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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현상, 타자들이 가진 비의(秘意)를 명쾌하게 형상화한 시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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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6. 10. 1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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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노을을 넘는 새떼의 자전거』 더푸른시인선으로 발간

 

 

하린 기자

 

 

  2007년 《우리詩》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후 2013년 첫 시집 『맷집』을 발간한 바 있는 박승류 시인이 9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노을을 넘는 새떼의 자전거』를 발간하며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공백기가 큰 만큼 박승류 시인의 이번 시집은 진하고 묵직한 맛을 내포한다. 모티브와 시상의 발효과정을 거치고 문장과 시어 하나하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언어의 문양들을 수놓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첫 시집 『맷집』에서 박승류는 인체를 통해 세상을 직관하고 비판하면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확보한 바가 있다. “시검객이 되어 날카로운 시어를 낚아 거미처럼 시의 집을” 창작하여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보여주는 시”(홍해리 시인)를 선보였으며, “인간의 육신이 지닌 각 기관들 하나하나를 조명해 가면서 그 역할과 특징을 냉소적으로 혹은 역설적으로 설파해” 가는“신체 편력기遍歷記”의 시편들을 과감하게 펼쳤다. “신체의 부분들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접근해 가려는 야심찬 실험을”(임보 시인) 첫 시집을 통해 시도한 것이었다.

 

  『노을을 넘는 새떼의 자전거』에서 박승류 시인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서민들의 칠정(七情) 및 애환이 서린 존재들을 찾아, 상징 · 비유 · 함축 · 의인법 등 시적 요소를 적용하여 시의 꼴을 그려나간다. 단순히 존재들의 존재 이유는 이럴 것이다. 차원을 넘어 존재를 구성하는 세목들 하나하나가 가진 생생한 몸짓과 존재론적인 의미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형상화한다.

 

  사물이나 현상에 관해 탐구한 시도 상당수 차지하는데, 뱀, 꽃샘추위, 방, 화분, 두부, 햇살, 오이, 책, 거실, 부엌, 도마, 젓가락, 책장, 실내화, 환절기, 담벼락, 바람, 달력, 모니터, 시계, 시소, 지퍼, 가로등, 노을, 드라이플라워 등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포착하여 관습화된 인식을 배제하고 그 사물이나 현상만이 가지고 있는 비의(秘意)를 명쾌하게 언술한다. 언술이 매번 시원시원하여 비의가 거침없이 독자들의 의식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인의 감각을 독자들이 함께 맛보는 심미안적 공감대가 형성되게 한 것이다.

 

  박승류의 『노을을 넘는 새떼의 자전거』는 관습과 “우상으로 생기는 오류를 극복하고자 비인간의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보면서, 대상이나 현상이 가진 표피적 의미에 갇히지 않게 시인만의 시각으로 내밀함을 보여주고 있는, 의미 있는 시집이다. 독자들이 이 시집을 읽게 되면 친숙한 사물과 현상이 자신만의 몸짓과 의미를 내포한 채 일상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물의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이”(고광식 평론가) 오류였음을 새삼 인지하게 될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두부

 

박승류

 

뼈가 살인 듯 살이 뼈인 듯

이런 의도를

어디선가 본 적 있어

​

전생보다 더 물렁물렁해진

전략은 진화하고

진화는 목숨 연명을 선물하거든

 

​​흰 속살이 단 한 번에

칼날의 가슴을 무너뜨리는

주방에서

백허그 당한 듯

​

일격이 끝난 후

칼날은 그의 다른 쪽을 고민했겠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

끝나기 전에 끝을 모르듯

끝난 후에도

끝을 모른 채, 눈감고

​

여운을 느꼈을 거야

사라지는 아쉬움을 놓치며

실눈도

뜨지 않은 채

​

정신을 수습한 뒤에야

다시 맛보고 싶어

지그시 바라보겠지, 아무렴

―『노을을 넘는 새떼의 자전거』, 더푸른, 2026.

 

-

 

도마

 

박승류

 

잡식성이다 초식과 육식뿐 아니라

양념 대신 이념으로 버무린 괴상한 메뉴까지

 

혀를 칼로 쓰는 단백질 흉기가 더 잔인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듯

칼춤을 추듯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감자와 양파와 무가 위태롭게 다녀가면서

산과 들 이야기 조금 남긴다

 

대화는 조용하게 식사는 품위 있게

남자와 여자와 노인과 아이가 불려 나오고

기대하던 고해성사는

끝내 하지 않는 미덕을 보인다

 

날카로운 칼날이 또 사정없이 내리친다

동강 났던 실내가 침묵으로 위치를 망설인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아프다는 주장들이

엄살만은 아니라 수긍하며

 

귀를 기울인다

바람 소리 들린다 파도 소리도 들린다

정적이 들려온다 귀를 뗀다

보이지 않는 상처의 쓰라린 무게를 증명하듯

온몸이 욱신거린다

―『노을을 넘는 새떼의 자전거』, 더푸른, 2026.

 

-

 

환절기

 

박승류

 

때가 되면 다가오는 것들

​

기침과 코 막힘과 목캔디 같은

장갑 목도리 털모자 포장마차 같은

사랑과 다툼과 이별 같은

​

격렬함 뒤에 드러나는 후유증 같은

후유증에 섞인 허전함 같은

허전함 뒤를 따르는 쓸쓸함 같은

​

잊은 듯 놓치고 오면 안 되는지

물어볼까, 꽃 멀미하듯 비틀걸음으로

앞선 팔자걸음 뒤따르며

​

쓸쓸함을 밀어내는 고독 같은

사무치는 한기 같은

난방을 겹겹이 뒤집어쓴 이불 같은

​

기침에서 튀어나오는 파편 같은

파편을 닦아낼 휴지 같은

휴지와 함께 버려지는 추억 같은

​

발열까지 다 챙겨 오는 꼼꼼함이

이제 더는

생소하지 않다고 말해 볼까

​

때가 되면 가고 없는 것들

행방을 알고 싶지 않은 소품 같은

―『노을을 넘는 새떼의 자전거』, 더푸른,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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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2007년 《우리詩》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후 2013년 첫 시집 『맷집』을 발간한 바 있는 박승류 시인이 9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노을을 넘는 새떼의 자전거』를 발간하며 독자들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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