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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숙 시인의 첫 시집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8. 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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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울림으로 승화시킨 견딤의 시학

 

 

 

하린 기자

 

 

2016열린시학신인작품상을 통해 등단 후, 2020매일신문시니어문학상을 수상한 이태숙 시인이 첫 시집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시인동네, 2023)를 발간했다. 늦깎이 시인의 첫 시집이지만 그녀의 시에는 정서적 지점이 융숭 깊게 자리하고 있었고, 완성도가 높아 미학적 아우라가 분명했다.

 

첫 시집에서 드러난 코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울음이고 또 하나는 울림이다. 울음은 사랑을 잃은 슬픔과 그로 인한 상실을 견디면서 재생과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화자의 젖은 음성이었고, 울림은 잃은 것들이 가득한세계에서, “내게 없는 것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세계”(시인의 말)에서 묵묵히 진정성과 미학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데서 다가온 감동의 숨결이었다.

 

이태숙 시인은 일찍이 2021년 열린시학상을 수상한 작품 생각 카페에서 노인의 심리를 단순화시키지 않고 다층적 시선으로 섬세하게읽어내어, 노인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과 입장을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준 적이 있다. “전지적 입장에 노인은 이럴 거야라는 단순한 범주를 만들어 더 이상 노인의 세계를 사유하려고 하지 않는사람들과는 다르게, 노인의 세계를 밀도 있게 관찰하고 사유하여 노인이 가진 심리적 문양을 미학적으로 풀어냈다.

 

그러한 태도로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에서 이태숙 시인은 울음(슬픔) 모티브를 단순화시키지 않고 면밀하게 사유하고 확장 시키려는 면모를 보여준다. 울림이 미학적으로 승화될 때까지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오랫동안 견딤의 시학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슬픔으로 인해 지금-여기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울음을 울림으로 승화시킨 이 시집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가 큰 위로로 다가올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이태숙

 

반은 아름답고

반은 쓸쓸해서

 

내가 사랑을 하면 저럴까 생각했다

 

그림자는 자꾸만 길어지고

방울 소리는 홀로 산 아래로 내려간다

 

입이 있으나 말할 수 없고

내 눈 속에 있지만 내게 없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슬픔처럼

그리운 것들은 다 너머에만 있다

 

눈부시게 잘 있을 것이다

 

반은 쓸쓸했으니까

그 반으로 잘 살아갈 것이다

 

―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 시인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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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의 세계

 

이태숙

 

계란을 쥐어 본다

온도가 없는 세계

온기를 내어줄 세계는 떠난 지 오래

 

불임인 내가 가만히 응시한다

내게 있으나 내 것이 아닌 세계

이리저리 굴려보아도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아직 표정이 되지 못한 세계

힘껏 쥐지도 못하는 세계

 

낮은 높이에서 떨어져도 깨지고 마는

그런 세계의 약속

 

누가 나를 들어 가만히 떨어트린다

오래

떨어진다

 

감자탕집 좁은 골목에 앉아 깊고 길게 담배를 피운 적 있다

골목에는 언제나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들과 나는 어떤 약속도 없다

내가 낯설어질 때마다 겨우 울었던가

끈적한 점액질이 발바닥 밑으로 흘러들었다

 

너무 쉽게 깨진다는 생각

마치 깨어질 것을 예상했다는 듯

금이 간 모든 것들은 이미 후회로 가득했다

 

깨진 후에야 깨닫게 되는 생

비린내가 진동한다

 

거세된 모습은 서로 물끄러미 말이 없다

 

―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 시인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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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울음

 

이태숙

 

어떤 울음은 속이 비어 있다

 

먹구름 속에서

끝내 떨어지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빗방울처럼

 

내 안에 그런 울음이 있다고

이미 오래되었다고

마음속엔 울지 못하는 먹구름만 부풀어가고

속없는 울음만 둥글게 뭉쳐지고 있다

 

빈 것은 빈 것인 채로

그것이 울음일지라도

나의 마음속 우물에 닿는 일일 테니

조금 울어도 괜찮다

 

아직 내가 가야 할 내일이 있고

아직도 알 수 없는 바람의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야 할 오늘이 있다

 

―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 시인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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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숙 시인의 첫 시집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발간 - 미

신간 소식 하종기 기자 2016년 《열린시학》 신인작품상을 통해 등단 후, 2020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을 수상한 이태숙 시인이 첫 시집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시인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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