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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경계에서 건넨 시로 쓴 아름다운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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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5. 5. 22.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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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

 

 

 

하린 기자

 

2003실천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한 박설희 시인의 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가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 23년 차를 맞이한 박설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현실과 사물들을 통하여 세상사의 신산함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존중하고 위무(慰撫)하는 정서의 깊이와 함께 언사의 품격을 갖추게 된다.

 

생명과 죽음, 자연과 인간, 역사와 공동체, 일상의 희로애락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세밀한 시적 언어로 엮어낸다. 시인은 한 생명이 떠나고 또 다른 생명이 오는 경계 위에서 우리 삶의 근원과 의미를 절묘하게 응시한다. “한 생명이 가고 한 생명이 왔다는 시인의 말에서 보이듯, 존재의 순환, 삶과 죽음의 교차, 그 사이를 머무는 간절함 등 인류 공동의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형상화한다. 박설희 시인은 침묵 속에서 다가오는 삶의 미세한 움직임과 자연의 소리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내면의 고요와 함께 다가오는 새로운 의미의 초대를 건넨다.

 

박설희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풍부한 감각적 이미지와 밀도 높은 서정성에 있다. 시인은 일상과 자연, 가족을 언어의 재료로 삼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순간을 시적 공간으로 소환한다. 동시에 산문적인 흐름과 내레이션, 대화체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서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시적 언어를 완성한다.

 

시집 전체에 흐르는 정서 중 하나는 노동, 공동체, 역사적 상처 등 사회적·시대적 문제의식이다. 법과 편」 「명령등에서는 1960~70년대 노동자와 민중의 삶, 그리고 전태일의 일기를 인용하는 등 역사적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발언과 연대의 감각이 두드러진다. 또한 지바현 능소화와 같은 시에서 한일 간의 역사, 억울하게 흘린 피의 기억, 사회적 비극과 인간의 내면을 뚜렷하게 암시하기도 한다.

 

우리 집에 놀러 와는 삶과 죽음, 사랑과 상처, 역사와 노동, 공동체와 자연을 넘나드는 입체적 시선으로 현대인의 깊은 내면을 어루만진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통해 일상적 경험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의미, 사회적 상처와 치유의 가능성,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독특한 이미지와 언어 실험, 그리고 공감과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진솔한 메시지는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크나큰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올해 첫물이에요

비닐봉지에 꽁꽁 싸맨

감자 몇 알과 상추를 내민다

까맣게 그을린 손등과 얼굴로

 

비닐봉지를 푸는데

씨를 뿌리며 흥얼거린 노랫소리 들린다

잎과 줄기가 피어나리라는 부푼 가슴,

긴 열기 견디고 스며드는 어스름이 고여 있다

 

울컥,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첫물의 시간들

 

풋내나는 걸음걸이

두근거리는 심장

시디시어 입에 침이 고이는

떫고 까끌거리는

첫 입학, 첫사랑, 첫 키스, 첫 월급, 첫 출산

첫 죽음까지

―「첫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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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놀러 와

 

감자밭 가장자리를 지나

시냇물 돌징검다리 건너

조팝꽃 쪼르르 피어 있는 오솔길

 

혼자 오지 말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심심한 구름을 데려와

정처 없이 나풀거리는 나비

맑고 서늘한 새소리와 함께 와

 

사심私心은 두고 와

가볍게 가볍게

 

첫 번째 갈림길을 만나

소나무 우거진 숲으로

백 걸음쯤 걸으면

네 키의 열 배나 되는 바위가 졸고 있지

―「우리 집에 놀러 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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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씨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안 보이는 눈을 껌벅거리며 순녀 씨가 귀를 세운다

소란 씨는 휠체어에서 뒤틀린 몸을 버티며 간신히 눈을 맞춘다

이동 차량이 안 잡힌 대준 씨는 줌 화면으로 얼굴을 보인다

 

시 창작 첫 수업

내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한다

가지가 앙상한 은행나무가 교실 안을 기웃거린다

 

은행나무는 사람보다 먼저 직립했다

나무의 체위를 보며 사람들도 직립을 꿈꾸었을까

 

물속에 서서 자는 고래의 체위를

날면서 자는 새들의 체위를 그려보다가

내 앞에 놓인 시를 더듬더듬 읽는다

―「체위에 관한 단상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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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경계에서 건넨 시로 쓴 아름다운 초대장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2003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박설희 시인의 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가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 23년 차를 맞이한 박설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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