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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에 이르는 상상력의 전개를 여실히 보여주는 시(詩)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5. 5. 1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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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예의 세 번째 시집 코드를 잡는 잠여우난골에서 출간

 

 

김네잎 기자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치밀한 언어를 운용하여 중량감 있는 문장과 이미지를 생산한다는 문단의 평을 받으며, 2015발견으로 등단한 이승예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코드를 잡는 잠을 여우난골에서 발간했다. 두 권의 시집 나이스 데이언제 밥이나 한 번 먹어요를 통해 생의 내밀한 감정을 밀도 있게 형상화했다는 평을 들은 바 있는 이승예 시인은 제5<김광협 문학상>, 20<모던포엠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승예 시인은 이번 시집 코드를 잡는 잠을 통해 잊을 수 없지만 잊힌 것처럼 심연에 가두어 두었던 자아를시적으로 꺼낸 후 그것이 가진 양상을 매력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시인의 내면 깊숙이 봉인되어 있던 상처와 상흔을 상상력과 역설의 언어로 풀어냄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생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그 예가 아버지에 대한 시다. 시인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본질적 질문을 갖는다. “베어지고 나서야 드러나아버지의 배꼽”(오동나무 배꼽)을 본 시인이 자신의 배꼽이 아버지를 닮았음을 인지하고,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와 아버지로 전치하여 실존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실존의 자각은 시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끈다. “대상을 응시하되 단지 바라봄으로 그치지 않고, 대상의 약한 고리와 미세한 균열을 찾아”(출판사 책소개) 나선다. 균열은 더 이상 시인에게 상처가 아니다. “깨져야 달걀은 아름답”(달걀을 이해하는 밤)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살아갈 미래”(코드를 잡는 잠)로 나아가는 통로로 작용한다.

 

또한 시인은 우리들에게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한 고찰을 촉구한다. “등이 보이면 날아와 박히던 총알에 희생된 선배를 애도하는 꽃무덤”(무등산에는 등이 있다), 마늘을 까다가 사라져 간 오빠처럼 깨진 마늘 한 쪽(아르테미스의 생각), “가다가 내가 나가떨어져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오빠야 돌아보지 마!”라는 외침(물의 아파트), 붉게 터져버린 보리수(오월의 편지) 등을 통해 탁월하고 냉철한 직관력을 보여준다. 그 직관력으로 인해 독자들은 자신의 생의 편린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맞이한다.

 

코드를 잡는 잠의 끝부분엔 해설 대신 시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시인에게 시가 어떻게 왔는지 에피소드를 소환하여 착상과 전개에 나타난 특성을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시를 대하는 진중한 태도와 예리한 통찰도 덧붙여져 있다. 그래서 산문은 시집을 읽는 모두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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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코드를 잡는 잠

이승예

줄 하나 없는 잠을 잡니다

불면이 내립니다

줄 없이 연주되는 음계에

잠 속에서 가사를 써넣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올려 치는

빗줄기를 당겨 팽팽하게 튜닝합니다

잠은 G 코드로 옮겨 갑니다

코드를 옮겨 잡지 못해

현과 현이 서로 다른 음의 노래가 됩니다

내가 살아갈 미래입니다

한 가지의 코드로 나를 작곡한 한 남자는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내 코드로 옮겨 와 잠을 잡니다

비를 맞습니다

스스로 떨어지며 처음 서보는 팽팽한

현들입니다

나도 따라 뛰어내립니다

빗줄기와 기타 줄

두 가닥의 줄이 생겼습니다

어떤 코드로 옮겨갈까요

연주는

당신

내가

누가 할까요

​―『코드를 잡는 잠, 여우난골,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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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에는 등이 있다

이승예

주먹밥을 만들어서 버스 안으로 던졌어요

낯선 총소리가 자주 지나가고 교문은 굳게 닫혔어요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해서 우리는 피던 꽃이라도 되기로 한 것처럼

오월의 무등산은 등 없는 숲이 되고

비폭력을 외치던 우리들의 구호가 총을 가져왔나요?

등이 보이면 날아와 박히던 총알이 무등을 탄 주검이 되었어요

돌아보지 마요. 그냥 앞만 보고 시카리 달려요.

무작정 달려도 살똥말똥

이 말도 등 뒤에서 들렸어요

여고 1학년 2학기가 되어도 끝나지 않은 1학기 책을 들고 교문을 들어서니

구령대 앞에는 꽃들이 쌓였어요

학동 삼거리에서 타자학원 쪽으로 가는 길에 선

헌혈 차에서 헌혈을 하고 오다가 총 맞아 죽은 3학년 선배를

애도하는 꽃무덤

​―『코드를 잡는 잠, 여우난골,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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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 배꼽

 

이승예

아버지와 관 사이로 오동의 생각이 지나간다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유일한 시간

아버지는 나이테를 돌고 돌아 중앙에 다다랐다

관은 눈물이 본드 되어 굳게 닫혔다

 

오동꽃과 오동잎 사이로 한봄이 지나간다

 

오동잎 지는 냄새를 맡았는지

관 속에서 아버지는 또 다른 항성을 향하느라

오동잎처럼 사라져 갔다

 

나와 아버지의 거리는 오동꽃과 오동잎의 거리

가장 멀거나 가장 가까운 거리

 

슬플 때 노을을 보았다던 어린 왕자처럼

아버지가 지구를 다녀가시는 동안

나도 붉디붉은 노을을 보았지

엄한 아버지,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배꼽은 

 베어지고 나서야 드러나 딱 한 번 보았다 

 나도 겹친 살을 들어 올리고 나의 배꼽을 들여다본다 

 아버지를 닮았다 

 

 나와 아버지 사이로 오동꽃이 배꼽처럼 오무라진다

​―『코드를 잡는 잠, 여우난골,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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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산문 엿보기>

 

다시, 하얀 뱀

 

이승예

 

물렁하고 보드랍고 간지러운 것이 내 몸을 지나간다. 오른쪽 발등을 지나 왼쪽 발등을 지나간다. 그것이 시()라는 것을 내가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과 의심하기 시작한 시점이 같다.

​―『코드를 잡는 잠, 여우난골,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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