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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시조시각〉3 _ 이종문의 「아지매 김끝남 씨」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2. 10. 3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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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매 김끝남 씨

 

이종문

 

부고가 날아왔다, 아지매가 가셨다는,

 

그냥 리어카에 투욱, 받혔는데 여든 해 쉬던 숨결을 멈췄다는 것이다

 

영안실 안내판을 찬찬히 살펴봐도 누가 아지맨지 도무지 모르겠다

 

상주의 이름을 보니 김끝남 씨인가 보다

 

아내에 맏며느리, 어머니에 아지매라

 

가슴에 단 한 번도 제 이름을 못 달다가 처음사 영안실에다 이름을 단 김끝남 씨.

 

살아 몰랐던 것 가시고사 겨우 알고 향불을 피워놓고 두 번 절을 하는 것을

 

아지매 김끝남 씨가 말없이… 굽어본다

- 이종문, 『정말 꿈틀, 하지 뭐니』, 천년의시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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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은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합의가 분명해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되는 고유성이다. 김춘수의 시 「꽃」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짧은 구절에서 우리는 ‘이름’의 의미와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문화는 매우 빠르게 변화해왔다. 지역별, 계층별, 직업군별, 세대별로 시각차가 있긴 하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게 남아있다. 아무래도 구성원의 유대와 단합을 중시하면서 일체감을 추구하다 보니 개별성을 존중받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종문 시인의 시 「아지매 김끝남 씨」에서는 이름을 통해 젠더 및 민족적 권력구조의 맥락을 짚어보게 한다. 그의 시는 이름의 의미를 묻는 질문으로 재치 넘치는 풍자와 해학을 담아내면서 통렬한 아이러니를 동반하고 있다. 이름은 주로 개인과 사회적인 정체성의 표시로 쓰이는데, 그 기원을 살펴보자면 한국의 경우 부계 혈통주의와 가부장적인 것을 포함한다. “영안실 안내판을 찬찬히 살펴봐도 누가 아지맨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시적 주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김끝남 씨”는 이미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여성의 이름 짓기 루틴에서도 벗어나 있다. 다음 아이가 꼭 아들이기를 희망하면서 붙여진 이름, 김끝남 씨! 그녀는 한평생 “아내에 맏며느리, 어머니에 아지매”로 불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다가 “처음사 영안실에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 놓았다.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는 듯이 끝을 통해 시작을 부르고 있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이 있음.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 선정, 2019년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수상.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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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시조시각〉3 _ 이종문의 「아지매 김끝남 씨」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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