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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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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2. 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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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자국을 가만히 쓸어보고 기억하고 되짚어보려는 시편들

 

 

하린 기자

 

특유의 예민함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시대의 풍경을 그려내는 시인 곽효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4부로 나뉘어 총 68편의 시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전작 너는이후 5년 만에 펴내는 것으로, 시련과 상처를 견디며 눈물짓는 이들을 너른 품으로 끌어안아 보듬는다.

 

시대의 곡절과 흐름을 이야기할 때 흔히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주로 나열하곤 하지만, 사실 우리의 터전을 이루어온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어진 삶과 사랑하는 타인을 지키기 위해 고통의 순간순간을 소리 없는 눈물로 버텨낸다. 이때 소리 내지 않음은 자칫 힘없고 유약한 수용처럼 보이지만, 역경의 무게와 어둠을 기꺼이 감내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단단하고 뜨겁다. 이 무명의 눈물들이야말로 진정 우리 사회를 추동해온 동력이며,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은 근현대사의 뒤꼍에 남아 있는 눈물 자국을 가만히 쓸어보고 기억하고 되짚어보려는 문학적 시도다.

 

소리 없이 울다 간존재들을 조명하는 시인에게 차단된 삶의 여로이고, 단절된 역사의 현장이며, 잊혀가는 오래된 정감의 고향이자, 채울 수 없는 결핍과 그리움의 진원지”(슬픔의 뼈대해설)는 북방이다. 북방은 곽효환에게 유의미한 공간이다. 지도에 없는 집(2010)에서부터 꾸준하게 이어져온, 시원과 궁극을 찾으려는 그의 북방 여정은 이번 시집에서도 계속된다. 연해주, 북만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곽효환의 시편들은 거대한 북방의 원형을 차근히 완성해나간다. 그동안 시인이 계획하고 꾸려온 고되고 길었던 여정이지만 사람과 사랑이 몸을 기댈 수 있는 깊이와 따뜻함이 배여 있어서 묵묵한 울음과 식지 않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시의 언어로 북녘을 횡단하는 곽효환에게 북방의 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꼬리를 물고 있”(시베리아 횡단열차 4)는 열차에 올라 북방의 산과 들과 강에 깃든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백석, 윤동주, 이용악 등 북방 지역에 고향을 둔 시인들, 연해주 포시예트 구역에 지신허 마을을 개척한 최운보(지신허地新墟 마을에서 최운보崔運寶를 만나다), 1910년대 원동 시베리아에서 활동했던 여성 혁명가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김알렉산드라 소전小傳), 19세기 말 한국과 중국을 여행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장강에서 버드 비숍을 만나다) 등을 비롯한 여러 인물을 시 속에 불러낸다. 나아가 시인은 북방의 시공간을 채우고 있는 그리운 무명의 사람들”(만선열차)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한다. 이주를 강요당해 라즈돌노예역에서 열차를 타야 했던 고려인들, 강 위에서 평생을 꾸렸던 뱃사람들, 땅을 일구고 다리를 지으며 성실하게 일했던 필부필부……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북방의 과거는 어느새 생동하는 현실로, 어른어른하게만 나타나던 인상들은 또렷하고 구체적인 얼굴들로 다가온다.

 

북방이라는 코트와 눈물이라는 코드가 어우러져 아롱진 자국을 어루만지고 있는 언어의 손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곽효환 시인.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은 시의 영토가 넓은 곽효환의 시 세계를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는

제 몸의 가지가 어디로 뻗을지 알지 못한다

수천 년을 흐르는 강 또한

물길이 어디로 나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가지가 어디로 뻗든

물길이 어디로 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지마다 초록이 오르고 꽃이 만개하고

물길 닿는 곳마다 생명이 움트는

나무와 강이 품고 빚어내는

먼 풍경이 아름다운 것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뻗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

하여 그것들이 빚어낼 훗날의 풍경 또한

서둘러 예단하지 않으련다

―「먼 풍경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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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흐르는 슬픔, 나는 그 깊이와 끝을 가늠할 수 없다 다가가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냥 곁에 앉아 그와 함께 울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끝없이 흐르는 혹은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의 등을 쓸어주며 작은 온기를 흘려보내고 두 팔을 벌려 너덜너덜해졌을 그의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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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가족을 위해 더러는

독립과 민족과 자유를 위해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다시 더 멀고 더 깊은 대륙 저편으로

갔다가 돌아온 혹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그을린 붉은 얼굴들

나는 저 너머의 시간을 건너

오늘밤 섬섬히 빛나고 또 스러지는

몇천, 몇만 혹은 몇십만 년 전 떠났을

별들을 헤아린다 그리고

모든 것을 꽁꽁 얼려놓는 혹한과

질척질척한 혹서만이 한 몸처럼 존재하는

이 드넓은 붉은 벌판을

천형처럼 건너갔던 검은 그림자들이

어느 먼 시간을 건너

하나둘 별이 되어 돌아오는 검붉은 파노라마를 본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나도 그들도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먹먹한 슬픔과 울음으로 삼키는 잠들지 못하는 밤

열차는 먼 곳으로 끝없이 흘러가고

광막한 시베리아 벌판에 붉은빛이 든다

긴긴밤을 지나

멀리서부터 아침이 온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3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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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면 함박눈 펑펑 쏟아져 쌓이고

혹한의 밤 깊으면

번뜩이는 이쪽과 저쪽 총구 아래

또렷이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폭탄을 품은 젊은 사상이 유령처럼 나타날 것 같은

국경의 강안에서 나는

차마 눈감지 못하는 사내를 본다

목숨을 건 삶들이 건너가고 건너왔을

지금도 계속되는 시름 많은 시대의 강가에서

터지는 울음을 애써 삼키는 북관의 사내를 보며

나도 운다

―「국경에서 용악을 만나다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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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 미디어

하린 기자 특유의 예민함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시대의 풍경을 그려내는 시인 곽효환의 다섯 번째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4부로 나뉘어 총 68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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