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중독
박진형
처음과 끝을 동시에 지닌 연금술을 시작합니다.
윤곽이 권력일 때 보형물은 무기입니다. 실루엣이 돋보이게 몸매를 조각합니다. 조형예술의 발전은 놀라운 신비입니다. 피부의 두께 너머 아찔함이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감각적으로 피합니다. 친구 따라 팔자 고치러 강남으로 갑니다. 결과가 좋다면 문제없습니다. 나는 예전의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습니다.* 낡은 몸을 버리고 새 몸을 얻습니다. 난감한 날들이 사라지고 거듭난 느낌입니다. 나온 배도 평평하게 젖가슴도 빵빵하게, 나올 것은 더 나오고 들어갈 곳은 더 들어가게 반듯한 겉모습을 신앙으로 삼습니다. 몸뚱어리 바로 펴고 굴곡을 심습니다. 흑역사 지우는 것은 미래를 그리는 일, 눈물 나고 뼈가 시려도 참고 참아 딴사람 됩니다. 변모하려면 더한 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변신은 궁극적으로 무죄 추정, 정형을 넘어 성형으로 신세계를 맛봅니다. 내 얼굴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입으로 꼬리를 물면 나는 사라집니다.
마침내 현자의 돌로 과거를 삼킵니다.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J'ai bien le droit de me détruire.”—프랑 수아즈 사강 Françoise Sagan.
- 박진형, 『어디까지 희망입니까』, 책만드는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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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처음과 끝을 동시에 지닌 연금술을 시작”하기로 한다. “실루엣이 돋보이게 몸매를 조각”하는데, 이때 기억해야 할 점은 “보이지 않는 곳은 감각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조형예술의 발전은 놀라운 신비”라는 걸 아는 화자는 “친구 따라 팔자 고치러 강남으로”간다. 그들은 “예전의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나름의 합리화로 마음의 준비를 마친다. 이제 곧 낡은 몸을 버리고 새 몸을 얻게 될 것이다. 이들은 팔자를 고치는 방법으로 몸을 뜯어고친다. 현대 의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굴곡을 만들고 몸을 새롭게 디자인한다. 자신의 가치와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다. 돋보이는 몸매 자체가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된다. 권력을 쥔 남성들과 기득권 사회가 이러한 돋보이는 몸매를 요구하고 선호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아름다움’ 따위는 관심 없고, 오로지 외모가 아름다워야 한다. 오직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만이 능력이고 권력이다. 외모지상주의Lookism, 즉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균형 잡힌 몸매로 밟고 오른 계단은 화려하다. 통상 관상학에서는 성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성형은 인위적이라서 그 사람의 운명을 억지로 새롭게 틀 지우게 하므로 균형이 깨진다고 본다. 원래 성형은 교통사고나 큰 병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신체를 바르게 잡아주기 위해서 시작되었는데, 점점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을 만드는, 외모지상주의로 변질되면서 유행을 타고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새롭게 형태를 만들어서 운명을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성형괴물’, ‘인조인간’이란 말도 나온다.
이미 오래전부터 성형은 흑역사를 지우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는 방법이나 수단으로 활용되어왔다. 그래서 “눈물 나고 뼈가 시려도 참고 참아 딴사람”이 되려는 사람들로 강남은 북적인다. “변모하려면 더한 일도 견딜 수 있”다는 건 오로지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일념 때문이다. 그러나 외모를 아름답게 디자인한 만큼 내면도 건강하게 디자인한다면 더 멋지게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외면과 내면의 조화로운 삶이 아름답게 일상을 가꾸고 결국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송희 시인)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 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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