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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시의 방’을 운영하며 좋은 시 보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강인한 시인1

스페셜 집중조명

by 미디어시인 2022. 12. 3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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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시란 감동이 있는 시, 상상의 재미가 있는 시, 아름다움이 있는 시

 

 

 

인터뷰 진행: 하린 시인

 

 

<미디어 시in>에서는 20년 넘게 푸른 시의 방을 운영하고 계신 강인한 시인님을 초대했습니다. 그동안 푸른 시의 방을 운영하시면서 좋은 시 보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계시는데요.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1. 안녕하세요. 강인한 선생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최근 근황에 대해 알려주세요.

 

답변: 작년 6월 어느 날.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뱃속이 칼로 에이는 듯 견딜 수 없이 아팠어요. 토요일 아침 동네 내과에 가서 급성담낭염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요. 주말이라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 순천향병원에 갔습니다. 의례적인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며 코로나 검사를 처음으로 받아봤지요.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어요. 두 주일 동안 입원했는데 내과에서 위내시경을 통해 식도와 담낭 사이에서 담석 하나를 꺼냈습니다. 며칠 후 외과에서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드디어 나는 쓸개 빠진 자가 되었습니다. 의외로 나처럼 쓸개를 떼어낸 동지들이 많은 걸 퇴원 후 알게 됐고요. 그 이후로 이제는 조금씩 회복 단계에 들어서 입원 전의 체중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내가 사는 이촌동엔 한강 가까운 위치 덕에 산책 코스가 좋았지요. 5분만 걸으면 동서로 달리는 강변북로 아랠 지나가는 굴다리가 나와요. 굴다리만 건너면 이촌한강공원이고, 거기서부터 동쪽으로 동작대교까지 강둑에 난 산책로를 걷는 겁니다. 이 코스가 참 좋습니다.

그러다가 삼각지로 이사 왔습니다. 지금 이사 온 지 석 달째 됩니다. 여긴 산책 코스라고 해봤자 국세충, 혹은 세금 먹는 하마의 사무실이 가까워서 기분도 찜찜할뿐더러 전쟁기념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오는 정돈데 저쪽 동네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2. 다음 카페 푸른 시의 방은 언제부터 시작하셨고 지금 몇 년째 운영하고 계신가요?

 

답변: 광주에 살 적 이야깁니다. 학교 전체 교사들에게 책상 위에 각각 사무용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진 때가 언젠지 지금은 기억도 희미합니다만 그건 사무 처리가 즉시 천지개벽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기계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학습지도안을 손으로 쓰던 것을 컴퓨터 작업으로 바뀌게 됐고, 손으로 시험문제 원안을 써내던 게 컴퓨터의 한글 컴퓨터를 이용하는 등. 갑자기 당하는 혁명적변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고, 나는 컴퓨터 자판을 들여다보며 두 손가락의 독수리타법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열 손가락 다 사용하는 이들이 정상일 테지만 그 타자 버릇이 나는 지금도 익숙하고 편합니다. 우리 나이 또래 교직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은 당연히 지금도 컴맹이 참 많습니다. 따라서 그분들은 인터넷도 눈 감고 살 수밖에 없어요. 교직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함이 곧 컴퓨터와 인터넷을 생활로 수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을 개설한 것은 달갑진 않지만 선진 문명과 친해지기 위한 수단이라 할까요.

20023월에 인터넷 카페 푸른 시의 방을 열고, 처음엔 나 혼자만의 글 창고로 쓰고 즐기다가 과감하게 전면 오픈하게 됐지요. 등단한 1967년부터 35년간을 원고지만 사용해서 손으로 글을 쓰다가 서서히 컴퓨터를 이용한 글쓰기로 바꾼 것입니다. 2002년에 시작했으니 만 20년 넘게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야릇한 명목으로 줏대 없이 무잡한 시가 시단을 온통 분탕질하며 횡행하던 2천 년대 초였습니다. 내 딴에는 그 무렵 우리 현대시가 지향해야 할 바르고 참다운 길을 찾아 모색하여야 한다고 절실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게 우리 카페의 모토였습니다.

 

얼마 전 정읍 살 때의 교직 동료 한분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는데, 카페를 하나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하니까, 그게 커피를 팔며 시인 손님들을 맞는 그런 카페로 생각하는 눈치 같았습니다. 설명을 해줘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습니다.

 

3. 푸른 시의 방엔 방대한 양의 시들이 있는데, 몇 편이나 되는지요? 그리고 그 시들을 필사하듯이 하나하나 직접 워드로 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오늘 아침 12,605번 글이 올랐군요. 시집에서 골라 올릴 때엔 두세 편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줄잡아 13천 편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카페를 열고 나서 초기엔 시인 1인 대표시 1편으로 한정해서 좋은 시 읽기에 올렸지요. 1920년대의 시인들부터 1940년대까지 가령 이용악/오랑캐꽃, 김기림/세계의 아침, 백석/여승, 정지용/백록담, 이육사/황혼, 그러다가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서정주, 박남수, 김현승 등 시대 순으로 대표시 1편씩을 고수하며 우리의 현대시를 절로 시대적 흐름을 따라 익힐 수 있게 하였습니다. 2007115일에 나는 좋은 시 읽기에 천 편의 시를 올린 것을 계기로 시인 지망생들의 습작을 위한 조언을 공지 글로 올렸습니다. 천 편의 시를 베껴 쓰는 의미라는 글입니다. 오늘 보니 이 공지 글을 조회하여 읽은 수가 8,895회입니다. 그 후로는 시 잡지며 시집이며 내 눈에 띄는 대로 좋은 시면 곧바로 작업실에 준비해 두고 하루 한두 편을 좋은 시 읽기에 매일같이 소개하였지요.

월간 문예지, 계간 문예지, 시 전문지 등 지면에 발표된 시를 읽고 마음에 들면 그 페이지에 표시를 하고, 작업할 때 천천히 한번 더 읽습니다. 나의 개인적 취향이나 선택 기준을 가리지 않고 어떤 성향의 시로서 우수하다고 생각되면 직접 내 손으로 타이핑을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워드로 칠 때 묘하게 손으로 읽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으로 다 베껴 쓰고 나서, 실은 흠이 많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내 헛수고를 탓하지 않고 버립니다. 열에 한두 편은 이렇게 손으로 읽어서 버림받게 됩니다. 손으로 베끼는 것 자체가 읽기의 최종 단계가 되는 셈입니다.

 

4. 푸른 시의 방을 운영하시면서 있었던 일들 중에서 보람찬 일은 어떤 것들이 있었고, 난감한 일들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그 밖에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답변: 우리 카페는 회원들이 모두가 평등합니다. 카페지기 나 혼자 운영자로서 일할 뿐이며 정회원 이상의 특별대우를 받는 회원은 아무도 없습니다. ‘좋은 시 읽기에 내가 소개하는 작품들을 지금은 시단 전체가 신뢰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좋은 시 읽기비평/에세이그리고 권위 있는 관문을 통과한 등단작을 소개하는 손님방의 작품들. 이런 내용들을 통해 스스로 자기 작품을 갈고 닦는 혹독한 수련 끝에 당당히 신인으로 등단하고 카페지기인 내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시인들이 20년 동안에 몇 사람 있지요. 대여섯 명쯤. 특히 나는 좋은 시 읽기에 소개하는 시인들의 약력에서는 의식적으로 수상 경력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작품 자체만을 자기 눈으로 읽으라는 뜻입니다. 무공훈장처럼 수상 경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약력의 시인을 나는 그다지 신뢰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순수하게 작품만 읽으라는 의미로 그 작품 소개 아래에 댓글 달기를 아예 불허하고 있지요.

현재 중앙 일간지에서 시를 소개하며 감상을 곁들인 연재물을 수록하는 신문이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시조), 문화일보 그리고 서너 군데 지방 신문이 지역 작가를 응원하는 차원의 시 감상 연재물을 싣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신문지면이 허용하는 제한된 지면 관계로 전체를 다 수록하지 못하고 부분만 시를 소개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렇게 부분이 생략된 시를 나는 가능하면 전체를 살려서 실으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황유원의 전문 32행의 천국행 눈사람을 평론가가 신문에 실으면서 머리 부분 10, 꼬리 부분 4행을 생략하고 그 중간 부분 18행만 행갈이 /표시를 사용하여 신문에 실었어요. 어렵사리 그게 무슨 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것을 알아내어 영풍문고에서 해당 사화집을 찾았습니다. 휴대폰으로 두 페이지만 촬영하여 집에 가져와 생략된 머리와 꼬리를 온전히 채워 넣고서야 나는 안심했습니다.

시인의 이름을 착각하여 신문에 필자가 잘못 소개한 것을 고쳐주기도 한 일, 시 잡지에 시와 시인 이름이 엉뚱하게 다른 사람으로 들어간 경우, 작품과 시인 이름을 제대로 바로잡아서 좋은 시 읽기에 실은 일도 있었습니다. 신문에 전문이 실리지 못하고 부분이 생략된 인용 시를 대하면 무척 안타깝습니다. 신문 지면의 제한된 특성상 불가피하게 시를 부분적으로 생략한다 해도 공간 활용이 자유로운 인터넷 카페에서 시인 입장에선 시의 전문이 수록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5. 선생님. 푸른 시의 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가 좋은 시 읽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시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답변: 엄밀히 구분한다면 잘 쓴 시좋은 시는 확연하게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유명 시인이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요? 매일같이 내가 요즘 하루 두 편 정도 소개하는 시들 대부분은 웬만큼 잘 쓴 시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열에 한 편쯤 좋은 시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백석의 여승, 심훈의 그날이 오면, 이육사의 절정같은 시가 좋은 시라고 믿습니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송정오장 송가(松井伍長頌歌)」 「전두환대통령 56회 생신 축시등은 잘 쓴 시입니다. 1977년 봄부터 2006년 봄까지 광주에서 산 나는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의 광주 시민 학살을 보고 듣고 몸으로 겪은 열흘 동안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523일쯤입니다. 시민군들이 타고 다니는 지프차에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라고 쓴 표어를 보았습니다. 그 말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당연한 분노의 표현이라고 느꼈지요. 광주시민 학살의 원흉은 전두환이라고 알고 있는데, 서정주 시인이 전두환 생신 축시를 쓴 것을 의아하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그분은 본래 권력에 기생하는 것을 평생토록 추구한 삶을 살았기에 당연할 것입니다. 서정주 시인을 시인이라기보다 차라리 시쟁이(詩匠)’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내 나름대로 오늘의 시 중에서 좋은 시로 꼽는 건 대체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그건 첫째 감동이 있는 시, 둘째 상상의 재미가 있는 시, 셋째 아름다움이 있는 시입니다. 시인 또는 평론가에 따라 좋은 시의 분류는 더 자세히 나눌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좋은 시의 기준을 그렇게 정해 보았습니다. 한 편의 시를 쓰고 나서도 나는 가끔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내가 방금 쓴 이 시는 감동이 있는 시인가? 그게 아니면 상상의 재미가 있는 시인가? 그도 아니면 아름다움이 있는 시인가?

 

첫째, 감동이 있는 시입니다. 시의 내용은 정서입니다. 아기자기한 줄거리를 지닌 서사가 아닙니다. 정서를 노래하되 그 시의 울림이 큰 시를 ‘감동이 있는 시’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시의 장점은 시인과 독자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일 테고, 또한 메시지가 강한 점에서 말한다면 주제가 선명하다고 할 것입니다. 정현종의 「방문객」, 이상국의 「물속의 집」등을 좋은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둘째는 상상의 즐거움을 주는 시입니다. 문학은 언어로 표현된 허구의 예술입니다. 시도 그 속의 작은 갈래이므로 허구의 예술인 것이지요. 그 허구를 위하여 특히 오늘의 현대시는 조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위하여 참신한 비유를 통한 ‘낯설게 하기’ 수법을 사용합니다. ‘낯설게 하기’란 친숙하거나 인습화된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방법이지요.

 ‘상상의 즐거움을 주는 시’는 오늘의 현대시 중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몇 편의 좋은 예를 더 들어보면 함기석의 「뽈랑공원」, 윤성택의 「후회의 방식」, 조인호의 「철가면」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후회의 방식」은 시간의 흐름을 역전시킨 독특한 시상의 전개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셋째는 아름다움이 있는 시입니다. 문학은 예술입니다. 예술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게 문학입니다. 문학에서도 맨 앞에 내세우는 것은 시입니다. 그러므로 시가 예술임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예술이 추구하는 게 무엇입니까? 바로 아름다움이지요. ()를 추구하는 까닭에 시가 지니는 미 역시 숭고미, 우아미, 비장미, 골계미를 떠나서 말하기 어렵겠습니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는 우아미(優雅美)가 있고, 월명사의 제망매가에서 드러나는 것은 숭고미(崇高美)입니다. 윤동주의 시 십자가에 깃든 비장미(悲壯美), “얼굴을 선캡과 마스크로 무장한 채/ 구십 도 각도로 팔을 뻗으며 다가오는 아낙들을 보는 것부터 시작하여 풍자, 해학으로 독자를 즐겁게 하는 권혁웅의 시 도봉근린공원은 골계미(滑稽美)를 띠고 있습니다.

  검고 푸른 달밤, 관능적인 여인의 춤이 그치고 그녀가 헤롯왕에게서 상으로 받기를 바란 그것을 쟁반에 담아 가지고 나옵니다. 푸른 달빛 아래 빛나는 은쟁반, 그 위에 검붉은 피를 흘리는 사람의 머리.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아름다운, 바로 이 장면을 위해서 희곡 살로메를 썼다고 합니다

 

 

6. 표절은 한국 시단에 있어서는 안 될 사항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표절을 특히 많이 싫어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싫어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고, 표절과 관련해서 직접 당선을 취소시키거나 각성시킨 사례는 무엇이 있나요?

 

답변: 중앙일보 신춘문예 사업이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19659월에 창간한 중앙일보는 삼성 그룹에서 내는 신문이었지요. 초기엔 다른 신문과 마찬가지로 11일에 당선작을 발표하는 신춘문예를 시행하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중앙일보는 창간 기념일을 신춘문예 발표 시기로 변경했습니다. 여름철에 신춘이란 말이 부자연스러워 중앙신인문학상이 일반 신문들의 신춘문예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벌그룹이 배경이 돼서인지 타 신문사보다 상금이 약간 많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런 연유로 상금 사냥 전문 시인들이 눈독 들이는 곳이 중앙신춘문예, 아니 중앙신인문학상이었습니다. 2010, 2011, 2012년 중앙일보가 3년 연속 사냥꾼에게 넘어간 사실 혹은 의혹이 드러났다면, 그것도 한 사람에게 넉 아웃 당한 것이 문제 된다면? 크게 문제 삼아 송사로 갈까요(나는 개인적으로 외경의 마음을 담아 그 당사자에게 3연타석 홈런에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아니면 골치 아픈 문제를 떠안겨 준 뿌리를 아예 잘라버려야 할까요? 결국 신문사는 강경한 대처의 해결 쪽으로 무게를 실어준 것 같습니다. 푸른 시의 방이 그 문제(의혹)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2011년 중앙신인문학상 김미나의 시 포란의 계절이 발화점이 됩니다. 신문에 발표된 작품을 한 회원이 자세한 논거를 세세하게 밝히며 표절(혹은 대필) 의혹을 카페 광장에 문제로 던진 것이 불씨였습니다. 신문사 측에선 가능하면 응모자에게 유리한 결론이 나기를 기대하였지만 심사숙고의 1개월 만에 내린 결론은 당선 취소였습니다.

그에 앞서 나는 신인 등단을 하며 나서는 당선소감에서 극진하게 인사 올리는 선생님으로 h 시인 이름이 거론됨을 심상치 않게 보게 되었습니다. h 선생님, h 시인의 당호 등으로 표현되는 은사 어른으로 받들어지는 시인보다 실은 그 시인의 힘으로 당선되는 작품들에서 나는 은밀한 낌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국제일보, 동아일보, 시인시각, 현대시, 창작과비평에 보이는 낌새(표현 기법)를 하나하나 노트에 담고 연구해 보았습니다. 얼핏 생뚱맞은 비유인 듯, 그래서 더욱 신선한 듯, 한자어에서 평소 못 느꼈던 새로운 운용을 발견한다든가, 종횡무진 h의 문장은 탄복할 만한 경지였습니다. 나중에는 직접 h에게서 사사받지 않고 단지 h를 따라 해서 아류(亞流)로 당당히 등단한 신인이 생길 지경이었습니다.

 

7. 표절을 비롯해서 한국 시단에 문제가 있으면 선생님께서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문제 제기나 지적을 하십니다. ‘선비 정신을 가진 분으로 평가되면서 존경을 받고 계신데요. 여러 사례가 있을 텐데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세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답변:

표절(剽竊) : 시나 글, 음악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 것인 양 몰래 따서 씀. 이게 사전의 풀이입니다. 요즘 세간에 0부인 논문이 40% 이상 표절이라고, 아니 그 이상의 표절이라고 입방아에 오르고 있습니다. 표절 논문으로 얻은 지위나 명예(보수)는 부당한 취득이 분명하므로 취소되어야 하고 반환되는 게 마땅한 일입니다. 좀 돋보이기 위해서 남의 것을 몰래 훔친다? 그건 엄연한 사기며, 범죄 행위일 터. 눈감은 양심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지 모르겠군요.

 

고인이 된 지 오래된 고교 3년 후배가 내 첫 시집 이상기후에서 여러 구절을 표절해 1968년 신춘문예에 당선했는데 그런 유의 다양한 모자이크 표절을 전문 용어로 혼성모방이라고 하는지 어떤지. 겨울 이야기의 시인데, 여름철의 흙속을 파고드는 땅강아지를 마지막 구절로 쓴 건 내 2년 후배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진작 둘 다 고인이 됐습니다. ‘비평/에세이속에 2001년에 쓴 글 패러디, 모방, 표절」의 마지막 언급이 그 부분입니다.

 

스무 살의 신인,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그에 관한 당시의 어떤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200810월호 현대시를 보고, 나와 같은 동네(봉천동)에 사는 어린 문학도가 현대시신인상에 당선된 것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나는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전화인지 메일인지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한 동네 사는가 본데 만나보고 싶다 했지요. 그 친구는 아무 소식이 없었고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궁금한 채로 그 일은 희미해져 갔습니다. ()

  2012년 정월 현대시신년회는 특별히 정과리 선생의 특강이 있다 해서 그 자리에 나도 참석했지요. 뒤풀이 식당에서였습니다. 원구식 주간 가까이 정과리 선생이 앉고 나는 그 앞에 앉았지요. 정과리 선생이 어떤 젊은 시인에게 첫 시집 반응이 어땠느냐는 등 따뜻한 격려를 하고 있을 때, 내 곁에 시인한테 저 젊은 시인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게 이아무개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뒤미처 그를 부르는데 그 젊은 친구는 또래들끼리 어울리기 위해선지 금방 사라져버렸습니다.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스무 살의 천재 시인이 나를 두 번씩이나 기피한 이유가 이제는 무엇 때문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 당시 표절 연구 내 노트의 편린을 다시 소환해봅니다. 고도의 참신한 h의 수사(修辭)라고 생각하여 모아본 것, 여기저기서 발췌한 부스러기들입니다.

 

작은 언덕의 여우 소리를 데려와/ 불구의 기억들이 몸 안을 떠돌아/ 직선은 흔들리는 골재/ 둥근 방, 문고리가 없다/ 전파가 흘려주는 직유는 구부러져/ 과수원누군가 붉은 전구를 돌려 끄고 있다/ 모래 속에서 귀를 빌려온 죄/ 소리를 채록하는 나뭇잎/ 증오는 모두 네 개의 발굽을 가졌다/ 돈사마다 기르던 예의를 가두고/ () 대신 피를 밝혀/ 바닥엔 …기와(起臥)가 즐비하다

 

기와(起臥)가 즐비하다스무 살 등단작의 이 구절에서 나는 몇 해 뒤지만 시 뒤에 숨은 진짜 시인은 40대 이상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바닥에 기왓장이 깨져서 즐비하다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기와를 (일어남), (엎드림)’로 한자어를 구슬린다는 게 스무 살내기가 도대체 가능한 기교일까요?

스무 살 천재 시인은 그 빛나는 기교를 자기 수련으로 취득한 게 아니었으므로 마치 위조지폐처럼 그것을 남발하여 시인지망의 소녀들을 농락하는 데 소모했습니다. 아이돌 시인으로 군림하기도 한 화려한 이력을 팽개치고 그가 군대에 갔다는 소문이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 이상기후 』 ( 가림출판사 ( 전주 ), 1966),&nbsp; 『 불꽃 』 ( 대흥정판사 ( 전주 ), 1974)&nbsp; 『 전라도 시인 』 ( 태 . 멘기획 , 1982),&nbsp; 『 우리나라 날씨 』 ( 나남 , 1986),&nbsp; 『 칼레의 시민들 』&nbsp; ( 문학세계사 , 1992),&nbsp; 『 황홀한 물살 』 ( 창작과비평사 , 1999),&nbsp; 『 어린 신에게 』 ( 문학동네 포에지 ( 시선집 ),1998),&nbsp; 『 푸른 심연 』 ( 고요아침 , 2005),&nbsp; 『 입술 』 ( 시학 , 2009),&nbsp; 『 강변북로 』 ( 시로여는세상 , 2012),&nbsp; 『 튤립이 보내온 것들 』 ( 시학 , 2017),&nbsp; 『 두 개의 인상 』 ( 현대시학 , 2020),&nbsp; 『 신들의 놀이터 』 ,( 책만드는집 ( 강인한 대표시&nbsp; 100 선 ), 2015),&nbsp; 『 시를 찾는 그대에게 』&nbsp; ( 시와사람 ( 시 비평집 ), 2003),&nbsp; 『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nbsp; ( 문예바다서정시선집 , 2021)

 

8. 살아 계시기 때문에 시 세계가 아직 진행형이신데요. 선생님의 시 세계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서 설명을 해주실 수는 없는지요? 그리고 요즘 쓰고 계신 시의 지향성이나 특징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답변: 편의상 시간적 구분보다 공간적 구분을 취해 봅니다.

초기_전주, 정읍 시절(1967~1977.2) 이상기후, 불꽃

중기_광주 시절(1977.3~2006.3) 전라도 시인, 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 황홀한 물살, 푸른 심연

후기_서울 시절(2006.4~2023.1) 입술, 강변북로, 튤립이 보내온 것들, 두 개의 인상

 

 

초기 시들(1967~1977.2)은 개인적인 낭만적 서정, 존재론적 추구와 현실 인식이 싹트는 시기로서 역사적으로는 박정희 군사정부가 점점 더 압제를 강화해 가던 독재 시대였습니다. 비공식 처녀작 귓밥 파기, 신춘문예 당선과 그 주변 이야기. 박정희 시대, 그건 군사독재의 시대였으나 산업화 내지 경제개발로 터무니없이 미화된 시대였습니다. 1966년 동아일보에 당선한 시 1965는 우리 민족으로서 수치스러운 그해 1965년은 죽어도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못 박은 1965였습니다.

1965년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이후 60년 이상 지배할 굴욕적인 한일 관계의 단초가 되는 의미가 중요했고(시에서는 그것은 일천구백육십오년이라는 후렴구 같은 묵언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음) 월남파병은 한일회담의 치욕을 겹겹으로 포장한 슬픔의 표현일 뿐. 이 시는 전년 1215일자 전북대신문에 먼저 발표하였다는 이유로 당선 취소되었습니다.

1967년 조선일보에 당선한 대운동회의 만세 소리는 아득한 고구려 시대, 현재의 병사 시절, 죽어가는 병사의 어린 시절 대운동회의 시간. 이처럼 시간대가 다른 시 속의 주인공을 하나로 묶어 서술한 까다로운 삼중 구조의 시입니다. 미국의 용병으로 병사가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베트남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순간의 비극적인 그림입니다. 남의 나라 전쟁에 팔려가는 현실에 대한 고발을 다룬 일종의 반전(反戰) 시입니다.

1969년 서울신문에 北女의 노래는 어머니 이름으로 응모했던 작품.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장부일의 친구여 우리들의 할례를진순이의 전라도 말씀이희자의 北女의 노래이활용의 겨울 외출등이었다. 남은 2편 중 北女의 노래는 리리컬한 작품. 질이 고른 언어와 여성적인 섬세한 정서가 치밀하고 매력적이나 신인으로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의욕이 부족했다. 겨울 외출은 전자에 비하면 현대적 경향에 민감한 편이었다. 물론 그의 언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20대 초기의 자기탈피를 위한 내면 표출에 무난히 성공한 작품이다. _1969년 서울신문 심사평 (박남수박목월)

그 겨울 어느 저녁 서울신문 지사의 기자가 우리 집에 와서 이희자 씨를 찾아 어머니가 나서며 찾는 이유를 물으니 그 사람이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가져왔다고 했으며 모르겄소. 우리 아들이 그런 일을 헌 모양이오.”란 대답을 듣고 혹시 여성이 맞는다면 당선된다고 했다던가, 그런 전언을 나중에 어머니에게서 들었습니다. 신춘문예 시 당선자는 대부분 남자들 일색이어서 여성 신인에 대한 기대가 클 수도 있었겠습니다. 姜西華 폐원廢園의 기교는 풍부한 정서와 언어감각이 매우 예리한 점에서 오히려 박정만의 병사兵士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보충할 만했다. 그러나 이 시는 너무 참신한 이미지의 구사에 주력한 나머지 오히려 그 이미지의 상극적인 소실을 가져왔고 주제의 핵심을 잃어 산만한 결과를 초래했다. 발랄한 시의 재기를 아끼면서도 당선으로까지 이끌어 올리지 못하는 것이 선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_1968년 조선일보 심사평(박두진김수영) 강서화는 강은교의 또 다른 필명이었지요.

정읍 시절을 돌아보고 싶은 시로서는 불꽃연작과 정인숙 여인 피살 사건을 풍자한 불길 속의 마농, 낭만적 환상의 아름다움을 그려본 램프의 시낭만적 열정과 허무를 그린 율리의 초상이 있습니다.

 

중기 시들은 광주 30년간(1977.3~2006.3)의 기록이 됩니다. 박정희 개인의 종신 집권을 위한 유신 독재의 암흑기, 그리고 10.26 유신의 종말, 5.18 광주 학살의 신군부와 88 올림픽, IMF 시기, 이어서 21세기의 현대를 건너오면서 나는 현실세계에 반응하는 시편들을 썼습니다. 검은 달이 쇠사슬에 꿰어 올린 강물 속에」 「밤 버스를 타고」 「」 「불길 속의 마농」 「남행 길」 「팬지꽃등이 그런 시들입니다. 그것은 역사의 흙탕물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아프게 견디면서도 꿈(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노심초사의 산물들이었습니다. 특히 5.18 광주의 아픔을 몸으로 겪은 생생한 증언이 담긴 시집 칼레의 시민들에 앞서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의 실상을 쓴 데사파레시도스1986목요시동인지에 발표하여 우회적으로 광주 오월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광주 오월이 10년이 흘러도 진실은 굳게 입을 다물고 강제된 침묵에 조용히 먼지가 내려앉는 세월에 보랏빛 남쪽」 「산수유꽃 피기 전」 「누락」 「거리에 비를 세워두고이런 시들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따금 미망과 허전한 무욕 속에 문득 반짝이는 것들이 세차게 정신을 몰아세울 때 나는 아랫것은 불편하다」 「물소리가 그대를 부를 때」 「병 속에 고양이를 키우세요」 「물 속 풍경같은 시를 쓰며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후기의 시들은 뒤늦게 2006년 봄에 상경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들입니다. 젊은 시절 상경하여 내 꿈을 펼쳐보고 싶었으나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소리 없이 스스로를 학대하다가 뒤늦게나마 불끈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열심히 쓰라,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쓰라. 영혼의 명령 아래 나는 시의 사도로 복무하기에 지치지 않을 겁니다. 그와 같은 각오를 다지며 쓴 시들⸻「장미의 독」 「능소화를 피운 담쟁이」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빈 손의 기억」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그러한 굳은 의지를 불러내어 쓴 작품들입니다. 대운하의 꿈을 역설하던 MB 시대에 들어 나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유턴을 하는 동안」 「붉은 가면」 「강변북로를 씁니다. 2008년 성탄 무렵 이스라엘이 열화우라늄탄, 백린탄 등 무자비한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처참하게 도륙하는 비극을 쓴 신들의 놀이터는 인류애의 뼈저린 소망을 담은 시, 수천 년 전 미라로 발굴된 백골의 시신이 보여주는 영원한 사랑의 찬가 발다로의 연인들, 나아가 생명을 가진 존재를 향한 연민의 아픔을 그린 장미가 부르는 편서풍은 노역을 못 견디고 자살을 선택한 당나귀의 비극을 다룬 시. 이제 개인에서 사회로, 공동체 사회에서 인류와 모든 생명체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시 세계는 마지막에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의 세계로 수렴하고자 합니다. 시집 튤립이 보내온 것들은 독재자 아버지의 헛된 영광을 좇고자 하다가 무위의 몸짓으로 철학 없는 자기 세계를 세우지 못하고 모래처럼 부서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여성 대통령의 비극, 그 처음부터 끝까지를 시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왕의 눈물」 「아이즈 와이드 셧」 「벽에 걸린 바다」 「가라앉은 성당등 세월호의 참사를 시대와 함께 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의 시집 두 개의 인상에 대한 이숭원 평론가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강인한 시인이 현실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취하는 것은 그의 관심이 인간에 있기 때문이다그의 시작의 출발과 끝에는 늘 인간이 있다인간은 한 마디로 딱 잘라 규정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존재다인간이 이루어내는 역사 역시 복잡다기한 몇 겹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렇기 때문에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인간과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 역시 복합적 다층의 시각을 갖기 마련이다강인한 시에는 다층적인 인간 이해의 저변에 놓인 두 개의 축이 있다그것은 인간의 양심과 정의에 바탕을 둔 휴머니즘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에 바탕을 둔 리리시즘이다푸른 당나귀 두 개의 인상은 이 두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두 시를 함께 읽고 생각해 보면 머나먼 서쪽나라 파이윰에서 본 ‘푸른 당나귀’ 모형이나어릴 때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여고생과 흰 물소리의 청순한 감각이나향연 속에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의 모습이나 모두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간직한 삶의 단층들임을 알 수 있다인간에 대한 강력한 관심이 이 두 편의 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시인은 기억의 갈피에 남아 있는 것이건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이건인간의 다양한 행적과 삶의 굴곡진 곡절을 사색하고 여과하여 시로 표현한다그러한 사색과 실천의 시간 속에서 그의 의식의 지향은 언제나 순수를 향한다그것은 앞의 두 개의 인상에서도 확인되지만, “사물은/내 피가 닳는 저 어둠의 뒤에서/희게 말하고/희게 웃는다.”(희게 말하고희게 웃는다)라는 구절에서 분명히 체감된다.”

 

 

9. 시단의 원로로서 후배 시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시집 발간이나 기타 개인적인 일 등)이 있으시면 귀띔해주세요.

 

답변: 청탁 받은 시를 다 쓴 다음 긴가민가한 말들이 있으면 반드시 사전을 찾아보십시오. 혹시 무심결에 나온, 아직 국어로 인정되지 않은 입말을 쓴 것은 없는지 가다듬어 살펴볼 일입니다. 긴 문장의 시행은 다시 줄일 수 없겠는지 한 번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침표를 찍지 않았는지, 찍었는지 확인하십시오. 나는 후배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문장이 끝나는 곳에 마침표를 찍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동번역기에 한글로 쓴 시를 넣어서 다른 외국어로 번역해낼 때, 마침표가 없다면 기계는 시인이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의미로 번역할 것이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기왕 시에 쓰는 문장을 어법에 맞게 정학하게 쓰십시오. 애매모호하게 쓴 시구가 마치 대단히 시적이라고 자만하지 말길 바랍니다. 문장이 바르지 않은데 시가 바르게 설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이제 내년이면 우리식 나이로 80이 됩니다. 그만큼 많이 살았다는 것이며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게지요. 할 수만 있다면 내년에 열두 번째 시집을 내고 싶습니다. 내 욕심대로 손과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 것을 나도 어찌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내년이 가기 전에 꼭 열두 번째 시집이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른 욕심은 더 없습니다.

 

 

‘푸른 시의 방’을 운영하며 좋은 시 보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강인한 시인1 < 스페셜 집중조명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푸른 시의 방’을 운영하며 좋은 시 보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강인한 시인1 - 미디어

인터뷰 진행: 하린 시인 에서는 20년 넘게 ‘푸른 시의 방’을 운영하고 계신 강인한 시인님을 초대했습니다. 그동안 ‘푸른 시의 방’을 운영하시면서 좋은 시 보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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