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접속사
박성민
그래도,
당신 곁을 맴돌았던 것 같은데
그러므로,
단 한 번 내 사랑은 다녀갔다
하지만,
고인 기억이
떨어질 듯 맺히는
― 『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 시인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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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접속사는 시에서 일일이 늘어놓지 못할 말들을 압축해주는 역할을 한다. 접속사는 완결된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당신이라는 접속사」처럼 완결되지 못한 문장을 잇는 경우 베일처럼 비밀스럽게 감춰있는 앞의 서사를 집중시키고 확장해 주기에 그러하다. 이 시의 경우 화자는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를 마음의 어떤 지점으로 유도하여 접속하고 있다. “그래도” 앞 내용을 받아들일 만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당신 곁을 맴돌았던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나의 “단 한 번” 사랑이었다. 오래전의 이야기라 잊은 듯 하지만 “고인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부끄러움 또는 어떤 대상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가 굳이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시조의 짧은 형식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마저 짧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시조는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비유와 상징 또는 초현실주의적 수법까지 동원하여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다. 기법의 다양성은 3장 구성의 단순한 형태에 새로운 의미망을 구성해 줄 뿐만 아니라 참신한 시대의식을 경험하게 해준다. 시조가 율격으로 음절의 변화를 조정하는 독특한 질서를 갖고 있다고는 하나 주어진 형식 안에서 자유롭게 변화를 시도할 때 재미있는 장르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접속사 안에 감추어진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이 시를 주목해 본다.(표문순 시인)
표문순
2014년《시조시학》신인상 등단,시집『공복의 구성』,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열린시학상,나혜석문학상 등 수상,문학박사 졸업(한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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