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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화된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이승하 시인의 휴머니즘적인 시선과 시심(詩心)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8. 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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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푸른 출판사 두 번째 테마시선 인간으로 사람 사막출간

 

 

하린 기자

 

사람 사막은 이승하 시인의 열여섯 번째 신작 시집이다. 더푸른 출판사가 기획한 테마시선의 두 번째 시집으로서 시로 인간을 탐구한 특별한 작업을 했다. ‘인간을 모티브로 하는 시를 쓴다는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승하 시인은 시적 직관을 활용해 인간이라는 대상이 가진 본질을 예리하게 간파하려고 노력했다. 독서 환경에 따라 독자들이 삶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묘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시적 언술을 통해 인물이 가진 특징을 꿰뚫어 보듯 인물화를 그렸다.

 

1시인들에서 탐구한 인물은 시인들이다. 김영승, 김소월, 백석, 김수영, 천상병, 기형도, 나혜석, 이상, 임화, 서정주, 윤동주, 한하운, 박인환, 천상병, 박희진, 정진규, 윤후명, 박정만, 중국 당나라 때의 두보와 이하, 프랑스 상징파 시인 랭보와 보들레르와 베를렌 등 이름이 알려진 시인부터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시인까지 이승하의 관심 대상이 되는 순간 시인들은 상징적인 존재로 탈바꿈한다. 그들의 삶의 치열함과 이른 죽음의 비애를 시종 따뜻한 시선으로, 또 다양하게 포착한 후 그들의 특징을 형상화한다.

 

2폭력에서는 온갖 종류의 폭력 앞에 희생되었거나 폭력을 행사한 역사적 인물의 시간과 공간을 다룬다. 김대건 신부, 김덕령 장군, 이순신 장군, 화가 최북, 마르크스, 푸틴, 최익현, 명성황후, 고종, 순종, 박열, 안중근, 홍범도, 도스토예프스키, 가미카제 특공대원 박동훈, 탈레반에게 끌려가 처형된 배형규 목사, 연쇄 살인을 저지른 일본의 중학생,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조승희와 스티븐 패덕 등이 등장하는데, 각종 폭력 상황을 예리한 시선으로 확인하고 고발한다.

 

3비폭력에서는 폭력을 뛰어넘는 사랑의 숭고함과 희생정신, 예술혼 등을 다룬다. 조만식의 아내 진선애, 무명용사, D.H. 로렌스, 인간문화재 장용수, 문학평론가 김윤식, 소설가 김승옥, 영화배우 이영호, 가수 김현식, 맹아학교 학생들, 이창동 감독, 소설가 송상옥, 시인의 가족 등이 등장하는데,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용에 기반한 시편이 모여 있다. 폭력과 광기의 나날을 다루었던 시인이 기실 사랑을 탐구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박애주의자임을 알게 하는 시편이다.

 

시집을 다 읽게 되면 독자들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휴머니즘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인 휴머니즘은 인종ㆍ국적ㆍ종교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의 공존을 꾀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사해동포사상이다. 물리적 폭력이나 정치적 억압 같은 한계상황에서도 시인은 그것을 뛰어넘는 차별 없는 사랑을 발견하고 시로 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각종 폭력 앞에서 고통을 겪고 있기에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모래벌판인 사람 사막인 것이다. 그런 상황이 끝나지 않는 한 시인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사람 사막에 비를 뿌리는 휴머니즘의 확산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창씨는 해도 개명은 하지 않았다

히라누마 도오쥬우[平沼東柱]

일본 본토에 가 공부한다는 것이 그다지 욕된 일이었을까

성씨를 고쳐 신고한 날 1942129

그 닷새 전에 시를 썼지 참회록

여백에 낙서할 때의 기분이 어땠을까

시인의 고백, 도항증명, , 생존, 생명, 문학, 시란? 不知道, 古鏡, 비애 금물*

 

조상을 부정하라고 한다

히라누마 도오쥬우!

하이!

매일 매시간 일본 교수가 출석부 보며 부른 낯선 성

대답할 때마다 떨리는 입술

육첩방은 남의 나라 내 나라가 아닌데

시를 썼기에 요시찰인물

시를 썼기에 1945216일 오전 316

후쿠오카 형무소 캄캄한 독방에서

크게 한 번 외치고 쓰러져 죽었다

!

 

* 윤동주(19171945)1942124일에 쓴 시 참회록아래에 이런 낙서를 해놓았다.

 

― 「잃어버린 성을 찾아서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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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아닌 나라를 떠나

미국에서 유럽에서 남미에서 춤추라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언어 이전의 몸

언어 이후의 춤

그대 그저 춤추었을 따름인데

일본군 위문 공연이 친일로 낙인

저 외침 소리 욕설일까 환호성일까

남에서도 춤으로 북에서도 춤으로

월북했다고 남에서는 지워졌고

주체예술사상이 아니라고 북에서도 사라졌다

그대 오직 춤추었을 따름인데

일본에 가서 배웠으나

조선의 정을 넘어 동양으로 서양으로

동양의 기를 넘어 대양으로 대륙으로

그대 남편 안막 잃고 아이 잃고 벙어리 되어

 

몸으로 웃고, 그래서 울었고

몸으로 울고, 그래서 웃었다

 

* 최승희(19111967), 안막(1910?)

 

― 「그대 춤추라 최승희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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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백사장이 오늘따라 더 하얘 눈부시네 모래 위에 꽂힌 깃대의 깃발들 제가끔 푸르르 떠는데 까마귀들 무엇을 먹겠다고 저렇게 몰려와서

 

저 젊은이 머리 이제 곧 백사장에 나뒹굴 것이다 나이 고작 스물여섯이란다 망나니 생활 삼십 년에 저런 홍안은 처음이네 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가

 

군문효수軍門梟首…… 낭독하는 사형선고문에 나와 있었다

 

전례대로 두 귀에 화살을 꽂았소 피가 목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소 두 군졸이 양 겨드랑이 밑에 두 개의 몽둥이를 끼워 넣어 앞뒤에서 걸머맸다오

 

오늘 우린 저 총각을 염라대왕한테 보내야 한다 빨리 목을 베자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말야 장가도 못 갔다는군 애비와 작은할배는 효수형으로 증조할배는 옥사로 그만

 

서학괴수西學魁帥…… 포도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업이 망나니다 술도 고기도 칼을 휘둘러야 생기고 주막집에도 봉놋방에도 피 묻은 칼 씻어야 갈 수 있단다 하늘 우러러 뭐가 부끄럽겠냐

 

그때 느닷없는 외침 소리 빙빙 돌다 정신 차려 보니 그만 도시오 어지럽소 빨리 내 목을 치시오 나는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내 목을 자르시오

 

수선탁덕首先鐸德…… 그렇게 불려진 사람이 있었다

 

각자 한 번씩 내려치기 시작했소 젊은이라 그런지 목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소 한 칼 두 칼 세 칼…… 여덟 번째 칼을 맞자 비로소 나뒹구는 머리

 

형리가 머리를 주워들었소 목판에 얹어 포도대장 앞으로 가 검사를 받았소 다들 수고 많았다 물러가 목을 축이도록 하라 그날 밤엔 나 술을 못 마셨소

 

안드레아…… 교인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임금을 안 믿고 하늘나라의 임금을 믿는 것은 죽을죄인데 왜 그런 죄를 지었던 것일까 죄를 지었으면 용서해 달라 빌어야 하는데 곧 죽어도 저렇게 꼿꼿하게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 의연한 표정과 그의 말이다 그만 도시오 어지럽소 빨리 내 목을 치시오 나는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내 목을 자르시오

 

* 김대건(18211846)

 

― 「새남터 망나니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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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기 기자 『사람 사막』은 이승하 시인의 열여섯 번째 신작 시집이다. 더푸른 출판사가 기획한 ‘테마시선’의 두 번째 시집으로서 시로 인간을 탐구한 특별한 작업을 했다. ‘인간’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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