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박희정
너를 보지 않고 음성만 만져볼래
너를 맡지 않고 느낌만 들어볼래
에둘러 우리 시공간
돌돌 꿰어볼래
― 《나래시조》 202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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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롭 프라이의 순환적 상징의 몇 가지 주된 양상에 의하면 1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 밤, 물의 주기로 비· 샘· 강· 바다 & 눈, 인생은 청년· 장년· 노년· 죽음 같은 것들에 각각 대응된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장르 발생 이전의 이야기 문학적 요소로 나눠보면 봄은 희극적으로 움직이는 반면 가을은 비극적 움직임을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가을을 맞았을 때 죽음이라든가 쓸쓸함, 외로움, 보고픔, 기다림 등 비극적 감성을 자극하는 단어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는 것은 어쩌면 이런 비극적 요소가 계절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정서에 따라 가을에 대한 감성적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 소개하는 화자의 가을은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감각으로 계절을 바라보고 있다. 색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요소와 향기로 느낄 수 있는 후각적 요소가 가을의 지배적 감각이라면 이 시의 화자는 초장 ‘시각→청각→촉각’과 중장 ‘후각→촉각→청각’으로 이동하는 공감각의 활용을 통하여 보다 감각적으로 가을을 바라보고 있다.
대상(가을)을 눈으로 보지 않고 “음성만”(청각) “만져”(촉각) 보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대상을 냄새로 맡지 않고 “느낌만”(촉각)으로 “들어”(청각)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동시 감각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공감각은 어떤 감각에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켜 감각 간의 전이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 시는 이러한 특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
예부터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들은 감각의 통일에서 사물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고 여겨 감각을 혼합한 공감각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화자는 감각의 이동을 통해 “음성만” “느낌만” 보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에둘러’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결국 온몸으로 너(가을)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의지가 드러난 작품임을 알 수 있다.(표문순 시인)
*N. Frye, Anatomy of Criticism, 임철규 역, 한길사, 1987, 228쪽.
표문순
2014년《시조시학》신인상 등단,시집『공복의 구성』,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열린시학상,나혜석문학상 등 수상,문학박사 졸업(한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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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4 _ 박희정의 「가을엔」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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