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鹽花)
우은숙
곰소항 염전에 햇살이 곤두박질이다
한곳을 향하여 모질게 내리꽂는다
그 빛에 비틀대는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
숨죽이고 있던 내가 부르튼 속살을
허옇게 내보이기 시작한 건 이때였다
납작한 몸을 절이고 마음까지 절인 그때
바람에 물기 말려 서걱해진 서류 위에
짜디짠 염화로 피기 위한 몸부림
올해도 근로계약서에 날인할 수 있을까
모든 것 내보여야 비로소 피는 꽃
온전히 내려놓아야 비로소 피는 꽃
가쁘게 햇살 토해내는 곰소항의 그 소금꽃
- 우은숙, 『그래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시인동네, 2020.
현대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독식의 논리가 피할 수 없는 생존 원리로 이어지면서 노동자들은 이른바 위험한 계급으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패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승자들의 독점체제를 용납하는 것이니 사회계층이 지나친 양극화를 몰고 왔다.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적 양극화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다. 불평등, 차별, 억압, 빈부격차 등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인 평등을 저해하고 특권층 위주의 사회구조를 가속화했다.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정규직 ‧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주로 저학력 노동자, 외국인, 여성, 노인 등과 같은 취약계층이다. 이들은 절대 권력의 절대적 위계로 인하여 상대적 빈곤을 느끼면서 현실의 불안과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우은숙 시인은 시 염화(鹽花)에서 비정규직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표정을 마주한다. “곰소항 염전”에서 “짜디짠 염화로 피기 위”해 몸부림쳐 온 그 사람, 땀 흘린 노동자의 몸에 소금꽃이 핀다. 아침을 일으켜 “납작한 몸을 절이고 마음까지 절”이는 불안한 신분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바람에 물기 말려 서걱해진 서류” 위의 미래는 “올해도 근로계약서에 날인할 수 있을까”와 같은 걱정의 그늘로 얼룩진다.
노동의 과로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 그들은 생존을 위한 생존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보여야” 하고, “온전히 내려놓아야” 비로소 소금꽃을 피울 수 있다. 시인은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 일터로 향하는 수많은 당신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고달프지만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당신의 이름은 꽃이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에 선정되었다.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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