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2005년 《시인세계》로 등단한 진동영 시인이 첫 시집 『투명한 뼈』를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출간했다.
진동영의 시는 담백하고 담담하게 사물들의 지속과 연쇄를 포착하며, 특유의 양식과 화법을 통해 탄탄한 시적 세계를 구성한다. 그는 무수히 많은 셔터와 같이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포착하고, 병치시킴으로써 우리가 속한 세계에 대한 서사를 구성해 낸다. 그렇기에 진동영이 제시하는 이미지들의 연쇄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세계의 진리를 목격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시집에서 직접적인 감정의 언어적 표출이 없다 할지라도 그 공백을 통해 우리는 무궁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또한 그와 같은 세계 내의 존재이기에, 빈자리는 공백의 부피를 초과하는 의미로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진동영 시인의 첫 시집 『투명한 뼈』 발간을 기념하여 <미디어 시in>에서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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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진동영 시인님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20년 만에 첫 시집을 내셨는데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답변: 축하 감사합니다. 우선 ‘20년 만에’의 변명을 해야 할 거 같네요. 사실 20년이 2년 같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또 200년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동안 시 속에 있기도 하고 시 밖에 있기도 했지만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제가 낸 소리를 쫓아 멀리 활공하는 새(제 시, ‘호박넝쿨의 젠탱글’에서 가져왔습니다.)’처럼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멀고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정신이 가는 곳이 시가 가는 곳이라면, 제가 갈 수 있는 길을, 제 속도로 걸어, 지금 이곳에, 적기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20년이 다 지난 후에야 20년이 지났음을 알았지만 ‘20년 동안’이 아니라 ‘20년 후의 오늘’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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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집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제목에 담긴 의도나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답변: 시집 제목인 ‘투명한 뼈’는 저의 시, ‘화두’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어느 날 마른 오징어의 머리를 꿰고 있는 나무꼬챙이에 ‘울릉도’라는 글씨가 인쇄된 것을 보고 불교의 화두(話頭) 참선(參禪)을 떠올렸습니다. 머릿속을 다 비우고 오직 한 단어만 남긴 그가 어쩐지 수행을 하는 성자(聖者)처럼 보였습니다. 또 작은 글씨지만 몇 해 전 본 울릉도의 바다가 떠올라 그 순간 오징어가 파란 실핏줄을 꿈틀대며 살아 움직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힘이 오징어의 몸을 투명한 뼈로 곧게 세우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제 시집에 있는 시들 역시 ‘마르고 뒤틀린’ 일상 속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만을 생각하며 몸을 바로 세우는 ‘투명한 뼈’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집 제목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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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집 속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답변: ‘더덕 까는 노인’이라는 작품은 몇 년 전 지하철 환승 통로를 지나다 강하게 훅 끼쳐오는 더덕향을 맡고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본 경험을 쓴 시입니다. 그때 그 비릿하면서도 텁텁한 흙냄새 같은 것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지하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지나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엎드려서 더덕만 까고 있는 백발의 노인의 모습이 더덕 냄새와 함께 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미끄러지듯 현실의 시공간을 빠져나와 진공의 상태에 잠시 머무르다 시(詩)의 시공(時空)으로 옮겨간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의 그 감각이 지금까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이후로 지하도를 걸을 때면 그 노인과 더덕 냄새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또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타종소리마저도 저물녘 산사의 범종소리 같이 들리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이 시가 한 작은 사원처럼 지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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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를 쓰는 일 말고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나 취미 활동이 있나요?
답변: 그 옛날서부터 새로운 것을 해보고 이것저것 배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현대무용, 살사, 스윙, 탱고, 통기타, 클래식기타, 크로매틱하모니카, 재즈, 스쿠버다이빙, 웨이트트레이닝, 요가, 명상, 비폭력대화, 버츄프로젝트, 배낭여행, 캠핑, 알빙(Rving), 영어회화, 가죽공예, 요리, 연기 등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해왔습니다. 사실 어느 것 하나도 전문가는 못 되지만 또 어느 것도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마음을 두루 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르헨티나의 탱고 스쿨로 가는 꿈을 꾸고, 해 질 녘 이집트의 사막에서 모래언덕에 앉아 하모니카를 부는 상상을 하고, 제주 바닷속에서 조류에 흔들리고 있을 연산호를 떠올립니다. 이것들은 모두 제 마음의 조각이자 정신의 부조(浮彫)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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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를 쓸 때 진동영 시인님만의 패턴이나 루틴, 혹은 버릇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답변: 단어나 문장, 이미지 또는 어떤 느낌으로 시(詩)가 오면 그 순간 마음에 드는 종이-포스트잇, A4, 스케치북, 지역신문, 전단지 등에 몽당연필(집에 초등학생 두 명이 있어 여기저기 몽당연필이 굴러다닙니다.)로 일단 끼적여 봅니다. 샤프펜슬이나 볼펜을 쓸 때도 있지만 몽당연필을 쥐었을 때의 그 부족한 결핍의 느낌이 오히려 유년 시절을 따듯하게 소환하는 것 같아서 좋아합니다. 손가락을 타고 전해오는 딱딱하지만 또 부드러운 나무의 촉감이 저를 국민학교 시절로 순간이동시켜 줍니다. 지금과는 달리 미디어나 장난감이 많지 않아 오히려 연필로 더 많은 것을 쓰고, 그리고, 만들며 그 순간에 몰입해서 더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느낌이 좋아 어느 순간부터 시를 처음 옮길 때 몽당연필을 자주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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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시집을 읽게 될 독자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시를 쓰는 일과 시집을 엮어 내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시집은 시의 ‘집’이자 시로 만든 ‘집’인 것 같습니다. 또 시집은 독자님들을 초대해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집’이기에 당분간 독자님들과 이 집에서 즐거운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나 집은 또 다음 여행을 위해서 언제든 떠날 것을 준비해야 하는 곳이기에 천천히 다음 여행을 그려볼까 합니다. 독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이 맞으면 함께 떠날 수 있는 여행도 꿈꿔보겠습니다. 우리의 정신이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 집을 짓고 독자님들을 초대해 밤새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호박 넝쿨의 젠탱글(Zentangle)*
진동영
주말농장 밭 가에 울타리가 세워져 있다
울타리는 성긴 철망으로 짜여 있다
철망의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넘나들며 마디 호박 넝쿨이 애호박을 맺고 있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으로 꽃도 여기저기 부려 놓고 시든 잎은 또 얼마나 뒤로 하고 뻗어 올라갔던가
손바닥 같은 잎사귀를 넓게 펴고 울타리 위 끝까지 가본 호박 넝쿨
높다란 철망 꼭대기 거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어쩌다 든 길에서 여기까지 왔다
철망을 지나 계분 냄새가 텁텁하게 건너오고 있다
까치가 자신이 낸 소리를 쫓아 비탈진 밭을 길게 활공하고 있다
*점, 선, 도형을 반복하여 그리는 그림으로 지우개를 사용하지 않는다.
―『투명한 뼈』, 시인동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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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진동영
땡깃대*가 오징어의 머리를 벌리고 있다.
울릉도 인쇄된 글씨가 머릿속에서 선명하다.
머리와 입과 속을 다 비우고
대나무 꼬챙이가 휘어지도록
한 단어만 남긴 오징어
하얗게 분이 일어난 몸 위로
실핏줄이 파랗게 비치고 있다.
비틀어진 열 개의 다리마다
염주알을 줄줄이 꿰고 있다.
마르고 뒤틀린 몸 한가운데
투명한 뼈 하나 세우고 있다.
*오징어를 말릴 때 쓰는 나무 꼬챙이.
―『투명한 뼈』, 시인동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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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빵 이야기
진동영
풀빵 다섯 개 천 원 주문을 하면 얼굴이 긴 노인은 손가락으로 귀를 여러 번 가리키며 일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양은 주전자 주둥이에서 묽은 반죽이 빵틀 위로 떨어지고 굽은 꼬챙이로 뜬 팥소가 올라갔다. 빵틀 안에서 풀빵이 몇 번 뒤집히고 접힌 종이봉투가 벌어지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빵틀 가에 둥그렇게 가까이 줄지어 선 풀빵들 노르스름한 겉면 아래 팥소가 희미하게 검붉었다. 풀빵 봉투를 받아 들고 뒤돌아서면 빵틀이 제자리를 도는 소리가 귓가에 잠시 맴돌았다. 누렇게 색이 바랜 비닐 창 너머로 노인은 이따금 붉게 상기된 얼굴로 반죽을 치대고 수레를 휘감은 천막 포장이 바람에 부풀었다 다시 가라앉았다. 등나무근린공원 입구를 지나며 풀빵 풀빵 하고 속으로만 말하면 자꾸 헛배가 불러오는 것 같았다. 그새 눅눅해진 종이봉투를 열면 원래부터 한 덩어리였던 것처럼 풀빵들이 합죽하게 입술을 붙이고 있었다.
당현천 화단에 하얀 수레국화 한 무더기가 피어 있다.
―『투명한 뼈』, 시인동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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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 까는 노인
진동영
사당역 환승 통로
쪽진 백발의 노인이
더덕 향을 피워 올리고 있다.
우둘투둘한 머리 아래
제멋대로 웃자란 잔뿌리를 쳐내고
감자 칼로 한 겹씩 불상(佛像)을 깎고 있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절하는 자세로
손톱 밑이 다 까매지도록
켜켜이 낀 흙을 벗겨내고 있다.
멀리
지하철 들어오는 타종 소리
바닥에 펼쳐놓은 보자기 위에
더덕이 하얀 차례탑을 쌓고 있다.
―『투명한 뼈』, 시인동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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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2005년 《시인세계》로 등단한 진동영 시인이 첫 시집 『투명한 뼈』를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출간했다. 진동영의 시는 담백하고 담담하게 사물들의 지속과 연쇄를 포착하며, 특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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