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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시인 시집 『신의 반지하』와 디지털 시집 『나는 수천 마리처럼 이동했다』를 동시에 출간해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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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7. 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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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2012내일을 여는 작가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시집 탄잘리교를 출간한 바 있는 박유하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신의 반지하(끝과시작, 2023)와 디지털 시집 나는 수천 마리처럼 이동했다(끝과시작, 2023)를 동시에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첫 시집 탄잘리교에서 세계와 가 불화함으로 발생하는 균열을 기꺼이 삼켜 제 안에서 더 크고 깊게 키워 내는 시인”(이병철 시인, 평론가)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는 시인은 신의 반지하에서 더욱 깊어진 시적 세계와 자의식의 심연을 예민하게 들여다본다. 그는 세계의 불일치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비로소 유한한 존재의 아름다움을 꺼내어 든다.

 

시인에게 나다워진다는것은 때로 어둠으로 드러나는 방법을 빛으로 터득할 때에야 보인다. “벽지 속으로 다시 스며들거나 얼룩말처럼 잘 달리는 얼룩이 되거나 수천 개의 다리가 달린목숨이 되어 수없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방의 침묵을 살아냄으로써 자신의 생기를 찾아간다. 그는 먼 곳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지금 이곳, 가까운 곳 또는 작은 방 안에서 어떤 위험에 직면하면서도 부단히 자신만의 방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공간이면서, 자아와 세계의 이질적인 부딪힘들에 다친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공간이다.

 

한 시인이 세계로부터 고립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방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시인이 세계의 확고하고 단정적인 장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과 그곳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교차시키지만, 결국 그가 삶의 구체를 느끼는 곳이 혼자 있는 방임을 시집 곳곳에서 드러낸다.

 

박유하 시인은 세계에 대한 출구와 입구가 열고 닫히는 동안, 점점 더 단단해진 자신의 방(시세계)을 끊임없이 만들어 갈 것이다. 신의 반지하는 그런 시인의 의지와 감각이 갖는 첫 번째 성과물이다.

 

 

 

나는 수천 마리처럼 이동했다에서 시인은 본인이 직접 편집한 디지털 변형 이미지와 이야기 시를 활용하여 작품을 구성했다. 시적 고민의 흔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디지털 포엠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개척하여 시적 영역을 확장시킨 점이 눈에 뜨인다.

 

이러한 시도는 시의 난해성을 해결하고자 하는 하나의 장치로써 꿈과 같은 모호한 이미지와 그것의 분진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고자 한 시인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포엠은 기존의 디카시가 가진 선명한 이미지와 5행 이내의 문장이라는 제한된 형식에서 벗어나, 이미지의 자유로운 변형과 텍스트의 글자 수가 디카시보다 많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또한 다양한 시적 변용을 위해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 시집 신의 반지하의 모티브를 활용하여 형식의 확장을 실천했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조합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 둘의 조합이 어떤 효과와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 시집은 총 38편의 시와 이미지에 더해 시작 노트가 매 편마다 실려 있다. 시작 노트는 시의 이해를 돕고, 시의 확장과 깊이를 더해 주는 역할을 한다. 시인의 시는 수천 개의 다리가 달린 벌레처럼 선명한 꿈과 혼몽한 현실을 감각적으로 섬세하게 통과한다. 혼몽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인은 꿈의 공간에서 시를 쓴다. 생의 막을 올리듯이 더듬더듬.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기에 혼자 남은 방에서 유물처럼앉아 자신의 지금-여기를 아프게 감지한다. 이명으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온전한 자아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방법은 죽은 척하거나 영원히 살아 있는 척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게 하고, 스스로에게는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방식이다.

 

나는 수천 마리처럼 이동했다는 매력적인 디지털 사진 요소와 예민한 시적 감각이 어우러진 상태에서 세계와 존재에 대한 내밀한 질문을 던지는 시집이다. 이 시집을 읽게 되면 박유하의 시 세계 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가치관, 타인이 관장하는 세계 속에서 행하고 있는 처절한 존재 양태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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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피부의 진화

 

박유하

 

자고 일어나니 피부에 검은 무늬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

나는 펑펑 울었고 엄마는 나를 달래 주었다

악몽이란다, 얼룩말처럼 잘 달리는

 

출렁이는 사춘기를 지나 나는 어느덧 윤기 있게 마른 얼룩을 갖게 되었다

참으로 멋진 피부를 가졌군요

나는 튼튼한 다리와 근육이 모두 이 얼룩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직감했다

 

얼룩을 쓰다듬는 어느 날 출렁거리는 얼룩이 나를 덮치기 전까지 나는 자신만만했던 것이다

까맣게 커지다가 하얗게 작아지는 얼룩을 나는 밤새도록 문질렀다

 

지독한 애무였다 나의 사랑을 받다 지친 얼룩에

먼지나 머리카락들이 쓸모없이 붙었다

마침내 얼룩이 적적한 친근에 대해 자꾸 속삭이는 것이다

 

나는 식은땀처럼 맺히는 얼룩의 마음을 자주 닦아 주었다

 

― 『신의 반지하, 끝과시작, 2023.

 

 

 

 

박유하

 

혼자 자취하는 방에 머무르면 호흡으로 나를 미행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러한 방에 들어서면 나를 오래 떠돌던 흔적이 곤죽이 된 지도같이 뭉쳐져 있다

 

방은 구석이 아닌 적이 없다 나는 이곳에 거주하기 위해 이목구비, 양쪽의 팔과 다리를 몰아넣는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깜짝 놀라기도 한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 하면 회오리치다가 머무는 중력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방은 태어난다 불현듯 길목에 주저앉는 사람은 바람처럼 길을 돌다 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방으로 맺혀 있는 사람은

신호등이 바뀌고 뒤에 있는 사람들이 길을 재촉해도 눈의 초점이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견디고 있는 방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눈이 방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될 때

차오르는 방의 내부가 흘러가지 않도록 나는 가느다란 다리들을 뻗는다

 

바람이 불면 가느다란 다리들은 방을 더욱 흔들어 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 『신의 반지하, 끝과시작, 2023.

 

 

 

새 조련사

 

박유하

 

 

 

우리는 자신의 숨을 지휘하는 새를 최대한 멀리 보내고

그것을 미행하며 숨을 잇는다

 

새는 숨으로만 느낄 수 있는 귀신이다

 

새와 가까이 지내면 숨소리가 들린다

고독할 때만이 우리는 새와 놀 수 있다

 

타자의 숨 속에서 나는 최대한 나의 새를 몰아내며 죽은 척하기도 하였다

 

― 『나는 수천 마리처럼 이동했다, 끝과시작, 2023.

 

 

 

추적

 

박유하

 

 

책벌레가 눌려 죽은 채 작은 점으로 남았을 때도 종이의 여백이 서서히 흘렀다

 

나는 이러한 여백의 흐름 속에 비친 몸을 내려다보곤 한다

머리까지 물속에 들어간 침수성 식물처럼 손이 올라가고 허리가 굽어지다가 전신을 엎드릴 때 급류가 흐르곤 했다

 

춤은 이러한 이동을 몸속으로 삼킨 증상이다

 

― 『나는 수천 마리처럼 이동했다, 끝과시작, 2023.

 

박유하 시인 시집 『신의 반지하』와 디지털 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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