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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국경을 넘나들며, 말이 가닿을 수 없는 곳에 비명을 남기는 독특한 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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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5. 8. 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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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모두가 예쁜 비치타이피스트 시인선으로 발간

 

 

하린 기자

 

오영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모두가 예쁜 비치가 타이피스트 시인선 010번으로 출간되었다. 2017시와사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첫 시집 닳지 않는 사탕을 주세요에서 세계의 불의와 폭력성을 고발하고, 새로운 여성적 발화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호명되는 순간 사라지는 존재들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날것의 물질성으로 보여 주며, 세계의 기표 뒤에 감춰진 가학과 피학을 직면한다.

 

따라서 모두가 예쁜 비치는 단순한 고통의 서정이나 서사가 아니다. 고통의 실체와 감정의 붕괴, 언어의 소멸 직전에서 살아남은 감각들이 어떻게 다시 라는 형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탐색한 결과물이다. 감정을 노래하지 않고, 감정을 견디지 않고, 감정 자체를 직면하며 무화되는 언어를 추구하는 오영미만의 방식. 그로 인해 난무하는 가학과 피학의 언어는 저항의 기표이며, 무너진 세계에서 여성 화자들이 끝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 마지막 발성이 된다.

 

모두가 예쁜 비치는 구성 또한 흥미롭다. 연극적인 구성, 혹은 몽타주처럼 흩어진 단면들을 통해 전체를 구성한다. 정해진 서사 없이, 각 시는 마치 짧은 무언극처럼 감정의 순간을 고스란히 펼쳐 보인다. “레아와 크리스틴”, “마냐와 바냐”, “프란체스카와 시씨, 이 시집의 인물들은 일종의 서사적 장치이자 감정의 상징이다. 이들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사랑하거나, 상처 입히거나, 폭력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그 서사는 언제나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사랑은 늘 어긋나 있고, 관계는 언제나 균열을 전제로 한다. 이 모든 문장들은 자기 파괴와 혐오, 생존과 기만의 경계에서 말하는 여성 화자들의 독백이므로, 살아 있으나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있지만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이 끝내 페이지마다 내포될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은 애도와 사랑, 욕망과 공포, 혐오와 자기 파괴 사이에 있는 감정의 국경을 넘나들며, 말이 가닿을 수 없는 곳에 개성 넘치는 여성 화자의 비명을 남긴다. 그 비명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을 넘어선 본능의 문장으로 전이된다. 전이 끝에서 시인은 새로운 생존의 형식을 발견하고 독자들에게 연대의 몫을 남긴다.

이와 같은 오영미의 매력적인 시적 전략이 궁금한 독자들은 기필코 모두가 예쁜 비치를 읽어볼 일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2020 원더키디 이후의 사랑

 

오영미

 

예정보다 늦게 배달된 애인은 살짝, 아주 살짝 부서져 있었다 나는 애써 투명하게 미소 지었지만 애인은 미소 짓는 척만 지겹도록 반복했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애인과 격렬한 춤이나 추자, 생각하자마자 서로의 머리칼이 서로의 숨결을 따라 달콤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농담처럼 와르르 쏟아지는 피로 속에서 발목이 부러졌어요! 발목이 부러졌어요!” 애인이 꺄아악끼야악꾸에엑 울부짖었고 어쩔 수 없이 도끼를 치켜들며 나는 말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애처롭게 짓무른 애인의 눈동자는 인공적인 포도 맛 젤리 같은 주제에 그럼에도사랑은지속되어야해요영원토로로로록피에 젖은 애인의 발목은 징그럽도록 사실적이어서, 서둘러 고객센터를 찾았다

 

★☆☆☆☆

최악입니다 솔직히 별점 1점도 아깝습니다

양심껏 장사하십시오

 

―『모두가 예쁜 비치,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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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게는 딸이 있다

 

오영미

 

그렇고말고, 내 딸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지. 내 딸은 철자 R을 정확하게 발음하던 금발의 레베카를 쏙 빼닮았거든!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행복한 그 시절, 나는 찢어진 속옷에 딱 한 방울의 피를 묻혀 레베카에게 보냈고, 레베카는 한 움큼 뽑아낸 금빛 머리칼을 아름다운 답장과 함께 보내 주었지. 우리는 서로를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아팠고,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만큼만 미쳐 있었단다. 한데 어느 날, 더는 내게 뽑아 줄 머리칼이 없다는 사실에 레베카는 대책 없이 아프고 처절하게 미친 사람이 되고 만 거야. 나는 레베카를 위해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지, 천 마리 알록달록한 학이 완성되면 레베카는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빼곡히 담아서. 마침내 천 마리의 학을 완성한 바로 그날, 레베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죽고 말았는데…… 내 딸은 지금 뭘 하고 있냐고? 천 마리의 색 바랜 종이학을 하나하나 펼친 뒤 그 안에 색색의 바늘을 집어넣어 월남쌈을 마는 중이야. 엄마를 위해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준다나 뭐라나? 정말이지. 솔직하게 고백할게. 내 딸은 레베카만큼 균형 잡히게 아프지도, 지적으로 미치지도 않았단다. 오히려 머저리에 가깝지. 조만간 꼴도 보기 싫은 저 다갈색 머리칼도 금발로 염색할 작정이야.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라니까? 성가시기 짝이 없어. 그나저나 친애하는 나의 알리스, 혹은 아리스, 어쨌든 앨리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세상에 딸이라니, 그토록 완벽하고 끔찍한 존재가 나에게 있을 리 없잖아!

 

―『모두가 예쁜 비치,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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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오영미

 

여기는 방이다. 식탁에는 아주 매운 국물 닭발과 소주병, 맥주병이 굴러다니고, 문이란 문은 죄다 닫혀 있으며, 환풍구를 통해 들어오는 담배 냄새 때문에 자꾸만 구역질이 나는, 그런 방이다. 나와 모모는 이 방에 갇혀 버렸고, 이 방을 나가려면 나와 모모는 반드시 ??를 해야 한다. 소맥을 제조하는 데 여념이 없는 모모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나는 모모에게 우리가 이 방에 갇혔으며 이 방을 탈출하는 방법은 오직 ??밖에 없다고 소리친다. 한동안 말없이 소맥을 들이켜던 모모가 이윽고 나에게 말한다.

 

남자 친구와 선약이 있어서 주말에 나를 만날 수 없다는 친구에게 남자에 미쳐서 친구 외면하는 여자치고 말년이 좋은 여자는 없던데고작 이런 말이나 내뱉는 내가나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며 모모의 두 손을 잡고 흔든다.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로맨스 소설 원고가 무성의한 답장과 함께 반려됐다는 이유로 수면제와 보드카를 오래도록 삼킨 내가나는 우리가 이 방에 갇혔다는 말을 반복하며 모모의 두 뺨을 있는 힘껏 갈긴다. “한때는 피와 살보다 더 가까웠던 사람이건만, 지금은 그 사람이 하루빨리 몰락하고 절망하기만을 바라는 내가 정말이지……

 

하필 갇혀도 이런 인간과 갇힐 게 뭐냐고, 내 인생은 왜 항상 이 따위냐고, 솔직히 너 같은 인간과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소리치며 나는 낡은 식탁을 와장창 뒤엎어 버린다. 탱탱볼처럼 튀는 닭발과 국물, 별빛처럼 부서지는 소주병과 맥주병을 온몸으로 뒤집어쓴 모모가 별안간 몸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아주 손쉽게 문을 열더니 나에게 한마디를 건네고는 문을 쾅, 닫는다.

 

금쪽같은 시간 낭비하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저를 볼 일 없을 테니 모쪼록 안심하시길! ”

 

―『모두가 예쁜 비치,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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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오영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모두가 예쁜 비치』가 타이피스트 시인선 010번으로 출간되었다. 2017년 『시와사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첫 시집 『닳지 않는 사탕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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