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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국 시집 『해낙낙』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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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7. 16.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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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연의 가치를 노래한 다섯 번째 시집

 

 

 

김휼 기자

 

조성국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해낙낙(시인의일요일, 2023.) 출간됐다. 조선대학교 재학 당시 학내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실형까지 살았던 시인은 1990년 수배 당시의 이야기를 수배 일기라는 연작시로 써서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했다. 그 이후 18년 만에 첫 시집 슬그머니를 내고, 창작에 몰두해 둥근 진동,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 구멍 집, 귀 기울여 들어줘서 고맙다을 낸 후 이번에 다섯 번째 시집 해낙낙을 출간하게 되었다.

 

오월이 오는 것을 월력이 아닌 피부로 느낀다는 시인에게 오월은 몸에 새겨진 과 같은 계절이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희석된다지만 좀처럼 옅어지지 않는 상흔을 몸 안쪽에 지니고 살았을 아픔의 시간들, 오월의 정신과 오월의 그늘이 인생 전반에 짙게 자리한 까닭에 쉽사리 그늘 밖으로 나서지 못하던 시인은 그늘 안쪽에 자리한 시를 지렛대 삼아 폐허의 시간을 건너왔으리. 아물지 않은 내상의 깊이를 가지고 살아온 그에게 있어 시는 빛으로 가는 통로였고 어둠을 견디는 힘이었을 것이다.

 

악몽으로 곧잘 지금도 가위눌린다는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지나온 세월의 무상함과 집,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요양원 가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와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일생 반듯하게 누워 자는 아버지, 그리고 천형 같은 간질을 앓는 형과 암에 걸려서 각종 보험을 타게 되니 빚을 털게 되었다며 오히려 좋아하는 누나, 무모한 땡강을 받아 줄 이 없음을 알고 혼자 일어서 숟가락을 든 아이. 그런 가족들을 바라보며 해낙낙 웃어보는 시인의 마음은 좌표 없는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하는 우리들 이면의 삶으로도 읽힌다. 이처럼 쓰리고 아픈 피붙이들을 향해 고향의 본래적 말로 에둘러 고백하는 시인의 서툰 사랑이 읽는 이로 하여금 먹먹한 마음과 따뜻한 여운을 갖게 한다.

 

이러한 그의 시를 보고 해설을 쓴 고재종 시인은 고유의 말을 찾아내 자기만의 독자성을 얻어내려는 시도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요새의 부박한 문화주의에 근거한 많은 도회시들이 마치 대중 예술의 트렌드처럼 반짝 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시대에 조성국이 존재의 근본과 근원인 집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우리 시단에서 흔치 않아 관심을 가질 만하기에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해낙낙하니 웃었다

 

조성국

 

딸애가 넹택없이 바라는 걸 일거에
무찔러 버렸더니
밥 안 먹는다고
땅바닥 나뒹굴며 뒈지게 울며불며 뗑깡을 부린다
글다가 달게는 사람이 통 없으니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아무도 없어 보이니까
바른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서 눈두덩 쓱 문질러 닦고는
흙 묻은 옷자락 탈탈 털며
지 혼자 밥 먹는 것을 넌지시 훔쳐보며
해낙낙하니 웃었다

― 『해낙낙, 시인의일요일, 2023.

 

 

 

스무고개

 

조성국

 

가까이 갔다 싶으면 달음박질치고,

멀리서 뒤돌아보면

그냥 잡힐 것같이 다가오고, 가만 놔두면 금방 좀 슬고,

시척지근해져, 내다버릴 수밖에 없는,

간혹 헛물만 켜져

조석으로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 차리는,

두드리면 두드린 대로 강해지고,

촘촘하게 깎으면

깎인 대로 빛나고, 쪼면 쫄수록 엄정하고,

닦으면 닦은 대로

광채 발하는,

머리칼 잔뜩 세고, 뼛속에 바람 드는 나이에야 어렴풋이 짐작되다가,

언젠가 아픈 내 몸이 어쩌다 안 아픈 한순간,

딴 세상이 보이던, 그런

그런 날, 흐리마리하게나마 보이다가, 이내 긴가민가한 물음이

생기고, 또 생기는, 그저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 무릎을 딱! 치며 아하, 하고 그랬다가

또다시 모르겠는,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투성이의, 이건 도대체 뭘까, 묻기에,

엉겁결 대답해 버린,

그것이 정답인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으나,

지랄같이 이런 걸 이어받고, 또 이어 주는지, 인생이,

가물가물해지며, 참 아득해지는

​― 『해낙낙, 시인의일요일, 2023.

 

 

 

 

조성국

 

수수깡으로 외를 엮고

그 위에 볏짚 섞은 황토 발라 벽을 친 초가에서

귀가 빠지고 자랐다 검정 고무신만큼이나

발등 새까맣던

외딴 읍내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가서

대나무로 외를 얽고 회칠한 일본인 관사에서 곁방을 살았고

청년 시절에는 시멘트 불록 쌓고

양회 칠한 개량 주택에서 하숙 자취하며 살았다,

카키색 복장 차려입고 내무반 침상에 줄지어 잠도 들었었고

이적단체 고무하고 찬양하다,

얼마간 한속 추위가 이는 흰벽 하얀 방에 갇혀 살던

이력이 붙었으나

장가들어 솔가해선 붉은 벽돌의 이층 단독주택, 빛 보증서 말아먹고

유산 받듯 철근에다 콘크리트 입힌 고층 골조아파트에

스위치 하나 눌러

방 덥히고 물과 불과 바람을 끌어올려

여태껏 깃들어 살며

야들야들하리만치 길들어진 내가

점점 견고한 곳으로 옮겨 사는 꼴이었으나 내가 생각하기로는

당성냥 긋듯 군불 때며

옹색하게 삼대의 열두 식구와 함께 지긋지긋 지내며

고봉은 아니어도 그들먹한 사기그릇의 밥을 든든하니 먹었어도

금방 재가 꺼지는 단칸방 윗목

대나무 발로 엮은 고구마 뒤주와 푸른 누룩이 피는

나어린 집이 가장 슬거웠다

― 『해낙낙, 시인의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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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국 시집 『해낙낙』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 미디어 시in

김휼 기자 조성국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해낙낙』이 (시인의일요일, 2023.) 출간됐다. 조선대학교 재학 당시 학내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실형까지 살았던 시인은 1990년 수배 당시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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