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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권 시인의 첫 번째 산문집 『방울 슈퍼 이야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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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7. 1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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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슈퍼가 동네의 따뜻한 무릎이자 골목의 꽃인 이유

 

 

 

하린 기자

 

황종권 시인의 첫 산문집 방울 슈퍼 이야기가 걷는사람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여수의 작은 슈퍼집 아들로 태어나 늘 동네 꼬마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인이 정성껏 쓴 에피소드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시인은 여수의 작은 마을 국동에 있는 유일한 구멍가게인 방울 슈퍼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방울 슈퍼를 온기로 채워 준 수호신 할머니들부터, 짤랑거리는 동전을 들고 과자를 사기 위해 기웃거리던 어린아이들까지. 시인은 방울 슈퍼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따뜻한 이웃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며 과자 하나에 울고 웃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방울 슈퍼 이야기안으로 소환한다.

 

황종권은 삶이 작은 추락의 연속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끝없는 바닥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시인에겐 긴 밤이 지나도록 헤아리기 어려운 추락이 있었다. 그러나 방울 슈퍼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마음을 보태 준 수호신이었던 이웃들이 있었던 것처럼, 시인에게도 알게 모르게 희망의 좌표를 찍어 준 벗들이 있었다. 소소한 일상이 하나의 추억이 되어 생을 지탱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시인은 삶이 절망을 안겨 줄 때도 자신을 대하는 작은 위로와 긍정적인 사유 하나하나가 삶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좌절하는 대신 작은 움직임을 실천하고자 하는 시인의 태도와 세계를 감싸는 시선이 에세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사는 일이 녹록지 않고 그리운 자리가 욱신거릴 때, 방울 슈퍼 이야기가 편지처럼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방울 슈퍼는 사라지고 그 시절의 마음을 공유했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있지만, 추억을 나눈 이들의 마음속 방울 슈퍼는 여전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지나온 하나의 시절, 그 그립고도 애틋한 기억을 방울 슈퍼라는 이름으로 선사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생의 소중한 면면을 되돌아보게 하고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삶의 낱장들을 포개어 아름답고 따뜻한 문장을 우리 앞에 선보인 황종권 시인. 다음 작품집에서도 자신이 사랑한 풍경과 끝까지 살아낼 삶의 편린들을 소중하게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책 속 문장 미리 맛보기>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붐비는 곳이라 사건 사고도 많았다. 하루는 설란이가 막걸리 병뚜껑을 손가락으로 구멍을 다 내 놨다. 예전엔 막걸리 병이 종이로 막혀 있었다. 무려 막걸리 한 짝에 구멍을 죄다 낸 것이다. 슈퍼집 여자는 그날이 몹시 난감했다고 한다. 구멍 뚫린 막걸리는 다시 팔 수 없기에 물어내라고 해야 했다. 그런데 어른 체면이 있지 않은가. 애가 한 짓을 가지고 받기도 뭣하고, 체면을 지키자니 막걸릿값이 울고, 여수 사투리로 이러코롬도 저러코롬도 못 하고 있었단다. 그때 설란이 할머니가 나타나 막걸리 한 짝 값을 지불하며, 전설처럼 한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다 마실 때까지 아무도 못 가.”

―「방울 슈퍼의 전설들, 19

 

 

막상 소풍날이 오면, 과자가 빛나지는 않는다. 이유 없이 좋고, 굳이 뭘 하지 않아도 좋다. 좋은 것에 이유를 묻는 건 어른이고, 좋은 것에 이유조차 모르는 게 아이이다. 그리하여, 비슷한 과자를 먹어도 특별하게 달달한 하루가 소풍이다. 사실 소풍은 어떤 걸 먹었느냐, 어떤 곳으로 갔냐가 아니다. 그냥 소풍 자체가 소풍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소풍은 봄과 같다.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사브레의 권력, 36

 

 

방울 슈퍼는 참으로 많은 도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코흘리개부터 다 큰 어른까지 범죄적 충동을 일으키기에 좋은 곳이었다. 때문에 슈퍼집 여자는 매의 눈이 되어야만 했다. 도둑놈들의 취향은 늘 한결같았다. 부산스러운 봉지 과자보다 초콜릿을 선호했다. 초콜릿은 질적으로나 미적으로나 도둑의 마음을 훔치기 좋았다.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하여, 초콜릿류는 슈퍼집 여자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비치되었고, 개수까지 세어 놓았다. 그런데도 가장 많이 도둑맞는 건 언제나 초콜릿류였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도둑들의 취향은 미니쉘이었다.

―「미니쉘, 없는 마음도 고백하고 싶은, 57

 

 

장마철이면 방이 운다고, 연탄을 때웠다. 습기를 잡겠다고 불을 놓는 것인데, 그 불은 우는 아이를 뚝 그치게 하는 맛이 있었다. 연탄불에 구워 먹는 쫀드기의 맛. 누군가에겐 마냥 달콤한 맛이겠지만, 나에게는 눈물을 닦아 주는 맛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아들로 키우지 않기 위해, 단 한 번도 아버지 욕을 하지 않으셨다. 쫀드기를 구워 주던 심정도 그랬을 것이다. 가난이 아니라 추억이 되도록 어머니는 비에 잠길 때마다 쫀드기를 굽고 있었다.

―「눈물을 닦아 주는 맛, 116

 

종권아, 시인이 다 어렵게 사는 줄 알았는데. 반지하와 옥탑에 사는 시인은 너와 나 둘뿐이구나.”

정성 들여 쓰는 손가락에 힘이 풀린 듯 병철이가 말했다. 나는 왠지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주소마다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한 아파트와 빌라였겠지. 부자를 위해 투표를 하는 것처럼 미천한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었겠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첫 시집인데, 끝내 가질 수 없는 집이 있다는 걸 알았겠지. 절망한 시간도 없이 월세 납입하는 날이 오고, 청춘의 보증금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겠지. 마음부터 견디는 날이 많아,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많았겠지. 병철이 마음을 헤아리다, 이미 그 마음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는 일도 쓰는 일도 괜히 맥이 풀렸다.

―「병철과 나, 171~172

 

 

언젠가 윤슬이도 물을 것이다. 왜 자신의 이름이 윤슬이냐고. 적어도 그땐 어감이 예쁘고, 의미가 예뻐 윤슬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세상에는 잊지 말아야 하는 슬픔이 있고, 그 슬픔을 기억하게 하는 빛이 있어 윤슬로 이름을 지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세상의 강과 바다에 비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비치는 아름다움이 되라고 윤슬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말하겠다. 나의 모든 거짓말이 다 들통이 나더라도, 그땐 콩나물처럼 자란 아빠의 양심을 보여 주겠다.

―「부라보콘 두 개 먹는 날,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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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권 시인의 첫 번째 산문집 『방울 슈퍼 이야기』 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황종권 시인의 첫 산문집 『방울 슈퍼 이야기』가 걷는사람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여수의 작은 슈퍼집 아들로 태어나 늘 동네 꼬마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인이 정성껏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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