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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타이피스트에서 새롭게 선보인 〈타이피스트시인선〉 시단에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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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2. 2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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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집 세계문학전집과 박은정 시집 아사코의 거짓말동시에 발간

 

하린 기자

 

출판사 타이피스트에서 새롭게 선보인 <타이피스트 시인선>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인선 1, 2번으로 권혁웅 시집 세계문학전집과 박은정 시집 아사코의 거짓말동시에 발간했는데, 1인 출판사의 기획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시리즈의 첫 권으로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평론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권혁웅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세계문학전집이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삶의 세목을 짚어 내는 시편들로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2013, 창비) 이후 만 10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권혁웅은 철학과 역사를 기반으로 일상의 숨겨진 사유를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와 인간에 대한 시인만의 독특한 관점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능청스러운 해학과 날카로운 인식은 권혁웅 시인의 전매특허이다. 그 전매특허가 이번 시집에서도 배면에 깔려있다. 시를 읽고 나면 웃고 있지만 가슴 한쪽이 쓸쓸해지는 연민을 만나게 된다. 시인의 따뜻한 염려와 사랑이 담긴 시들을 읽은 독자들은 시인이 창출한 또 다른 세계 속에서 문득 우리다운 우리를 발견하고 보듬게 된다.

 

거기에 더해 이전 시집에서 보여 줬던 삶의 현장을 조망하는 시선을 더욱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시집의 제목처럼 모든 이야기 속 3인칭들이 권혁웅의 문장을 통과하면 시가 되고 현실의 삶이 된 후 시대를 뛰어넘는 세계문학전집을 구성한다. “상상의 박물지에서 꺼내 놓은 듯한 온갖 사물과 사실이, 천변만화하는 풍경이”(이영광, 추천사) ‘권혁웅표극장에서 생생하게 상연되고 있는 것이다.

 

 

시리즈 두 번째는 박은정 시집 아사코의 거짓말이다. 박은정 시인은 2011시인세계신인상으로 데뷔한 후 시집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문학동네, 2015) 밤과 꿈의 뉘앙스(민음사, 2020)를 출간하며 자신만의 목소리와 리듬으로 시적 세계를 구축해 온, 개성과 감각을 두루 갖춘 시인이다.

 

그동안 사랑과 죽음을 함께 쥐는 강한 악력과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문장으로 시단에 주목받았던 시인은 이번 시집 아사코의 거짓말에서 일상을 파고드는 낯선 감각과 예리한 시선으로 사랑과 세계의 비루함에 대해 주저함 없이 이야기한다. 부서지고 망쳐진 세계 속에서도 상처투성이의 빛을 갈망하고 야만적인 사랑 앞에서도 정면을 직시한다. ‘작고 연약한 것들의 마음을 솔직 담백하게 끌어안은 채 주저하고 의심하더라도 모든 가능성을 믿는 마음으로, “무너지기 위해 치솟는자신만의 지금-여기를 형상화시킨다.

 

불완전한 운명 안에서도 화자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그 안에서 목숨을 걸고 달아나는 존재의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만년설이 쌓인 미래같은 기적을 통찰하기도 한다.

 

사랑으로부터, 스러져 가는 세계로부터 달아나려 할수록 우리는 결국 제자리를 돌며 자신의 고독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들이므로, 시인은 그 상처들을 공유하고 받아들이며 온갖 어지러운 풍경들 사이에서 떨고 있는 우리들을 불러”(김연덕, 추천사) 세워 매력적인 노래를 들려준다. “넘어지고 쫓겨나면서도 뒤를 돌아보는 다정함으로 빛을 말하고, 상처 입은 온몸으로 신이 버린 작은 경이를 끝나지 않을 음악처럼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타이피스트 출판사는 앞으로 김이듬 시집, 양안다 시집, 김다연 시집, 이기리 시집, 이현호 시집, 조성래 시집, 황성희 시집 등을 발간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름만 들어도 기대가 큰 시인들이 참여한다. <타이피스트 시인선>이 시문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예감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동물의 왕국

동물계 소파과 의자속 남자 사람

 

권혁웅

 

소가 트림의 왕이자 이산화탄소 발생기라면

이 동물은 방귀의 왕이자 암모니아 발생기입니다

넓은 거실에 서식하면서 소파로 위장하고 있죠

중추신경은 리모컨을 거쳐 TV에 가늘게 이어져 있습니다

배꼽에 땅콩을 모아 두고 하나씩 까먹는 습성이 있는데

이렇게 위장하고 있다가 늦은 밤이 되면

진짜 먹잇감을 찾아 나섭니다

치맥이라고, 조류의 일종입니다

이 동물의 눈은 카멜레온처럼 서로 다른 곳을 볼 수 있죠

지금 프로야구와 프리미어리그를 번갈아 보며

유생 때 활발했던 손동작, 발동작을 회상하는 중입니다

본래 네발 동물이었으나 지금은 퇴화했거든요

이 때문에 새끼를 돌보는 건 흔히 어미의 몫이죠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큰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급격한 호르몬 변화 때문인데요

이를 월급이라고 합니다

이 동물은 성체가 되자마자 수컷끼리 모여서 각축을 벌이는데

이런 집단이 군대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거기를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거기서 축구 한 얘기는 자꾸 떠벌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여자가 어딜 감히, 이런 소리도 어쩌다 내지만

대개는 빠지고 없는 털을 곤두세우는 것과 비슷한

과시행동입니다 실은 그래서

남은 솜털마저 마저 뽑혔습니다만

가끔 퇴화한 앞발을 들어 사타구니를 긁거나

화장실 변기 주변에 오줌을 묻혀 영역을 표시합니다

아 방금 까무룩 눈이 감기기 시작했군요

짧은 주기의 동면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곧 변태를 한 후에 먹이를 구하러 나서야 하거든요

저 증세를 월요병이라고 합니다

잠시만 더 그 잠을 지켜보기로 하지요

권혁웅, 세계문학전집, 타이피스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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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동물사전 1

치맥

 

권혁웅

 

치맥(雉麥)은 날지 못하는 새의 일종이다 털을 죄다 뽑은 닭을 닮았지만 머리가 없다 머리 나쁜 이를 일러 계두(鷄頭)’라 하는데 실은 치맥을 이르는 말이다 머리는 두었다 뭐하냐?’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다 염지(鹽池)와 기름 바다를 오가는 철새여서 염분과 지방 함량이 높다 서왕모가 다스리던 시절에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크게 굶주렸으나 소는 트랙터요 돼지는 먹보요 개는 친구라, 어느 하나 먹을 게 없어 천지가 울음으로 가득하였다 서왕모가 곤륜(崑崙)에 올라 멀리 서역을 보니 켄터키 너른 들에 메추라기 떼가 가득한지라, 큰바람을 몰아와 방방곡곡에 풀었더니 알고 보니 치맥이었다……고 전한다 민간에서는 얼굴이 붉고 손을 떨며 헛배가 부르고 건망(健忘)이 있는 이들에게 치맥을 잘게 토막 낸 다음 마늘과 계피와 보리를 섞은 물에 데쳐서 먹인다 이 처방과 함께 반반무마니, 반반무마니……주문을 외우면 증상이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한다 몸이 붓고 아랫배가 처지는 이들에게는 가슴살만을 발라내어 양상추와 먹이고 열사병에 걸린 이들에게는 인삼과 대추, 황기와 엄나무를 찹쌀에 개어 치맥 삶은 물과 함께 먹인다 최근에는 명퇴(名退)란 병에 들어 평균수명이 확 줄어든 이들이 너도나도 치맥으로 난전을 벌여 나라의 큰 근심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하여 사전의 들머리에 이를 놓아 표석을 삼으니 위정자들은 경계할지어다

 

권혁웅, 세계문학전집, 타이피스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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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경이

 

박은정

 

너와 내가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빼고는 다 알았다

내가 훔친 운동화를

네가 신고 다닌다는 소문

 

훔친 운동화는 모르는 길도

처음 보는 가게도 거침없이 돌아다닌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골목에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더위에 숨을 헐떡이는 개

시소 위에 놓인 돌멩이 하나

가끔은 모든 것이 전람회에 걸린 그림 같다

지루한 자신을 훔쳐 갈 도둑을 기다리듯

 

태풍의 전야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은 많아진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점성과 농도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

세계에 가닿을 손끝을 예감했던 것처럼

 

손목과 발목이 서로 엉킨 채로

두려움이, 또 두려움 없는 마음이* 동시에

서로를 한 몸처럼 먹고 마시며

 

어떤 사랑은 사랑이 되기 위해

서로를 죽이기도 하니까

 

빗줄기가 들이치기 전에

창문을 닫고 가만히 누워 봐

떠오르는 것들을 계속해서 그려 봐

 

따듯한 두 뺨

물집 잡힌 뒤꿈치

겨드랑이 아래 돋아나는 통증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목숨만 같아

 

가로수들이 휘청이고

사람들의 우산이 뒤집어진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창틀에 고이고

매미의 침묵이 시작되었다

 

투명하게 창문을 관통하는 울음

이것은 우리만 아는 울음이었다

섣불리 훔친 불행이었다

 

너의 운동화는 새것처럼 하얗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꿈꾸듯

우리는 그것을 구겨 신고

버스를 타고 서쪽 끝으로 떠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선한 눈을 하고

서로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신이 가지고 놀다 버린

작은 경이를 훔친다

 

* 커트 보니것의 5도살장에서 인용.

박은정, 아사코의 거짓말, 타이피스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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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의 거짓말

 

박은정

 

아사코의 애인은 따듯한 손과 긴 속눈썹을 가졌다. 아사코는 그가 잠들 때마다 조심스레 그의 속눈썹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손끝에서 떨리는 속눈썹의 나약함을 동경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애인은 수시로 선잠에 들곤 하는데, 그의 입에서 희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분 좋은 꿈을 꾸나 보다. 아사코는 그 꿈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자신을 지운 의식 속에서 그렁그렁한 물기가 거울처럼 그를 비추인다. 그는 지금 파리의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다. 죽도록 미운 이에게 권총을 겨누며 뇌세포와 기분에 따른 상관관계를 떠올릴 수도 있다. 아사코는 자신의 창의적인 거짓말을 좋아한다. 거짓말의 타당성에 대해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누구나 들으면 설득될 수밖에 없는 뾰족한 입술로. 며칠 뒤에는 벼랑 위 식물원에 도착한다. 아사코는 이름 모를 가득한 꽃들이 꼭 자신의 거짓말처럼 아름답다 생각한다. 꽃들은 나약하고 중세의 끔찍한 고문 기계처럼 아찔하다. 애인이 좋아하는 천변은 멀리 있다. 소리는 부유하는 기억 속에서만 들린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이나 미운 이의 옷자락을 뚫고 가는 파열음 같은 것들을 아사코는 편집한다. 빛을 배반하는 그림자를 삽입하고 수치스러운 두개골의 장래를 지워 버린다. 기적이라는 건 만년설이 쌓인 미래 같은 것. 그 속에 맥락 없이 존재하는 벼랑은 신의 장난질이지. 무언가 빠르게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손끝에서 분명한 통증이 인다. 애인은 갈증이 나는지 침 마른 소리로 중얼거린다. 그 소리는 허공을 지우는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이 멀어진다. 이제 아사코는 물 잔을 건네며 말한다. 일어나. 반세기가 지났어. 애인의 따듯한 손이 아사코의 손을 잡는다. 생물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빛이 커튼 위를 넘실거린다. 잔상이 할퀴고 남긴 숨소리들. 창틀 위 선인장에는 몇 년이 지나도록 꽃이 피지 않는다. 조금 전 애인의 숨소리는 이제 애인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머나먼 오늘의 일처럼. 아사코의 투명한 거짓말처럼.

박은정, 아사코의 거짓말, 타이피스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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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타이피스트에서 새롭게 선보인 〈타이피스트 시인선〉 시단에서 주목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출판사 타이피스트에서 새롭게 선보인 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인선 1, 2번으로 권혁웅 시집 『세계문학전집』과 박은정 시집 『아사코의 거짓말』 동시에 발간했는데, 1인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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