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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가 문학동네 시인선으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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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2. 1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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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하지만 완전한 부재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증명하는 시

 

 

강재남 기자

 

 

등단 35주년을 맞은 장옥관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가 문학동네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1987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그동안에 시집 황금 연못』 『바퀴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와 동시집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를 출간하였으며 일연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전 시집이 인식의 상투성을 깨부수고 대상의 본질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종횡무진한 역동성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시집은 남달리 능숙한 미문이 섬세하고 화사하며 발상의 전환과 사물의 이면을 더듬는 감각의 촉수(노작문학상 심사평)”가 돋보인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죽음의 이미지이다. 시집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은데, 그것은 마치 숱한 죽음과 상실의 경험이 새하얀 뼈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하지만 시인은 그 비애를 동터오는 새벽의 연무로 전환해낸다. 이것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시간의 위력을 절감하면서도 생을 끝끝내 탐구해내려는 의지의 발산이며, 새롭게 터지는 미지의 목소리를 계시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또한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에는 삶의 가운데서 미끄러지거나 심연으로 굴러떨어지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유”(밤에도 새들은)로 침몰하고, “예감도 예고도 없이 우리 자빠질 때 짚고 일어날 바닥도 없이 푹푹 빠져들기만 하고”(미끄러지다) 있다는 감각은 그 연유를 모르면서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몰락을 타개할 상상력뿐만 아니라 의지마저도 부재한 암담한 상황 속에서 언어를 대하는 시인의 태도는 돌올하다. 보이는 정경에 대해 물에 갇힌 눈이라고” “호수를 그득 채운 눈동자라고도 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하는 시인은 세계를 낭만화하는 시선을 벗고 아픈 몸”(호수를 한 바퀴)을 직시하고자 한다. 그간 자신이 한 번도 피나도록 긁어본 적 없었다는 걸 자각하고 손 없는 손으로” “내일의 얼굴”(가려움)을 긁어보겠다는 불가능으로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소유정 문학평론가는 우리 시대에 만연한 고독사 문제를 사례로 들어 논했으나 죽음이 곧 존재의 소멸은 아니라는 생각은 이 시집 전체에 유효하다. 부재로서 현존하는 이들에 대한 사유는 여러 시편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과 지인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것을 해설에서 말한다. 가령 유무(有無)에서 작은아버지는 서너 해전 돌아가셨으나 부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딱히 부재라고도 할 수 없는 까닭은 그 낡은 아파트를 찾아가면 당장이라도 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육신이 사라졌다는 것일 텐데, 그럼에도 화자는 허나 몸이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사촌이 자기 아버지를 고이 빻아 제 방에 모시고 있으니 말이다.” 없는 사람이웃의 비강공중에 새겨져 불멸이된 것처럼, 유무(有無)의 작은아버지는 유골로서 사촌의 방 안에 존재하고 있으니 완전히 부재한다고 말하기란 어렵다. 이렇듯 어떤 물질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지만, 꼭 물질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에게 분명한 기억으로 현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번 시집은 증언한다.

 

누군가가 떠난 자리에는 미련을 품은 이가 남고,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여전히 자신의 형체를 갖추지 못한 채 있다. 그러나 남은 이가 떠난 사람을 떠올리며 오늘을 영위하는 한 뒤이어질 미래는 더 이상 허전하고 황량한 풍경이 아니라 기억들로 풍성해질 수 있다. 이런 쓸쓸하고 아득한 역설을 만나고 싶다면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첫 페이지를 펼쳐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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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입술에 말라붙은 말

 

 

장옥관

 

 

자다 일어나 입술 핥으니 말라붙은 말들, 차마 붙잡을 수 없던 말들, 마른 지푸라기 꿈자리여서 네가 와 앉았다 간 걸까 뭐라 뭐라 쏟아낸 말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다만 풀어헤친 잠옷의 단추 물에 빠진 네가 움켜쥔 열 손가락 하나하나 끊어내고 나는 도망쳤지 네가 내뱉은 말들, 허우적거리며 소용돌이쳐 가라앉는 네 말들, 소금처럼, 물에 녹는 소금처럼 아아, 그러나 햇빛 들면 다 사라질 말들, 막막한 시공간을 헤매는 중음신의 말들, 입술에 허옇게 말라붙은 말들, 그예 말들은 살아오지 못하고 그 격렬했던 꿈의 말들, 되돌리지 못할 꿈자리가 죽은 꽃나무 같아서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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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다

 

 

장옥관

 

 

가만히 있는데 미끄러질 리 있나 양지바른 땅에 핀 돌나물이, 봄의 가지에 돋는 초록 댕기가, 거듭되는 악몽이 그저 미끄러질 리 있나 네 속으로 내가 미끄러져 들어갈 때 검은 바닷물 속으로 배가 미끄러질 때 예감도 예고도 없이 우리 자빠질 때 짚고 일어날 바닥도 없이 푹푹 빠져들기만 하고, 뒤집힌 풍뎅이처럼 비극이 필름처럼 돌아갈 때 잡아줄 손목도 없이 절망이 개흙을 자꾸만 게워낼 때 오욕이 지붕을 덮고 발목을 지우고 애원하는 눈빛을 꺼트리는데 너무 조여 헛돌아가는 나사못처럼 악, 악 소리조차 나지 않는 오늘 속으로 누가 버둥거리고, 누가 밀지 않아도 미끄러운 봄풀에 내일의 비탈에 저기 또 누가 자빠지고 있는데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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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히 다만 비스듬히

 

 

장옥관

 

 

하루를 비스듬히 걸었다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했다 그리운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가을이었다 슬픔이 우니 기쁨도 따라 울었다 감정이 안개처럼 퍼져 모든 게 모호했다 안개에게 발목을 물리고 싶었으나 눈곱 낀 눈으로 헐떡이며 엎드린 안개에게 먹이를 던져줄 순 없었다 가을이었다 비스듬한 햇살 식물들은 소멸을 향해 몸을 말리고 있었다 모서리에 찔리고 싶었으나 모서리조차 없었다 손을 잡고 싶었으나 손목이 없었다 손잡이가 없는 하루 비스듬히 걸어갈 뿐이었다 언덕 지나 내리막길을 향해 비스듬히 다만 비스듬히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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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가 문학동네 시인선으로 출간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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