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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언어로 불안을 견디는 영혼의 ‘로드 포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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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5. 5. 2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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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다의 일곱 번째 시집 『이것은 천재의 사랑』 타이피스트시인선으로 출간

 


하린 기자

양안다의 일곱 번째 시집 『이것은 천재의 사랑』이 타이피스트 시인선 009번으로 출간되었다. 2014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첫 시집 『작은 미래의 책』부터 『몽상과 거울』에 이르기까지, 여섯 권의 시집을 통해 꿈과 현실을 오가며 인간이라는 미로를 섬세하게 탐색하고, 관계의 이면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을 시적 언어로 견고히 다져 왔다. 

양안다는 이번 시집을 통해 사랑의 모순과 착란을 통과하며, 불안이라는 그림자와 나란히 걷는 ‘로드 포엠’을 보여준다. 거창한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이 실패하거나 사라진 뒤, “비극일지 희극일지 모르는 감정의 입체 속에서” 그 마음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를 기록한다. 

사랑은 실패를 전제로 한 감정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내 언어를 통해 건너가려는 마음, 말하지 못한 채 남겨진 고백들을 담고 있다. 사랑이라는 그 감정이 ‘천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감정을 지워 버리지 않고 살아 내고자 했기 때문에, 시인은 이 사랑을 “천재의 사랑”이라 이름 붙인다. 그렇게 사랑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존재를 설명하는 필터로 작용한다. 

양안다의 시에서 ‘사랑’과 더불어 ‘불안’이라는 코드도 자주 등장한다. 그에게 ‘불안’은 단순한 정서 이상의 어떤 지점을 갖는다. 그것은 곧 감각을 구성하는 장치이고, 문장을 구성하는 호흡이며, 존재를 견디게 하는 윤리다. 그에게 불안은 무기력이 아니라 증언의 몸짓이 된다. 시집 곳곳에서 반복되는 공간들은 모두 불안이 침전되었다가 다시 꿈틀대는 감정의 인큐베이터이다. 이 공간들은 시인에게 기억의 장소이자, 감정의 복원실이 되며, 그 속에서 ‘천재’는 불안과 사랑의 경계에서 서툴고 진실하게 다시 태어난다. 

『이것은 천재의 사랑』은 젊은 시인의 매력적인 발화들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시인의 다양하고 다층적인 발화가 궁금한 독자라면 양안다의 신간 『이것은 천재의 사랑』을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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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가장 듣기 좋은 말

양안다

이 보석함을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습니다. 값싼 보석도 몇 개 넣어 두었습니다. 보석함을 열면 오르골이 흐르고요. 이 멜로디가 당신을 기쁘게 만들 거라 생각했어요.

같이 음악을 듣는 건 가끔…… 꽤 지루하게 만든다.

애정이 식도록 나도 꽤 노력한 편이에요. 금방 나아질 거라고 확신할 순 없어요. 옆집 삼촌은 삼 년 전에 죽은 아들 때문에 아직도 취해 있는 걸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악의 길로 인도하소서. 그러나 이 몸은 언제나 당신의 편에서. 아멘.

아빠한테 안 들키도록 해.
늙은 염소 같으니라고.
전쟁이 나면 젖소들도 바쁘다고. 우유도 못 먹고.

그래도 아빠는 나에게 반지를 주었어요. 나를 위한 각인까지. 성냥을 켜줄게요. 직접 읽어 봐요. 우리 삶은 그저 누군가가 집필한 책의 일부이다.

― 난 바다에 가본 적이 없어요.
― 거짓말. 바다가 아니라 공장이겠지.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정말?
네. 정말로요.
글쎄……

나는 당신 따뜻한 말.
당신 선한 말.
당신 우스운 말을 먹고 사는 머저리가 될래요. 적어도 이번 계절에는요.
내가 눈이 멀어 버린 걸까요.

스스로를 속이진 말아요. 그것 말고 당신은 무엇이든 해도 괜찮아요. 마체테 쥐고 누군가의 팔뚝을 썰더라도……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면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사람이 한 무더기예요.

제가 저녁을 드릴게요.

빈 물약 병 좀 가져와요.

우린 잘 있어요. 막내는 어느 바보에게, 둘째는 외국어
선생에게 빠졌어요. 그리고 나는 당신 답장을 기다려요.
― 아빠에게

더는 군홧발 소리가 들리지 않아.

기쁘다.
―『이것은 천재의 사랑』,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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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레나와 유코가 어느 소설 속에서

양안다

옐레나는 한 번 더, 그러나 전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도망가자, 유코.”
갑작스러운 고백에 작은 키 유코는 옐레나를 올려다보았다. 심장이 터지면 입 밖으로 쏟아지는 걸까.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유코는 제대로 서 있기도 버거웠다.
두 사람의 그림자는 흰 담장 위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사이 자전거를 탄 학생이 지나갔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바람개비를 손에 쥐고 달려갔다. 어디선가 날아온 오색 비눗방울이 흰 담장과 골목을 가득 채웠다. 비눗방울 하나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어느 연인에게로 날아갔다. 연인은 그 비눗방울을 사랑의 은유로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사라지는 행인들. 멀어지는 발소리.
잠깐 시간이 멈췄던 걸까.
유코는 갑자기 모든 걸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흰 담장 구석의 낙서.
축 늘어진 가지에 목련이 피어 있고
텅 빈 거리와 정적, 그리고 떨고 있는 옐레나의 입술……
그 입술은 유코를 조금 슬프게, 그러나 많이 기쁘게 만들었는데, 옐레나, 이제 기쁨도 슬픔도 함께해야 하는구나, 우리, 그런 사이가 되어 버린 걸까, 유코는 깨달은 것이다.
작은 키 유코는 대답 대신 옐레나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한 번 더, 그러나 전보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옐레나를 올려다보았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웃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어느 연인처럼.
유코는 숨이 찬 표정이었는데 아마도 어느 해변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옐레나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멀리 도망가자……’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옐레나는 유코의 손목을 붙잡고 달렸다. 텅 빈 거리에서 도심으로, 도심에서 대성당을 향해. 유코는 얼굴에 닿는 바람의 결을 하나하나 느끼려 애쓰며, 앞서 달리는 옐레나를 바라보았다.달리면 달릴수록 옐레나의 뒷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총구가 빠르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무슨 소설 읽어?”

어느새 그 아이가 어깨에 기대어 있다.

“졸려 보여.”

그 아이는 나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나는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만 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어떻게 생각해?”

그런데 마지막으로 잠든 게 언제였지.

“날 이해할 수 있어?”

그 아이가 나에게 이해라는 걸 묻는다.
나는 그런 건 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하는데.

― 응. 어쩌면.

인간이기 때문에 자꾸 속는다.
―『이것은 천재의 사랑』,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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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어지러운 초콜릿 소년

양안다

그냥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듣는 우리 불편하라고. 응. 어쩜 그리 못됐는지.

― 겁쟁이. 불안해서 사랑으로 도피한 거죠?
― 사랑하려고 불안을 선택한 거란다.

우린 어제 떠나서 오늘 만났다. 다른 마음에 대해 배우는 게 뭐가 나쁘냐고요? 덕분에 당신들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까.

나는 저기 누워 있는 시체를 만난 적 있으니까.

사흘 전이었나.

낮이었습니다.

초콜릿을 파는 소년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무더위에 초콜릿이 녹아내리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몇 시쯤 됐을까요? 해가 저물어 갈 때 저는 가로등 밑에 주저앉아 훌쩍이는 초콜릿 소년을 보았습니다. “얘야,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무얼 하고 있니. 어둠 속은 위험하단다.” 바구니 속에서 초콜릿이 전부 녹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초콜릿 소년은 대답도 하지 않고 중얼거렸어요. “더는 속임수 따윈 하지 않을 거야. 속임수 따위……”

누군가는 불안과 사랑으로 야바위를 하고 있다……

내 친구는 만져 보았대.
뭐를?
연인의 마음을.
헛소리. 슬픔도 만졌다고 하지 그래?
손바닥이 온통 젖었대.

안녕.

“당신을 분명 사랑해! 그런데도 충분하지 않은 거야?” 세상 연인들은 내면을 보여 주고 싶어 안달이다.

나는 복잡하게 말합니다. 나는 중얼거리고 중얼거리듯 네게 말하고 어제와 오늘을 헷갈리고 그러나 사랑과 불안은 아니지. 우리가 함께 넘어진 곳이 어디지? 나는 그딴 거 몰라. 내가 복잡하게 말한다고. 나의 내면이 이렇게나 복잡하다고. 너를 복잡하게 사랑한다고.

응. 듣는 네가 불편하라고.

잘 봐.

나는 첨탑에 올라섰다. 이 지역 사람들이 다 몰려올 거야. 저기 붉은 지붕 옆 골목쯤에서 초콜릿 소년이 죽은 채로 발견됐었지. 초콜릿이 녹아서 개미 떼가 소년을 뒤덮고 있었댔지. 얼음은 녹으면 물이 되는데 초콜릿은 왜 시체가 돼야 해? 사람들, 대답 좀 해보세요. 지금 내가 죽으면 무엇이 되는 거죠?

나는 시체가 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

고마워. 높은 곳에서 잘 찾아볼게. 나의 마음을 네가 만질 수 있도록.

“달콤한 걸 먹으면 저를 떠올리세요. 더 달콤한 것에 갈증을 느끼면서요.”

안녕, 이라는 말은 이상하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우리는 안녕, 한다. 어제 떠날 때 안녕. 오늘 만날 때 안녕.

이런 표현 진부하지만, 오늘 하늘이 참 푸르구나. 종소리가 맑고 울림이 있구나. 목련 피고, 거리에서 아이들이 졸고, 바람, 바람, 바람. 현기증이 참 좋아…… 그리고 불안, 불안 좀 가져와야지. 너를 복잡하게 이해하려고.
―『이것은 천재의 사랑』,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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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언어로 불안을 견디는 영혼의 ‘로드 포엠’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양안다의 일곱 번째 시집 『이것은 천재의 사랑』이 타이피스트 시인선 009번으로 출간되었다. 2014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첫 시집 『작은 미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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