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전영관 시인의 산문집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 삼인출판사에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4. 2. 10. 10:30

본문

감수성 풍부한 정서와 따뜻한 시선이 이끄는 살아 있는 문장들

 

 

 

하린 기자

 

2011작가세계신인상으로 데뷔한 후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 『미소에서 꽃까지, 슬픔도 태도가 된다와 산문집 슬퍼할 권리, 좋은 말, 이별과 이별하기등을 발간한 전영관 시인이 네 번째 산문집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삼인출판사, 2024.)을 독자 앞에 선보였다.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은 산책자로서 시인이 지나온 장소와 그 장소에 스민 사람들, 그 장소가 떠올린 먼 순간들을 담은, 전영관 시인 만의 시선이 담긴 에세이다. 우리는 굳건하게 믿어온 가치관과 기준이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마음의 여유로부터 멀어져 자기착취까지 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은 사랑 말고 또 어떤 것을 발명해내야 살아갈 수 있는지를 시인은 묻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혼자서 혹은 가까운 이들과 함께한 시간과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색의 문장들을 통해 쉼표 같은 여백을 제안한다.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1부 책상의 역사’, ‘2부 다정과 소란’, ‘3부 안부, 호기심’, ‘4부 그 시집으로 나뉜 77편의 짧은 산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 글과 함께 동행한다. 동행은 시인의 감수성 풍부한 정서를 동반하면서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역할을 한다.

 

1부에선 시인의 경험 맥락이 바탕이 되어 회고를 중심으로 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내용이 나오고, 이어 2부에선 시 강의 듣던 사람들과의 이야기, 가족들과의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3부는 안부호기심의 차이, ‘기억추억의 차이, ‘불안두려움의 차이, ‘집착미련의 차이를 포함하여 일상에서 유사한 용도로 쓰이는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시인의 눈으로 풀어냄으로써 갈피를 잡기 쉽지 않은 현대인의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 4부는 나희덕, 최문자 등 열아홉 시인의 최근 시집을 소개하는 리뷰들로 구성돼 시집을 고르고 읽어가는 탁월한 길을 펼쳐 보여준다.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은 고통을 다룰 수 있어야 시를 쓴다는 전영관 시인의 말을 스스로 실천한 산문집이다. 현재의 이야기든 과거 어느 시점의 이야기든,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든 한 단어에 관한 이야기든 한 권의 책에 관한 이야기든,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존재라는 그의 시구에 공감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맞게 될 또 다른 시간과 장소들을 기다리게 한다.

 

 

<책 속 구절 맛보기>

 

산책로에 매화가 있는데 그 아래에 서면 향기에 적셔지는 것만 같았기에 향기는 날아가는 게 아니라 쏟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는 3층에 산다. 창밖 매화 향기가 내게로 솟아오르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라도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어림도 없는 망상이지만 천사로 채용된다면 행인들의 슬프고 다정함이 다 보이는 3층에 근무하고 싶다. 슬픈 사람 없도록 하겠다는 게 아니라 다독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소망을 세우고 싶다(15~16)

 

-------------

 

우리 식구를 길거리에 주저앉게 한 사람이 찾아온 적 있었다. 그해 열다섯에 세상의 참혹을 다 겪었다. 아버지 동업자인 그이의 죄책감인지 후회인지 지금도 모른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았다가 밥 먹고 가하시고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국졸 학력의 아버지는 성인 현자도 아니고 당신의 무력감을 절감한 것도 아닐 테다. 나이 들어서는 그이가 운명의 상징이었다고 생각했다. 운명이 찾아온다면 밥이나 사주련다. 그 밥은 상가의 육개장쯤이나 되겠지.(26)

 

----------------

 

안정제 먹고 자니까 기절한 셈이지만 언제 또 쓰러질지 몰라 겁난다는 아내는 수면제조차 거부하고 뜬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많다. 안쓰럽고 무참해서 의존성 없는 수면유도제라도 먹으라고 몇 번이나 권했지만 그럴 수는 없단다. 둘 다 약기운에 정신 놓고 자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깨울 거냐고 맥 놓는다. 눈물 많은 구급대를 자처하겠다는 심사다. 신은 자신을 흉내 내는 것 같아서 지극히 선량한 사람은 싫어할 거라고 히죽거렸다. 그러니 당신은 영영 불러주지 않는다고 웃어주었다.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라서 뇌경색에도 살아남았다고 으쓱거렸다.(28)

 

---------------

 

노모에게 어떻게든 더 보여드리려는 딸의 뒷모습이 애잔했다. 일방통행으로만 갈 수 있을 정도로 좁고 혼잡한 길을 찰싹 붙어 나란히 가는 청춘들이 부러웠다. 질서보다 사랑이 우선한다는 그런 치기가 또 부러웠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 절반을 감추고 하나같은 포즈로 손가락하트를 날리는 중년 여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야단이다. 멍때리기가 특기여서 비켜달라는 소릴 못 들어서 몇 번이나 눈총받았다. 손가락하트, 브이 같은 저런 상투적인 손짓들이 추억을 깊이 새겨주는 연장 아닐까 생각했다. 대략 7,000명이 오글거리는 잔도에 상투와 지극함과 깔깔거림이 물소리와 뒤섞이고 있었다.(75~76)

 

 

전영관 시인의 산문집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 삼인출판사에서 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전영관 시인의 산문집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 삼인출판사에서 발간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데뷔한 후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 『미소에서 꽃까지』, 『슬픔도 태도가 된다』와 산문집 『슬퍼할 권리』, 『좋은 말』, 『이별과 이별하기』

www.msiin.co.kr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