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은 기자
오광석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귓속의 이야기』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80번으로 출간하였다. 오광석 시인은 1975년 제주 태생으로 2014년 《문예바다》 신인상에 '기괴한 자장가' 외 4편으로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이계견문록』,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를 출간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제주작가회의, 문학 웹진 《산15-1》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오광석 시인의 『귓속의 이야기』는 “문 닫힌 벽장 속마다 놓아둔 귓속에서 이야기가 스멀스멀 새어나오는”(「귓속의 이야기」) 기이한 서사로 가득 찬 시집이다. 생경한 이야기이면서도 기시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 오광석 시의 가장 큰 특징인 설화성과 함께 몸의 기억으로 재현되는 감각으로써의 서사성은 시의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그로 인해 이 시집은 개인의 병증을 집단적 역사와 연결하는 매우 인상적인 서사를 보여준다. 그런 서사는 언제나 인간과 함께 존재해 왔지만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잊고 살아간다. 오광석은 그런 서사가 갖는 의미 있는 근원성을 시를 통해 환기시킨다.
오광석 시인의 신간 시집 발간을 기념하여 <미디어 시in>에서는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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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오광석 시인님, 안녕하세요? 시집 『귓속의 이야기』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독자에게 인사 말씀해 주세요.
답변: 안녕하세요.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 쓰는 오광석입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시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 ‘귓속의 이야기’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제주의 아픈 역사인 제주4.3에 대한 형상화와 국가권력에 희생된 역사적인 사건과 장소에 대하여 기억을 이어가고자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 국가권력에 의한 내란사건이 터져 그 시점의 작품들도 몇 작품을 넣었습니다.
질문: 시집 『귓속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이고, 독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읽어내면 좋을까요?
답변: 시에 담론이나 어떠한 감성,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그 시를 읽고 느끼는 감정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시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삶도,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고자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혹은 잘못된 현실을 풍자하는 이야기도, 과거의 국가나 권력, 이데올로기로 인한 아픈 역사를 읽어내도 좋습니다. 아니면 그러한 숨겨진 역사를 다 이겨내고 오롯이 서 있는 장소들에 대한 서정을 읽어도 좋습니다.
다만, 아픈 역사와 그것을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기억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은 있습니다. 저는 역사도 사람도 기억하는 동안은 영원할 것이고, 잊어버리면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시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시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답변: 어릴 때 시를 처음 마주한 것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였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문예부에 들어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시기였습니다. 시를 쓰는 데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이 종이와 볼펜만 있으면 된다는 선배의 말에 문예부에 들어가서 시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가 저를 다시 활기차게 다스려주었습니다.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 신세대에 가입하면서 시가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제주4.3에 대하여 제대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은 다들 알지만 가르쳐주지 않는 이야기들. 제주에서 실제 벌어진 현대사지만 잊어버리도록 강요된 역사. 사라진 마을들. 감춰진 피난처, 궤, 학살터 등을 알게 되면서 제주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시가 곧 감춰지도록 강요되었던 제주의 역사를 끌어올리는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시를 이제껏 쓰면서 느끼는 것은 시는 올바른 상상을 하며 현실을 이겨내는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도피처가 아닌 일종의 시간을 멈추는 힘 같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진정시키고 다시 현실에서 투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또한 시는 현실을 변혁하는 힘도 있습니다. 현실의 문제점을 서정적, 은유적, 풍자적으로 꼬집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시가 많은 힘과 역할을 가진 문학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시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다른 분야의 창작에도 관심이 있으신 듯합니다. 앞으로의 시의 방향성이나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답변: 시를 쓰는 것을 멈추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어릴 적부터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고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소설이 톨킨의 ‘반지의 군주’였습니다. 그 외에도 판타지 소설, 속칭 장르 소설을 가리지 않고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저도 직접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요즘 그래서 소설을 읽고 쓰는 재미에 좀 빠져있습니다. 혹여 소설집을 낼 수 있다면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질문: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시집을 읽게 될 독자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독자들이 접해보지 못한 이야기들 특히 제주4.3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과거 국가권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쓸 생각입니다. 그리고 좀 더 가벼운 초현실이나 상상의 세계를 오가며 지친 현실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시들을 쓸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 번 시집을 출간하게 되면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집 속 대표시와 시인이 직접 밝힌 시에 대한 소견>
늘 봄
오광석
집으로 가는 길은 늘 바다를 바라보는 내리막길이었지
전쟁놀이에 대낭 찾아다니던 봄날 웃드르 함박이굴*골목 대낭밭에서 밑동이 불그스레한 대낭을 꺾어다 놀았지 내창에서 골개비를 잡아 대낭 뾰족한 끝으로 찔러 굽기도 했지 무너져가는 돌담길 사이에 모여 앉아 잡아온 독다구리 지넹이 골개비 자랑하다 날이 저물곤 했지 해 질 무렵 도채비불 쫓다 대낭밭에서 흐윽흐윽 소리가 들릴 때야 집으로 내려가곤 했지 내려가는 동안 올라가는 아이가 없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
가로등 하나 없던 검문소 너머 마을의 흔적들 사라져가는 어린 기억들 그 자리에 솟아난 꿈들이 빌딩만큼 자라난 후에야 알아버렸지 잘라 놀던 대낭밭이 설화처럼 희미해져가는 옛집을 지키고 있었다는 걸 무너져가던 돌담길은 옛집으로 가는 올레라는 걸 잡아온 독다구리 지넹이 골개비처럼 비명도 못 지르고 죽어가던 날 일렁이는 인광만 남긴 채 비어버린 마을
한동안 오르지 못한 웃드르의 자리 어느 봄날 복개된 내창 위로 아스팔트가 깔렸지 네모난 성곽 같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건설되었지 삭막하게 돌아온 사람들 대낭도 올레도 독다구리도 골개비도 땅속 깊은 자리에 묻혀 사라진 곳 이제는 늘 봄으로 기억되었지
*제주시 노형동에 있던 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
―『귓속의 이야기』 도서출판 북인, 2025
<시작 메모>
어릴 때 제주시 노형동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노형이 개발되지 않아 속칭 검문소 밖 동네였습니다. 노형 입구에 검문소가 있었고 그 밖은 시외로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노형동 정존(노형초등학교 부근)에서 살면서 여기저기를 많이 놀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놀던 자리가 사실은 사라진 마을터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금은 다 개발되어 도시화가 진행된 공간으로 한라대 입구에서 뒷편까지 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인 함박이굴, 방일리, 개진이, 드르구릉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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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왓* 돌담
오광석
돌과 돌 사이 구멍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무명옷의 아이들이 돌담 사이를 지나친다
구멍은 시간이 새어 나오는 틈
한 걸음 옆 구멍을 들여다본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짐을 지고 떠나는 사람들
마을을 등진 채 걸어간다
구멍 너머 공간은
돌 사이에 머문 시간의 기억들
시간은 돌담을 따라 흘렀다
돌과 돌 사이를 지나쳐가다
다시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폐허가 된 마을이 보인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구멍마다 보이는 무덤들
대나무들만이 곧게 지키고 있다
돌담 끄트머리에 이르러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잡풀 가득한 올레
마을의 흔적이 보인다
떠나간 아이들의 목소리가
돌담 사이로 흐르는 바람에 실려온다
*제주도 애월읍 봉성리에 있었던 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
―『귓속의 이야기』 도서출판 북인, 2025
<시작 메모>
제주4.3은 제주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낙인을 남겼습니다. 1948년 겨울은 몹시도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 차가운 겨울에 무수히 많은 마을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수많은 계절이 지난 후 봄이 되자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사라진 마을들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가끔 그 시간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국가 폭력으로 얼룩진 격동의 시대에 마을과 함께 사라진 사람들. 지금도 그 후손들이 나처럼 마을이 사라진 자리에 돌아와 슬쩍 옛 시간들을 돌아보고 가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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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아이를 업고 가네
오광석
별빛이 총구 불빛처럼 번쩍이는 겨울밤 잠든 아이를 업고 눈길을 따라 험난한 산을 타네 애기야 애기야 잠든 아이를 부르며 눈길을 걷는 여인 애기야 애기야 이 산 너머 오름 밑 깊은 궤 속을 지나면 죽은 사람도 살아나는 낙원이 있대 살 갈라지는 겨울을 넘어가면 방구들처럼 뜨듯한 봄날만 있는 서천꽃밭이 있대 꽃감관 할락궁이가 마중 나와 꽃밭으로 데려간대 애기야 애기야 등 기대 자지 말고 보채 울어봐봐 잠든 아이 어르고 달래 깨우는데 잠든 아이는 엄마의 등이 따뜻해 머리를 붙여 일어나지를 않네 아이를 업고 가는 밤 여인이 울며 눈 덮인 산을 타는 뼈 시린 밤 잠든 아이는 서천 꽃밭에 먼저 올라 뛰노는 밤 여인은 잠든 아이를 업고 산속을 헤매다 바람이 되었네 흐윽 소리 내며 산을 타는 바람이 되었네 일흔 몇 번의 겨울이 지나 영실 머리에 서자 잠에서 깬 아이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네
―『귓속의 이야기』 도서출판 북인, 2025
<시작 메모>
제주4.3은 혹독한 겨울에 더욱 거셌습니다. 특히 여성과 아이에게는 더욱더 잔인한 겨울이었습니다. 그때 그 겨울의 잔인함은 스물다섯의 엄마인 변병생 씨와 그녀에게 업혀있던 두 살 배기 딸에게도 몰아쳤습니다. 1949년 1월 군경의 초토화작전 시기에 거친오름으로 피신했던 그녀들은 희생되어 혹한의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제주4.3평화공원에 모녀상으로 되살아난 그녀들을 보며 제주 사람들은 그때 그 겨울을 잊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그들이 세상에 다시 없을 천상의 낙원 서천꽃밭으로 무사히 도착하여 지금은 웃으며 살고 있기를 빕니다.
환상성과 현실의 결합 『귓속의 이야기』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환상성과 현실의 결합 『귓속의 이야기』 - 미디어 시in
이정은 기자 오광석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귓속의 이야기』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80번으로 출간하였다. 오광석 시인은 1975년 제주 태생으로 2014년 《문예바다》 신인상에 \'기괴한 자장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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