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돌고래
강경화
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새끼야
우리는 깊고 깊은 바다에서 태어났지만 물 위에서 숨을 쉬어야 해 심장 터질 듯 바람을 담을 수도 있고 가슴 뜨겁게 꿈꿀 일도 많단다 윤슬을 매일매일 만날 수는 없지만 운이 좋으면 노을이 가득한 하늘을 볼 수도 있어. 그런 날엔 보고픈 먼 고래에게 이 빛을 파도에 묶어 전해 주고 싶지, 맑은 밤에는 떨어지는 별을 받아 내 꼬리지느러미에 달아주마,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살 비비며 느껴야 하는 고래. 네가 주는 따뜻함은 하늘이 내게 준 선물, 그러니 이 에미가 닿을 수 없는 심연으로 들어가선 안 돼, 혹 멀어지면 네 온기를 더듬더듬 쫓아가마, 펼쳐갈 네 꿈처럼 넓은 바다에서 우리를 잇는 끈은 끊어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 제발 이 에미가 받쳐줄 테니 젖 한 모금 빨아보렴
내 심장 네게 주어도 아깝지 않을 내 새끼야
* 죽은 듯 기운이 빠진 새끼고래를 어미 고래가 수면 위로 들어 올리는 모습이 어느 사진작가의 카메라에 찍혀 신문에 실렸다.
― 강경화, 『나무의 걸음』, 아꿈,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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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잡는 한 가지 방법은 아기고래를 먼저 잡는 것이다. 어미고래는 새끼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어미고래도 잡히게 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대사로, 딸을 지키기 위해 도주한 한 탈북인 여성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고래를 잡는 방법을 주인공 우영우가 친구에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고래는 유독 모성애가 강한데 고래잡이 어선의 어부들은 이러한 고래의 속성을 파악하여 아기고래를 먼저 공격한다. 어미고래는 자기가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자신의 새끼를 버리지 않는다. 실제 하와이 앞바다에는 흑등고래 어미가 새끼를 가슴지느러미에 끼우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 계절 먹이를 먹고 비축한 에너지에만 의존하여 오로지 새끼를 키우는데 집중한다. 게다가 범고래가 자기 무리의 고래 새끼들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그 앞을 막고 나서는 남방돌고래의 모습도 종종 관찰된다고 한다.
강경화 시인의 작품에는 지난해 제주 바다에서 만난 남방큰돌고래의 애절한 모성애가 담겨 있다. 2022년 여름, 제주 바다에서 어미 남방큰돌고래가 죽은 듯 기운이 빠진 새끼 돌고래를 수면 위로 들어 올리며 유영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고래는 새끼가 죽으면 완전히 부패해서 해체될 때까지 머리에 이고 다니고, 새끼가 태어나면 본능적으로 수면 위로 들어 올려 호흡할 수 있도록 한다. 고래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면 죽는다. 고래는 표유류哺乳類여서 아가미가 없고 폐가 있어 일정한 간격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 한다. 수면 위에는 윤슬, 노을이 가득한 하늘, 별 등이 있다며 아기고래가 어서 빨리 눈을 떠, 이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볼 수 있기를 어미고래가 간절히 바라는 듯하다. “제발 이 에미가 받쳐줄 테니 젖 한 모금 빨아보렴”, 어미고래는 죽은 아기고래를 들어 올리며 유영한다.
자식 잃은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다. 엄마와 아이는 한 몸이다. 자식의 무덤이 곧 엄마의 무덤이다. 엄마는 자식을 직접 품고 낳은 존재로, 자식의 영욕榮辱과 함께 간다. 그리고 자식이 먼저 죽으면 엄마도 실질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다. 10.29 이태원 참에서도, 4.16 세월호참사에서도 자식 잃은 엄마들은 자식과 함께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의 한恨을 풀기 위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내 심장 네게 주어도 아깝지 않을 내 새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가족애와 생명을 경시하는 현실을 돌아보며 먼바다의 고래들의 따뜻하고 애잔한 모습을 그려본다. 이기적인 세상에서도 타인을 위해 베푸는 삶이 얼마나 인간적이며, 자신의 희생으로 누군가에게 희망과 위로를 준 적은 없었는지 자문해 보는 건 어떨까? (이송희 시인)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 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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