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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을 통해 데뷔한 백연숙 시인이 첫 시집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파란시선으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4. 1. 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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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려는 시가 건넨 따뜻한 풍경

 

 

하린 기자

 

1996문학사상을 통해 데뷔한 백연숙 시인이 첫 시집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를 파란시선으로 발간했다. 그의 시집 안에는 대상과 세계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마음들로 가득 차 있다. 비가 내려 무너진 집을 복구하려는 개미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음악이 만들어지는 장면으로 바꾸어 적거나(클라리넷) 할머니의 병 때문에 한 집에 옹기종기 모이게 된 모녀 삼대를 우리는 한때 소녀였다”(소녀시대)라는 문장으로 치환해 문장 안에 연민이나 애틋한 마음의 결을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시 속의 이들이 처한 안타까운 사정을 잠시나마 잊은 채 그 따듯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게 된다. 세상에는 빈속을 든든히 채워 몸을 회복하기 위해 찾는 죽집도 있지만 어떤 허한 이들의 경우, 다른 이유로 방문하는 죽집도 있다. 이를테면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보러가려는 손님들이 있는 묵음(黙音)의 가게와 같은 곳. 그런 곳이 있기에 삶의 숨통은 트이고 따뜻함은 배가 된다.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아까시나무를 찾는지는 추정만이 가능하지만 어떤 흥미 본위의 시간이 지나간 후에도 그곳에 손님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그들이 좋아하는 나무를 잘 길러 보기 위해 휴일에도 물을 주러 나가는 주인의 따듯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백연숙의 시집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를 찾아 읽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발길이 자주 그곳으로 향하게 되는 것은 그의 시가 새롭거나 화려한 수사들로 써졌기 때문이 아니라 저 다정한 주인처럼 우리의 텅 빈 곳을 채워 주려는 그의 마음 때문이다. 우리가 곧 다시 허기질 것을 알고 어떻게든 우리의 빈 곳을 어루만져 이를 다른 것으로 채워 주려는 필사적인 다정함.

 

이것이 백연숙 시의 특별함이 아닐까. 그의 시를 읽게 되면 다급한 허기를 채운 후에야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었다는(모과가 한창) 말이 갖는 삶의 여백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시집 속의 시 맛보기>

 

평촌

 

백연숙

 

거미줄에 걸려 말라붙은 나비를 본다

 

바람 불 때마다 파닥거리는 나비

멀리 쌍둥이 빌딩이 보인다

 

벌레 먹은 산딸나무 잎사귀

거미줄 위에 매달린 채 흔들린다

 

줄을 쳐 놓고 대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지만

육천 원짜리 백반을 먹기 위해

식판을 들고 길게 줄이 섰다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무거워지는 허기,

 

요란하게 지나가던 배달 오토바이 경적 소리도

거미줄에 걸려 있는 가을장마 끝이었다

―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 파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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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

 

백연숙

 

돌이 울어요

비가 오면 떠내려갈까 봐

맨 밑에 깔린 채

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단말마의 비명을 위해

돌들이 개구리처럼 떼거리로 울어요

 

여덟 명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이 없다는 걸 감추기 위해

케냐 엄마는 냄비에 돌을 넣고 끓였지요

휘휘 저으며 맛도 봤을 거예요

쌀이나 금이 되느라 돌들은 잠 못 이루고

냄비가 끓는 동안 아이들은 헛배가 불렀을 거라고

 

돌들은 잠시 울음을 그쳐요

눈이 오면 강아지 꼬리가 생기고

차곡차곡 쌓인 비명들 입냄새처럼 빠져나와

아아 입을 벌려 눈을 받아먹으며

오오, 배부르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으지요

 

울음을 그친 돌들은

반달눈을 하고 깊은 잠이 들어요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들

모래알처럼 밤새 반짝이지요

―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 파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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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

 

백연숙

 

물들까 봐 근처도 가지 않았다며

쥐똥나무 창공이라며 친구라며

졸지도 않았다며

꽃은 피었지만 나비는 날지 않았다며

사각지대는 아니었다며

새가 노래로 울었다며

58년 개띠 열댓 살짜리 아이가 있었다며

게이는 아니지만 스타킹이 나왔다며

뒤로 갈 수도 없었다며 대포통장이었다며

아이와 노모가 타고 있었다며

하필이면 블랙박스가 꺼져 있었다며

애인이라며

월요일은 일산 수요일은 목동

토요일은 우리 동네 약수터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자

운 좋게 발을 뺐다며 물까지 타진 않았다며

고향 가는 길이었다며

―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 파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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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을 통해 데뷔한 백연숙 시인이 첫 시집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파란시

하종기 기자 1996년《문학사상》을 통해 데뷔한 백연숙 시인이 첫 시집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를 파란시선으로 발간했다. 그의 시집 안에는 대상과 세계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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