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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설 시인의 첫 시집 『어쿠스틱 기타』시인광장시인선으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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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2. 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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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서정의 사려니숲으로 안내하는 아름다운 시편들

 

 

 

하린 기자

 

2017시와경계신인상으로 데뷔한 후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문설 시인이 첫 시집 어쿠스틱 기타를 시인광장시인선으로 발간했다.

 

문설 시인의 시는 흡입력이 좋다. 읽으면 읽을수록 실감과 공감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일상을 갈아엎어 심은 구근 같은 시들이 친근감 있게 말을 걸어온다. 문설 시인의 시 세계엔 잃어버린 서정의 세상을 복원하려는 힘이 내재 되어 있다. 그 힘은 생의 순간순간에 우리가 놓쳐버린 이미지를 핀셋으로 집어 올려주는 역할을 해서 메시지를 강화한다.

 

시의 질감을 높이듯 섬세함이 시의 품격을 높인다. 첫 시집이지만 첫 시집 같은 느낌이 안 드는 것은 그가 꾸준히 섬세함에 정진해 왔기 때문이리라. 미적 파장 안에 자리 잡은 화자의 촘촘한 마음을 조곤조곤 시로 노래하는 태도를 내내 보여준다.

 

그러한 특징들로 인해어쿠스틱 기타는 자연스럽게 잘 읽히지만, 시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점층적으로 높이는 마력, 매력을 품는다. 독자들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문장의 질감과 더불어 단단한 메시지가 씨줄과 날줄로 잘 직조된 시를 만나게 된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으나 섬세함이 하나의 조직이 되어 강한 시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 문설 시인이 처음 만든 시의 극장 어쿠스틱 기타안에서 그녀가 펼치는 아름다운 시의 향연을 맛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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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물의 고백

 

문설

 

 

 

장미 향기가 나면 괜찮을까

분명 호불호가 있을 거야 똥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고

믿음과 의심 사이, 아무도 모르지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나는

 

어느 수면을 파닥거리다 여기 숨죽여 침묵하고 있나

 

말미잘과 흰동가리가 파놓은 터널을 통과한 기억 눅눅한데

 

누군가의 만남과 이별을 감지한 최초의 순간

 

머리를 감겨 주었을 때의 그 끈적한 촉감

 

흘러가는 방향을 생각하다 마주한 꽃잎들의 무덤

 

내가 절묘하게 떨어져 스미는 동안 눈빛은 투명에 가까워졌지

 

나무와 계곡의 산을 품은 바다의 성지(聖地)는 어디일까

 

출렁이는 나를 위해 불과 얼음의 존재를 묵인하며

 

언젠가는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북극의 빙하나

 

사막의 모래 폭풍을 따라 소금 눈송이를 따러 갈 것이다

 

억만년을 품은 협곡이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이유는

 

한 번만 태어나는 뱃속의 기억 때문이다 나는

 

항상 돌아와 다시 불의 암석 위를 걸을 것이다

― 『어쿠스틱 기타, 시인광장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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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문설

 

지는 꽃 옆을 왜 기웃거리는지

이제 막 싹 틔우는 씨앗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자작나무의 흰빛은 하늘에 닿는지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는지

바닷속 오랜 유물들이 숨을 쉬는지

해바라기가 가을에 고개 숙이는 이유를

가마 속 옹기가 잘 익고 있는지

종일 내리는 비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향나무를 꺾어 머리 위에서 태우는 유목민들의 기도를

얼지 않는 호수가 누군가의 마음을 비추는 이유를

붉은발슴새가 그 섬에 온기를 두고 온 까닭을

나를 빼닮은 계곡이 속살을 보여주는 이유를

뜨거운 입술에 스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건들건들 청보리밭을 흔드는

신을 섬기다 신의 성지가 되어버린 너는

얼마나 순결한지

― 『어쿠스틱 기타, 시인광장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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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의 불

 

문설

 

얼음에 입술 데인 적 있다

얼음에도 불이 숨어 있었다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불꽃은 북극에도 적도에도 있고

녹지 않는 사막에서 여우가 빙하를 주유한다

여우의 꼬리는 혀를 닮아

얼음의 둘레를 살살 더듬기도 하지만

얼음은 깨물어 먹는 동안의 즐거움

사각의 시원함 대신 사막의 서걱임을 동경한다

처음부터 즐거워지려는 속내는 아니었다

원시는 차갑고도 차가워 혀에서 뿔이 자란다

그것도 한때 불이었다 그 불에 데인 적 있다

모래 같은 믿음은 뒤통수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말은 말을 낳고 화인(火印)이 깊게 박힌다

폭염이 지상에 오래 머물고 있다

불을 다스리는 건 남겨진 자의 몫이다

사물은 같은 형태로 오래 지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깨물어 먹은 건 얼음이 아니라

불이었다 입 안 가득 얼음을 돌리며 간신히

숨을 참는다

― 『어쿠스틱 기타, 시인광장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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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설 시인의 첫 시집 『어쿠스틱 기타』시인광장시인선으로 발간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2017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데뷔한 후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문설 시인이 첫 시집 『어쿠스틱 기타』를 시인광장시인선으로 발간했다. 문설 시인의 시는 흡입력이 좋다. 읽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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