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 가속도에 관한 공식
이중원
시간의 열차는
잠시 멈출 뿐이고
두 사람의 수다는
잠시 그칠 뿐이고
간밤에 타고 갈 막차는
잠시 끊길 뿐이다
느린 발이 발자취에
따라잡힐 때마다
눈앞을 떠다니는
언어의 부스러기
혼자서 해동된 이야기
다시 얼며 헐떡인다
시간의 열차는
달려갈 뿐이고
기억은 고장 나
질주할 뿐이고
생각이 타고 갈 첫차는
탈선할 뿐이다
이중원, 『꿈꾸는 기호학』, 고요아침,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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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을 잃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살아간다. 멈췄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다음 장면은 이미 도착해 있다. 생각은 준비되기 전에 출발하고, 기억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앞질러 달린다. 이중원 시인의 시 「삶: 가속도에 관한 공식」은 이러한 어긋남을 감정의 과잉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하나의 조건이자 상태로 형상화한다. 속도가 개인의 리듬을 넘어설 때 사유와 언어가 어떻게 비켜나는가를 묻는다. 여기서 가속도는 우리가 노출된 채 통과해야 하는 삶의 환경에 가깝다.
이 시에서 시간은 흐르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다만 잠시 그렇게 느껴질 ‘뿐’인 상태로 존재한다. “시간”, “기억”, “생각”, “언어”는 안정된 궤도에 놓이지 않은 채 언제든 이탈할 수 있는 운동 상태로 제시된다. 그래서 독자는 방향을 가늠하기보다 이미 밀려가고 있다는 감각에 먼저 닿는다.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열차”의 이미지는 목적지를 완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도착을 전제한 이동이 아닌 탑승과 이탈, 지연과 “탈선”이 교차하는 장면들의 연쇄 위에 놓여있다. “열차”는 이미 가속된 세계 자체의 은유로 기능한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는가가 아니라 멈추지 못한 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때 “기억”은 축적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장” 난 채 “질주”하며 현재를 앞질러 도착한다. 발보다 앞선 발자취는 과거가 현재를 가로막으며 선행한다는 역설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언어” 역시 균형에서 비껴난다. 문장은 완성되기 전에 “부스러”지고, 말들은 의미로 수렴하지 못한 채 흩어진다. “혼자서 해동된 이야기”가 다시 얼어붙는 장면은 관계의 온도를 얻지 못한 서사가 스스로를 봉인하는 순간처럼 읽힌다.
그럼에도 시는 불안정성을 비극적으로 확대하지 않는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고 진술은 담담하다. 시작의 순간도 첫차의 시간도 분명하지 않다. “생각이 타고 갈 첫차”가 빗겨나는 장면은 사유가 움직임과 동시에 방향을 상실하는 상태를 드러낸다. 시적 주체는 왜 삶이 이토록 피곤한지 묻지 않는다. 대신 왜 숨이 가쁜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가 가리키는 곳이 절망은 아니다. 우리는 늘 조금 늦고 이미 지나간 뒤에 서 있으며,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에도 또 다른 속도에 휩쓸린다. 시를 덮은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달리고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가 어떤 상태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분명해진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유심상을 수상했다.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37 _ 이중원의 「삶: 가속도에 관한 공식」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37 _ 이중원의 「삶: 가속도에 관한 공식」 - 미디어 시in
삶: 가속도에 관한 공식 이중원 시간의 열차는잠시 멈출 뿐이고두 사람의 수다는잠시 그칠 뿐이고간밤에 타고 갈 막차는잠시 끊길 뿐이다 느린 발이 발자취에따라잡힐 때마다눈앞을 떠다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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