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김제욱
그날부터 빗금으로 서 있는 사람이다. 외침이다. 지나치는 사람이다. 둘레를 배회하는 사람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내미는 얼굴이다.
스스로 경계에 갇힌 놀라움으로 벽이 숨통을 죄어오는 공간에 산다. 이곳도 아닌 저곳도 아닌, 어둡고 습습한 시야의 틈에 걸어 들어간다.
찬 공기가 살 에이듯 감은 눈으로 겨울이 오는 소리를 듣는 사람.
바람을 넘어서며 벽에 부딪치는 투명한 겨울 사람.
뜬 눈으로도 들을 수 없는 이름.
떠돌다 죽어버린 바람결 곁에서 결빙된 언어를 녹이는 사람.
그대가 스쳐 간 투명한 자리를 맴돈다.
찬 불빛의 고요함은 너무 아름다워. 나지막이 나에게만 들리는
따스한 온기의 목소리.
폐부 깊숙이 스미는 사이렌의 노래.
그때의 감정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이 아니냐고
텅 비어있는 말라버린 눈물의 흔적 같은
언 손을 내밀어 본다.
벽의 어둠이 드러날 때까지 외친다. 듣는다.
그날의 눈알을 빼서 창밖에 걸어놓았다. 집 근처 서성이는 겨울의 그림자가 있다. 산화하는 노을빛으로 잠긴 다리. 휘발하는 글자 사이 빈 곁으로 경계인이 걸어간다.
― ≪시향≫ 2020년 봄호
김제욱 시인 _ 경계인 < 포토포엠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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