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분홍 기자
충남 금산에서 출생한 최현숙 시인은 2026년 세종시문화관광재단 발간지원금을 수혜 받았으며, 대전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첫 시집 『첫사랑 관찰자 시점』을 상상인 시선으로 출간했다. 최현숙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오래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시로 펼쳐 보인다. 사람의 표정과 사물의 움직임, 식물의 생장과 동물의 눈빛을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찬찬히 살피며, 대상을 쉽게 판단하거나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객관적인 관찰의 시선 아래에는 살아 있는 존재들을 향한 따뜻한 연민이 흐른다.
「안스리움」에서는 꽃에서 삶의 번뇌를 읽고, 「짧은 휴가」와 「점묘화」에서는 병과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생의 무게와 가족의 상처를 드러낸다. 「소」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우시장으로 끌려가는 암소의 슬픔을, 「냉이꽃」에서는 보잘것없는 자리에서도 봄을 피워 내는 생명의 낙관을 발견한다. 「분갈이」는 식물의 뿌리를 옮기는 일을 사람이 사람의 자리를 바꿀 때 겪는 아픔과 겹쳐 놓는다. 그리고 「주말극장」과 「미술품 관람하기」에서도 전쟁의 참상과 세상을 향해 질문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생명의 위태로움과 눈부심을 함께 바라본다.
이처럼 시집 속 존재들은 병들고 나이 들며, 버려지고 떠나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생명의 존엄을 발견한다. 객관적인 관찰은 타자의 아픔을 헤아리는 따뜻한 연민으로 이어지고, 그 연민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나뭇잎의 빛깔이 한층 깊어지는 가을, 『첫사랑 관찰자 시점』 속 시들을 음미해 보면 어떨까.
〈미디어 시in〉에서는 최현숙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를 통해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와 시에 담긴 마음을 들여다보고, 『첫사랑 관찰자 시점』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과 시적 의미를 함께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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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녕하세요? 『첫사랑 관찰자 시점』이라는 제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시집입니다. 첫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시집 발간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답변: 오랫동안 혼자 품고 있던 문장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게 되어 기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완성하는 일이라기보다,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순간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써 온 시들을 한 권으로 묶고 나니 제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왔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첫 시집은 제게 하나의 도착점이면서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이제는 제 손을 떠난 시들이 독자들의 삶 속에서 저와는 다른 기억과 감정으로 저의 첫 시집을 관찰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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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집 속의 시 중에서 애정이 가는 시나 혹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시가 있을까요?
답변: 한 편만 고르기는 어렵지만, 표제작인 「첫사랑 관찰자 시점」에 애정을 가지려 합니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기억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때의 나를 낯선 사람처럼 바라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지금의 시선으로 새롭게 보이는 것이지요. 저는 첫사랑을 아름답게 회상하기보다는, 그 시절의 감정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아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사라진 것 같아도 어딘가에 씨앗처럼 남아 있다가 뜻밖의 순간에 눈을 뜨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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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여성민 시인의 해설 중 “내 언어가 형제의 언어를 버리고 이복형의 언어로 끌려”가는 표현이 굉장히 낯설게 다가오는데요. 이런 ‘낯설게 하기’로 시를 창작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처음부터 낯설게 써야겠다고 의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곧바로 이름 붙이기보다, 그것과 조금 떨어져 있는 사물이나 장면을 가져와 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복형」에서 저는 과거 짝사랑했던 사람을 데려와 탁구라는 익숙한 경기의 언어를 빌려 관계의 긴장과 갈등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사물이나 상황을 그대로 설명하기보다 다른 세계의 언어와 만나게 하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가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 낯설게 쓰기는 기교라기보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는 태도와 그 낯선 표현을 통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감정이나 진실이 드러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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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집 해설에서 같은 맥락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성민 시인은 “「이복형」의 무대 장치인 탁구 코트는 「주말 극장」의 전쟁터를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양 진영을 치열하게 싸우고 경기/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라고 했는데요. 전혀 다른 두 사물에서 인과성이 느껴지는 발상을 어떻게 발현시켰는지 말씀해 주세요.
답변: 저는 서로 다른 장면 안에서도 비슷한 구조나 감정이 반복되는 순간에 관심이 많습니다. 탁구 경기와 전쟁은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세계이지만, 그 안에는 대립하는 두 편이 있고, 공격과 방어가 있으며, 쉽게 끝나지 않는 긴장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두 작품을 연결하려 했다기보다, 각각의 시를 쓰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장면들이 제 안에서 만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물과 장면 사이에 숨어 있는 연결고리를 여성민 시인께서 발견한 것이 경이롭습니다. 어쩌면 시를 쓴다는 것은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뜻밖의 친족 관계를 찾아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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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인님이 시 창작을 할 때 상상력이 잘 떠오르는 시간(아침과 저녁 중)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저는 아침의 언어를 좋아합니다. 아침은 모든 것이 정제된 느낌입니다. 일부러 시적인 장면을 만들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조금 이상하거나 마음에 걸리는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장 시가 되지 않더라도 어떤 장면이나 말이 마음에 남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 보기도 합니다. 여러 번 읽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를 발견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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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집 속의 문장들 중에서 ‘날씨를 뜯어먹었다’(「결빙구역」), ‘호주머니 속/가만히 눈뜬 씨앗 한 톨’(「첫사랑 관찰자 시점」), ‘맘을 고르고 맘을 퍼내며 사람 속에 들어 산 적이 있다’(「분갈이」) 등의 감각적이면서 깊이가 느껴지는 미학적인 표현들이 좋았는데요. 이런 표현들이 갑자기 찾아온 문장인지 아니면 오래 고심해서 발견한 문장들인지 말씀해 주세요.
답변: 두 가지 경우가 모두 있습니다. 어떤 문장은 순간적으로 찾아오지만, 어떤 문장은 오래 붙들고 있어도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첫사랑 관찰자 시점」의 ‘호주머니 속/가만히 눈 뜬 씨앗 한 톨’이라는 표현은 지나간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억이나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씨앗이라는 사물에 맡겼을 때, 제가 설명하려던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찾아낸 문장입니다. 그래서 표현이 떠오른 뒤에도 그것이 정말 필요한 문장인지, 감정을 지나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니다.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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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시인님에게 시란 무엇이며 시인님의 삶에서 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저에게 시는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붙들어 두는 방법이고, 때로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시를 쓰면서 세상을 시를 쓰기 이전과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사물에 마음이 머물고,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시는 저를 알아가며, 달래 가며, 소진해 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데 이렇게 인터뷰를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집 속 시 맛보기〉_ 시집 속 대표시 4편
주말극장
최현숙
디어 마이 프렌즈
불빛이 사라진 도시의 노을은 아주 붉어 달은 주석註釋처럼 떠오르고
암탉이 무정란을 낳듯 탄피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때아닌 유성우도 쏟아져 예후가 좋지 않은 병도 돌았습니다
비행운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긴 문장처럼 아름다운 다뉴브강이 끝나가는 이곳
폭탄이 터진 자리마다 해바라기가 노랗게 피어납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
여긴 아직 전쟁 중입니다 곳곳이 실제 상황입니다 그래도 계절은 피고 어린아이들이 뛰고 고양이는 가끔 기지개를 켭니다
기억하시나요?
비는 한 지붕에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빵 바구니는 비어가고 되돌아갈 수 없는 전쟁은 흥행하지 못한 주말극장처럼 이야기가 지루하게 흘러갑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
지금 다시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꼭 만나서 하겠습니다
이만 총총
―『첫사랑 관찰자 시점』, 상상인,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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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스리움
최현숙
안스리움이 붉게 피어났다
저 초록 속에서 어떻게 붉은 꽃이 피어날까
어디에 배어 있다 나오는 걸까
내 안에도
넝쿨식물이 뭉클뭉클 자란 적 있다
그때는 누구를 만나도 광합성이 활발해
저녁이면 넝쿨이 온몸을 휘감았고
숨만 쉬어도 엽록소가 넘쳐났는데
정작 꽃을 피워 본 적은 없었다
꼿꼿하게 치켜든 안테나
무엇인가 듣고 싶은 말이 있는지
한 달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저 완강한 붉음
꽃잎도 이파리도 하트 모양이라 사랑스러운데
꽃말이 번뇌라니
내 안에도 꽃 피운 적 없던 넝쿨식물에서
번뇌가 자라고 있었음을 알았다
초록이 붉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을까
눈물에 부딪히던 바람을, 쏟아냈던 망상을, 내버릴 수 없는 생에 대한 긁힘을
가만히 떼어낸 후
안스리움
안스러움
그 붉음의 숭고함
―『첫사랑 관찰자 시점』, 상상인,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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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관찰자 시점
최현숙
새순이 자라서 무성한 잎이 되고
가지에 꽃이 피어날 때까지
햇볕은 공평하지 않았고
비는 규칙적이지 못했으며
바람은 균형감을 잃었다
몇 번을 꺾이고 꽃잎은 흩어졌지만
단단해진 꽃술만이 씨앗을 품었다
오랫동안 어둠 속 웅크린 채로
땅까지 휘어지면서도
촉을 틔우지 못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내리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젖어 드는 꽃잎처럼
스물한 살의 여름 냄새가
저항 없이 스며들었다
그 여름
물속에 두고 온 신발 한 짝
내버려 두어도 나무는 자랐고
어디서든 햇빛과 바람을 기억하며
호주머니 속
가만히 눈 뜬 씨앗 한 톨
―『첫사랑 관찰자 시점』, 상상인,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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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홍 기자 충남 금산에서 출생한 최현숙 시인은 2026년 세종시문화관광재단 발간지원금을 수혜 받았으며, 대전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첫 시집 『첫사랑 관찰자 시점』을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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