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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상실. 그 순간들에 서린 감정의 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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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5. 4. 23.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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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의 두 번째 시집 진심의 바깥에포케스튜디오에서 출간

 

 

하린 기자

 

이제야 시인은 2023년 첫 시집 일종의 마음을 시인동네시인선으로 출간한 바 있다. 첫 시집에서 이제야는 사랑과 이별의 시간이 지난 후 야기되는 감정과 감각들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면서도 대상의 존재를 이제야만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포섭하는 작업을 펼쳤다. “어쩌면 나에게만 슬픔일 수 있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보편적인 매일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슬픔을 향한 본질적 탐구는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었고 사랑을 듬뿍 받았다.

 

2025년 봄, 이제야가 두 번째 시집 진심의 바깥(에포케스튜디오, 2025)을 가지고 독자 앞으로 되돌아왔다.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상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적 몸부림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시인. 이제야는 진심의 바깥에 머물며 미처 놓쳐 버릴 수도 있었던 인연과의 이야기를 섬세히 엮어 낸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감정을 건네듯, 이제야의 언어가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히 스며든다. 부드럽게 위로하는 시어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잠시 멈추어 서게 한다. 슬픔도 기쁨도 모두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임을 일깨우며, 우리들의 잃어버린 시간과 감각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한다.

 

이번 시집도 첫 시집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사소한 순간 속에서 숨 쉬는 감정들을 섬세히 포착한다. 도시의 공기처럼 무심하게 흩어지는 눈빛과 손길, 잊고 살던 감촉들. 그리고 우리가 한 번쯤 느꼈지만 끝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들까지, 어린 시절 나지막히 들었던 동화의 한 구절처럼 따뜻하게 전해준다.

 

진심의 바깥(에포케스튜디오, 2025)을 펼치는 순간 독자들은 오래전 잃어버린 자신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비록 답을 찾을 순 없지만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상실을 겪었던 그 순간들에 서린 감정의 농도를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충분히 아름답고도 찬란했던 시절과 인연을 껴안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미래의 답장

 

이제야

 

걸어갈 수 없는 길 앞에 멈춰 서면

우리는 이것을 오래된 노래라고 불렀지

 

어떤 장마는 볕처럼 내리기도 하고

 

멀리서 젖어온 옷이 며칠 마르지 않으면

맨몸으로 방 안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장마가 계속되면 먼 미래에 편지를 썼다

 

한낮의 위로는 얼마나 짧으며

한밤의 꿈은 얼마나 위태로운지

 

그리운 것들을 오래 기억하라는 듯이

 

확신의 편지라는 것은

10년이 지난 노래를 외워 부르는 일

묵직한 미안함이 녹슬어가는 일

 

세상에 많은 우리의 거리를 세는 동안

이제 멀리 갈 곳이 없어서 낮잠을 잤다

 

겨울을 위한 목도리를 미리 둘러놓고

우리는 이것을 미래의 답장이라고 부르겠지

 

환한 얼굴들이 노래를 시작하면

볕이 좋은 미래에 장마가 끝났다

―『진심의 바깥, 에포케스튜디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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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의 진심

 

이제야

 

말할 수 없는 것을 진심이라고 하면

무엇이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읽을 수 없는 오래된 이야기들과

보고 싶어서 볼 수 없는 존재들이

간직되고 있을 것처럼

 

차가운 입김에도 눈꽃은 어는데

더 녹아내릴 것도 없는 믿음 앞에 있었지

 

닿을 수 없는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순수한 얼룩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일 우리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

 

용기내 진실을 열었다가 다시 서랍을 닫고

녹아내린 믿음을 다시 굳히면서

 

안을수록 더 빠져나가는 것을 끌어안으며

아무도 간직할 수 없는 각자의 계절에 살지

 

덮어둔 날들을 당분간의 진심이라고 하면

우리는 조금 더 우리에게 가까워지는 것 같다

 

모르고 싶어도 간직되는 어린 날 같은 것

 

말할 수 없는 것을 진심이라고 한다면

이제 오래된 진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리가 빈 의자에서 기다려온 만큼만

―『진심의 바깥, 에포케스튜디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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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서점

 

이제야

 

겨울 저녁 언덕 위 작은 서점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소설 한 문장을 이해하려고 며칠을 애쓴사람이 왔습니다

 

언어가 정확한 진심이 될까요

우리는 물었습니다

 

아무 답도 없이 소설 한 문장에 계속 밑줄을 그었습니다

 

다음 사람은시들어가는 식물을가방에넣어 왔습니다

 

짧은 무관심에 시간이 베이겠죠

우리에게 고백합니다

 

식물에게 태교 동화를 읽어주고는 마른 잎을 떼어냈습니다

 

책을 한 번도 골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서점을 헤매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책이 있어요

우리는 다짐했습니다

 

사전을 꺼내 사랑을 찾고는 사랑이 지워진책을 골랐습니다

 

빈 얼굴을 잔뜩 그린 스케치북을 든 사람이 왔습니다

 

이해되는 만큼의 눈빛은 없지요

우리를 안았습니다

 

책을 뒤지면서 빈 얼굴에 문장을 하나하나 채웠습니다

 

가장 가파르던 마음들이 고단한 언덕을 내려갑니다

 

다시 믿어도 되는 이야기들이 생겼습니다

―『진심의 바깥, 에포케스튜디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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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이제야 시인은 2023년 첫 시집 『일종의 마음』을 시인동네시인선으로 출간한 바 있다. 첫 시집에서 이제야는 사랑과 이별의 시간이 지난 후 야기되는 감정과 감각들을 시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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