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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고명재 시인, 첫 번째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8. 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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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채색 진동으로 전하는 슬프고도 다정한 위로의 감정

 

 

 

이미영 기자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고명재 시인이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발간했다. 시만 꿈꾸고 시만 사랑하겠다고 작정한 지 10년 만이라고 한다. 돌아보니 온통 사랑시를 쓰고 있더라라고 한 그에 대해 박연준 시인은 실로 오랜만에 피가 도는 살아 있는 시를쓰는 시인을 만났다고 발문에서 언급했다.

 

고명재 시인의 시는, 시가 피상과 관념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삶의 한가운데에 시가 있다는 것. 언어를 옷처럼 밥처럼 사용하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시의 효용과 시를 읽는 기쁨과 슬픔, 쓰는 자의 성심을 기억나게 한다.(박연준)

 

그의 시는 무채색 농담에서 스며드는 맑고 쓸쓸한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것은 그가 시를 대하는 절박함과 순수함으로 고양된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압선을 힘껏 당기고 싶고, 담을 넘는 범의 젖이 쓸려서 차게 우는 풍경그리움 속에 왕릉만한 비탈이있어서 소나기 그칠 때 구름이 뚫릴 때샛노란 빛의 입자를 후루룩 삼키게 하는 풍경 묘사가 그것을 반증한다.

 

그는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거는시인이다. 시 속에는 색을 다 뺀 무지개수육을 써는 늙은 엄마가 있고, 이복동생이 있어서 복이 두 배가 된아버지가 있다. 은빛이 금빛으로 눌어붙을 때까지 멸치 볶는 걸 지켜보다 새가 되기로 결심한 할머니와 눈 밟는 소리에 심장이 커지는 개들도 있다. ‘불쑥에서 시작된 모티브가 생생하게 살아서 시를 지배한다.

 

다정과 슬픔으로 다가서는 그의 시는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강한 푼크툼(punctum)을 불러일으킨다. 롤랑 바르트의 책 밝은 방에서 처음 제기된 개념인 푼크툼은 찌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상식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상이나 순간의 강렬한 충격 및 여운의 감정을 말한다. 즉 시인은 독자에게 위로나 쓸쓸함을 직접적이고 즉답적인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독자에게 누가 울 때캄캄한 이국(異國)되어주고 누가 울 때 살이 벗겨지지만 꽃이 되게 한다.” 삶과 죽음, 행운과 불행, 매장된 기억, 그리고 다 겪고도 안아주는일련의 감정들이 그의 시 전반에 흐르고 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이 헛물을 켜는 일일지라도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 등불을 켜리라고 다짐한다.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제목에 대한 시인의 단상은 어떤 것일까. 키스란 타인과 함께 하는 가장 환한 행위인 동시에 눈을 감고 어둠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자신의 시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더불어서 끝맺지 않고 열어놓은 제목의 뒷부분을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고명재

 

가게문을 닫고 우선 엄마를 구하자 단골이고 매상이고 그냥 다 버리자 엄마도 이젠 남의 밥 좀 그만 차리고 귀해져보자 리듬을 엎자 금()을 마시자 손잡고 나랑 콩국수 가게로 달려나가자 과격하게 차를 몰자 소낙비 내리고 엄마는 자꾸 속이 시원하다며 창을 내리고 엄마 엄마 왜 자꾸 나는 반복을 해댈까 엄마라는 솥과 번개 아름다운 갈증 엄마 엄마 왜 자꾸 웃어 바깥이 환한데 이 집은 대박, 콩이 진짜야 백사장 같아 면발이 아기 손가락처럼 말캉하더라 아주 낡은 콩국숫집에 나란히 앉아서 엄마는 자꾸 돌아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오이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입안은 푸르고 나는 방금 떠난 시인의 구절을 훔쳤다 너무 사랑해서 반복하는 입술의 윤기, 얼음을 띄운 콩국수가 두 접시 나오고 우리는 일본인처럼 고개를 박고 국수를 당긴다. 후루룩후루룩 당장이라도 이륙할 것처럼 푸르륵 말들이 달리고 금빛 폭포가 치솟고 거꾸러지는 면발에 죽죽 흥이 오르고 고소한 콩물이 윗입술을 흠뻑 스칠 때 엄마가 웃으며 앞니로 면발을 끊는다 나도 너처럼, 뭐라고? 나도, 나도 너처럼, 엄마랑 나란히 국수 말아먹고 싶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등불을 켜야지 예민하게 코끝을 국화에 처박고 싶어 다음 생엔 꽃집 같은 거 하고 싶다고 겁 없이 살 때 소나기 그칠 때 구름이 뚫릴 때 엄마랑 샛노란 빛의 입자를 후루룩 삼키며

 

—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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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형

 

고명재

 

나아가는 방식에도 자유가 있다니

팔로 만든 아치에도 형식이 있다니

사람들은 어떻게 하트를 그리는 걸까

물을 밀며 물을 마시며 물과 싸우다

물배가 차서 수박처럼 동그래지고

 

무지개를 상상하며 팔을 뻗어요

강사님의 아름다운 설명 때문에

물속에서 입 벌리고 울 뻔 했어요

이대로 팔과 다리에 살이 붙으면

죽은 개들을 다시 만나러 갈 것 같아서

 

님아 그 강 그 강 모두 강 때문이죠

번들거리는 몸도 마음도 강 때문이죠

수영을 시작한 건 귀하게

숨을 쉬고 싶어서

죽을 것처럼 보고플 때 빠지지 않고

숨을 색색 쉬며 용감하게 나아가려고

 

그러니 우선 자유부터 익혀야 해요

몸에 힘을 빼고

수박에 줄을 긋듯이

물속에선 마음껏 일그러져도 괜찮아

벼락의 길을 부드럽게 따라 흐르며

멍든 팔을 구명줄처럼 수면에 뻗을 때

 

내 무지개 속엔 개가 있고 엄마가 있고

언덕이 있고 복수(腹水)가 차고 무덤을 그리고

내 그리움 속엔 왕릉만한 비탈이 있어서

정수리 너머로 봉분을 힘껏 끌어안을 때

심장을 그리는 법을 알 것 같은데

 

나는 청어를 알아요 등 푸른 몸과 헛물을 안아요

물을 잔뜩 먹고 부푼 나는 하마가 되어

부드럽게 유영하는 할머니들을 봅니다

백자 같은 인간의

어깨와 곡선

아름다움은 다 겪고도 안아주는 것

 

어때요 기분좋은 저항이 느껴지나요

물레 감듯 모든 걸 안고 나아가세요

강사님은 아름다운 말만 툭툭 내뱉고

나는 그게 수박씨처럼 귀하고 예뻐서

눈귀코를 번쩍 뜬 채 팔을 뻗쳐요

그렇게 품을 알 때까지 수영은 계속되어요

 

—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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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입술

 

고명재

 

당신 셔츠의 소매가 곱게 사각거릴 때

어쩌면 우리는 튀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명재씨, 부르는데 입을 맞출 뻔

번들거리는 입술로 순간 환해져버릴 뻔

 

눈귀코로 사랑이 바글대고 있는데

솟고 싶다 헤엄치고 싶다 비 맞고 싶어

기름은 씨를 꾹꾹 짜낸 빛이라서요

 

좋은 튀김은 아침볕과 색이 같다고

늙은 조리사는 손등을 보여주었다

안이 다 비치지요?

여름옷처럼

얇은 튀김옷으로 우린 갈아입고서

 

그렇게 커튼을 손목과 강을

시와 입술을

반투명하게 읽고 반쯤 사랑해버리고

 

자꾸만 솟는 사랑의 은유를 젓가락으로 누르며

우리는 온갖 기름진 말을 나누는 것인데

 

참기름: 한국에선 가장 참된 것

모든 요리의 마무리로 금박을 입히죠

카놀라유: 유채 꽃씨를 힘껏 짜낸 것

꽃이 될 뻔했던 씨의 땀이었다니

그래서 호박이 이렇게 밝고 고소한가요

 

올리브유: 올리버올리버올리버올리버

당신의 이름을 연거푸 말하면 여름이 불타고

해바라기유: 맥주를 따르면 웃는 걸 본다

개기름: 눈길만으로 불이 붙을 때

 

입술이 옴짝달싹 기름을 바르고 리듬을 입고 마음을 업고 무릎은 꿇고

미강유: 아름다움에 대해 강하게 말하자

쌀눈유처럼 사랑의 눈을 번쩍 뜬 채로

몰라유: 전라도로 여행 갈래요

 

사랑을 해야지 심장을 구하자 기름 속에서

작약이 모란이 겹벚꽃이 흐드러지는데

늙은 조리사가 살짝 윙크를 한다

마음속 깊이 두 손을 담그면 별들이 튀고

너무 익으면 날 수도 있어 장대를 다오!

튀김기 속에서 새우들이 솟아오른다

 

—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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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고명재 시인, 첫 번째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이미영 기자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고명재 시인이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발간했다. 시만 꿈꾸고 시만 사랑하겠다고 작정한 지 10년 만이라고 한다. 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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