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
임성규
한 개 남은
어금니를
기억의 늪에 던진다.
움푹 팬 잇몸을
혀끝으로 만지고
흰 솜을 오물거리며
침을 삼킨다.
공터 같은
내 사랑
향기마저 사라진 뒤
울어줄 누구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안에
희고 단단한 수정이 돋는다.
― 임성규, 『나무를 쓰다』, 고요아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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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대체로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사고를 은유적으로 불러오면서 일관되게 몸의 감각을 깨운다. 몸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반응하는 실질적인 우리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에서 시인이 확인하고자 하는 사랑, 이별, 그리움 따위는 육체화된 기억을 가장 분명하게 증명하는 실체인 것이다. 예를 들어 임성규 시인의 「발치」에서 드러나는 시적 주체의 모습은 몸의 일부였던 어금니를 뽑아낸 후 느끼는 어떤 징후에 집중한다. 되돌릴 수 없는 몸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이별의 슬픔을 그리다가 새롭게 태어나는 몸의 신비로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치아와 관련된 꿈 해몽은 많은 편이다. 치아와 관련된 유사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따라 길몽이 되기도 하고 흉몽이 되기도 하였다. 꿈속에 등장하는 어금니의 상징은 대체로 가족을 의미하는데, 이는 가족의 건강 문제와 끊임없이 연결되었다. 실제로 어금니는 송곳니의 안쪽에 붙어있는 큰 이로 음식을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한다. 어금니가 없으면 고기류와 채소류를 씹기 어려워져서 전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어금니는 한 인간의 생존과 성장의 해법인 것이다.
“한 개 남은/ 어금니를/ 기억의 늪에” 던져야 하는 시적 주체의 허탈함과 상실감은 “움푹 팬 잇몸”과 “공터”로 이어지면서 ‘너’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는 과정으로 모아진다. 여기서 ‘너’라는 대상은 존립을 위해 버텨온 ‘나’의 슬픈 안간힘으로 읽힌다. “내 사랑/ 향기마저” 내려놓게 하는 몸의 위태로움이 몸의 허무를 가져온다. 그러나 소멸은 또 하나의 생성이라고, “희고 단단한 수정”을 ‘나’와 ‘너’의 지독한 사랑의 몸으로 쓰고 싶은 여기, 한 시인이 있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이 있음.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 선정, 2019년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수상.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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