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간절곶
김삼환
정이월 해파랑길 눈물 많은 바람 길에
내 연서의 첫 문장은 덩그런 이름 하나
간절곶 파도 소리만 무심하게 동봉한다
어스름에 기대어 주머니를 뒤집듯
입안에서 맴도는 모난 말을 뱉어서
바람에 실어 보내는 지난 시간 아득하다
뼈만 남은 기억들이 사라지는 간절곶
끝까지 내게 남을 그리움은 어디 둘지
여기서 거기로 가는 저 노을에 묻는다
― 김삼환, 『그대의 낯선 언어를 물고 오는 비둘기 떼』, 시산맥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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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한 마디로 규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기호다. 그립다는 말은 존재하는 수많은 기억을 위해, 기억을 안고 사는 인간을 위해, 우리에게 남은 지상의 사랑이 각기 다른 배역을 맡아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늘 함께 있다. 문득 문학의 힘이 무엇으로 발현되는지 되돌아보고 싶다. 같은 시대와 같은 집단의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품고 동행하는 오랜 감정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해방을 꿈꾼다. 이때 한 편의 글에 늘어놓은 수백수천 개의 낱말들은 서정의 세계 속에서 고스란히 발현된다. 시인의 책무는 어떤 테두리 안의 그것이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거나 복잡한 미로를 만들지라도 부단히 그 너머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때로 눈물겹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나면 간절하게 스미기도 한다.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곳이 있다. 동해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해맞이 명소로도 유명한 울산의 간절곶. 간절곶이라는 이름은 멀리서 바라보면 뾰족하고 긴 장대를 가리키는 간짓대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 초에는 이곳을 이길곶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데, 여기서 ‘이’는 넓다, ‘길’은 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간절곶은 등대를 중심으로 넓은 땅과 긴 해안가를 두루 품고 있다. 이 자유의 바다 앞에서 담담한 어조로 고독한 내면을 성찰하는 김삼환 시인. 그가 바라보는 간절곶에서 가만 파도 소리를 들어 본다.
간절곶에는 묵직한 그리움이 있다. 시적 주체는 간절곶 앞바다에서 “연서의 첫 문장”에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 그러나 “파도 소리만 무심하게 동봉”되는 비통한 심정과 “뼈만 남은 기억”은 계절의 의미까지 모조리 삼켜버린다. 저물어가는 노을 속에 “여기서 저기로 가는” 마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 사람을 세운다. 그는 “바람에 실어 보내는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자신을 흔드는 기대와 미래와 미지의 무엇을 읽어내고 있다. 어떤 사랑이 오고 또 가듯이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지난 시간은 아득하기만 하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이 있음.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 선정, 2019년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수상.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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