수가 아닌 강의만 하는 ‘선생’이란 이미지가 있습니다. 평소에 개인적으로 시간강사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지요? 그리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있으시면서 “이런 점은 대학 당국이나 국가에서 조금 더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신 적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생각하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시간강사는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지만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죠. 비정규직이므로 낮은 급여에 4대 보험도 되지 않습니다. 개정된 강사법은 3년 임용 보장 및 방학 중에도 임금 지급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게 지켜지는 곳은 많지 않아요. 대부분 학교들은 강사법의 빈틈을 노려 겸임교수나 초빙교수 등 이름만 ‘교수’인, 또 다른 형태의 시간강사들을 양산하고 있지요. 대학들이 이런 편법을 좀 그만 뒀으면, 국가에서 대학들의 이런 ‘꼼수’를 좀 제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대학은 강의 시수만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강의 준비, 학생들 상담과 과제 피드백, 시험 출제, 성적 입력, 회의, 행정업무는 쳐주지 않습니다. 학과 강사 채팅방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교의 공지사항으로 쉴 새 없이 울려대지요. 수업 외에도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급여에는 포함되지 않아요.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들도 일부나마 근로시간에 반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Q: 외부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호칭을 가지는 삶을 살고 계실 텐데 ‘시인님’, ‘평론가님’, ‘교수님’, ‘박사님’, ‘조사님’ 등의 호칭 중에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호칭은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설명해 주세요.

A: 저는 역시 ‘시인’이라고 불러주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제 문학이 시에서 출발했고, 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글쓰기는 역시 시 쓰기이기 때문입니다. 평론은 중요한 글쓰기이고, 산문은 재밌는 글쓰기라면, 시는 소중한 글쓰기, 첫사랑 같은 글쓰기이죠. 제가 쓰는 모든 글들은 결국 시를 더 잘 쓰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입니다.

 

Q: ‘배민 라이더’를 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경험하셨을 것 같은데, 가장 인상 깊었던, 또는 소개해 주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보람이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말씀해주세요.

 

 

A: 얼마 전 책 홍보도 할 겸 첫 배달과 마지막 배달 음식 주문하신 분께 책을 선물로 드리기로 했어요. 2학기 개강일이던 9월 1일 저녁, 배달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바로 콜이 울렸어요. “소곱창전골 1개, 공기밥 3개. 성결대학교 학생회관 219호.” 책 증정 이벤트의 첫 대상이 학생들이라니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회관 1층에서 층별 안내도를 보는데,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219호 국어국문학과’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올라 문을 두드렸습니다. 남학생 셋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본업이 글 쓰는 일인데, 새 책이 나와서 이벤트로 드리고 있어요” 하며 음식과 책을 내밀었습니다. 학생들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정말요? 저희 국문과예요!” 하더군요. “안 그래도 신기했어요. 저는 국문학 박사 했어요. 맛있게 드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멋쩍게 웃으며 돌아서는 등 뒤로 “감사합니다! 책 잘 읽겠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환한 인사를 뒤로 한 채 캄캄한 계단을 내려오는데, 캠퍼스에 쪽빛 저녁이 번져가고 있더군요. 어둠과 빛이 섞이는 하늘 아래 기분이 묘했습니다. 학생들 기분은 또 어떨까 싶었고요. 그들도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함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힘들었던 순간은 단순한데요, 아무래도 날씨 영향을 받는 일이다 보니 폭우나 폭염, 혹한에 일을 하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힘든 순간에 사람에게 위로 받을 때, 가령 비가 쏟아지는 날 음식 픽업을 간 가게 앞에서 조리가 완료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비 맞고 서 있지 말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주시는, 그런 배려에 힘을 얻어요. 배달을 완료하고 등 뒤에 들리는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끼고요.

 

Q: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는 총 4부로 나누어져 있고 34개의 소제목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4개의 글 중에서 가장 힘들게 썼던(정신적으로) 글은 무엇이고, 가장 유쾌하게(경쾌하게) 썼던 글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책을 사서 읽는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은 글은 무엇인가요?

A: 힘들게 썼던 글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스쿠터를 타고 달리듯 신나게, 재미있게 썼습니다. 특히 유쾌하게 썼던 글은 <레모네이드>였던 것 같아요. 책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배달을 하다가 음료를 다 쏟아버리는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을 때,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해결한 에피소드인데요, 그 당시 당황해서 허둥대던 제 모습도 떠오르고, 해결하고 나서 가슴을 쓸어내리던 안도감도 떠오르고,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을 여러모로 유쾌하게 다룬 글인 것 같습니다.

 

Q: 작가님의 생활에서 낚시가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높은 것 같습니다. 낚시의 어떤 매력이 작가님을 사로잡았나요? 그리고 그것이 글을 쓰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A: 낚시를 할 때면 저는 도시의 삶에서 잃어버린 ‘경이’를 되찾는 기분이 듭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 풍경, 사람, 공간을 벗어나 자연과 마주하면 모든 게 다 신기하지요. 우리 삶은 너무 뻔해요. 일상이라는 것은 대개 예측이 가능하고, 거기엔 우연함이나 미지의 영역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낚시는, 내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몰두하는 무모한 행위지요. 저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세계가 있는지 모르면서 강과 종일 마주보고, 바다와 대화하는 짓입니다.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우연성이 낚시의 매력입니다.

낚시를 하면 복잡한 삶이 단순해지고 풍요로워집니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서로 균형을 맞추면서 삶 전체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죠. 원고 마감에 쫒길 때는 ‘빨리 원고 완성해서 낚시가야지’ 하는 생각이 마감의 동력이 되고, 낚시를 하다보면 일상으로 복귀해야 할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낚시가 삶을 이끌고 가요. 낚시를 위해 열심히 살고, 낚시를 하다 보면 또 삶이 절박해집니다.

 

 

Q: 2021년 11월에 두 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를 발간하셨습니다. 이 시집에서 주로 다룬 모티브나 메시지, 시 세계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다음 시집은 어떤 방향성을 가질 계획인가요?

A: 사람이 절대자에게 신앙을 갖게 되면 자기 삶을 온전히 다 들어다가 바칠 정도로 깊이 몰입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게 꼭 초월적 존재인 신과 맺는 그런 관계 양상만은 아니고, 사람이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자기 삶을 그냥 다 갖다 바치고, 파멸까지 감수하는 모습을 보이잖아요. 이런 점이 종교와 비슷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 이후에 남겨지는 괴로움들, 어떻게 보면 이게 심판이 아닌가 하는.

하지만 결국 사랑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신’이죠. 인간이 실존의 한계인 죽음이나 현실원칙으로 인한 고통을 잊는 순간은 오직 타자와 사랑할 때입니다.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무모한 열정에서 완벽한 사랑의 형태가 빚어지지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랑을 완성했듯. 사랑할 때 인간은 신이 됩니다. ‘나’와 ‘너’가 만나 서로의 신앙이 되고, 서로의 세계가 되고, 서로의 신이 되어 구원하기도, 심판하기도 하는 게 사랑이라는 불완전한 종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은 아직 막연한데요. 제가 그동안 다닌 수많은 여행지들, 특히 이국에서 느낀 정취들을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정처가 없는 사람들의 삶과 사유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

 

Q: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평론집, 세 권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원고 청탁을 많이 받으실 것 같은데, 기분 좋은 청탁은 어떤 청탁이고 조금 불편한(아쉬운) 청탁은 어떤 청탁인가요?

A: 사실 어떤 원고 청탁이든 다 감사하지요. 저를 기억해주시고, 제게 귀한 지면을 내어주시는 거니까요. 그래서 모든 청탁이 다 기분 좋은 청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원고 청탁 역시 엄연한 계약이므로, 원고료와 지급일정을 분명하게 명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학 창작이 엄연한 노동으로 인식되어졌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를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전국에 계신 시간강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A: 배달 라이더 일을 하면서, 항상 내가 처해 있는 상황 안에서 즐거움을,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가치 없는 순간은 없고, 무용한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대학에서 고군분투하는 시간강사 여러분, 그리고 길 위에서 일하는 수많은 라이더 분들, 책을 읽어주시는 소중한 독자님들께 책을 빌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 삶을 더 사랑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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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기 기자 시와 문학평론을 쓰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병철 작가가 특별한 에세이를 발간했다.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걷는사람, 2022)인데, 제목이 독특하다. 삶의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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