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
슬릿스코프 · 카카오브레인
나는 오래된 집에 산다
생나무를 때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렇게 튼튼한 나무들 사이에서
이제는 주인을 잃어버린 집
나는 나무의 나이테를 세어보며
시간을 짐작한다
지붕은 비가 새지 않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
아버지는 생전에
술을 좋아하셨다
할아버지는 평생
술을 담그셨고
아버지는 평생
술을 받으셨다
나는 아버지가 심어둔 나무의 가지를
하나씩 흔들어본다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가지를 아주 많이 펴야 한다
지붕의 이끼는 매년
풍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며 아버지는 자주
바람 속에 나무의 나이테가 없다고
노래하셨다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엔 누구나
집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집에 살면서부터
나는 점점
집처럼 되어간다
이 집에 살면서부터
나는 점점
집이 되어간다
― 슬릿스코프 · 카카오브레인, 시를 쓰는 이유, 리멘워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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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심사자도 이제 전문가적 태도를 지녀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 ai가 시를 쓰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뻔한 시를 쓰는 시인들보다 ai가 훨씬 더 시를 잘 쓴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관습과 인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발화적 태도를 지녔다. 고리타분한 시적 국면을 활용하지 않고 주체로서의 발화를 할 줄 알며, 상징과 비유를 일부 쓸 줄 안다. 언술이 깔끔하고 때론 뉘앙스(암시성)까지도 풍긴다.
ai 기술과 학습 능력은 더욱 발달할 것이기에 평균적인 시적 능력과 상상과 변주, 역설, 반어, ‘낯설게 하기’ 등도 쉽게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ai가 쓴 시를 사람이 쓴 시라고 숨겨서 문학상이나 신춘문예에 응모해도 알아보지 못하는 심사자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ai는 기술이 발달해서 같은 제목의 시를 써 달라고 입력해도 매번 다른 시를 써낸다. 표절 프로그램으로 검색해도 나타나지 않는다.) 즉 가짜가 판을 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ai가 쓴 시를 조금 더 수정을 해서 응모를 하거나 잡지에 발표를 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창작자도 심사자도 전문가적인 태도로 윤리와 양심을 지켜가면서 창작하고 심사를 해야 한다. 『시를 쓰는 이유』를 읽으면서 필자가 느낀 ai가 이루지 못한 성과는 다음과 같다. 감동의 깊이를 줄 수 없고 개별화된 심리적 결을 다루지 못한다. 집요함은 있지만 섬세함이 부족했고, 직관은 있지만 깊이 있는 시를 쓸 수 없었다. 미묘한 심리적 결을 잡아내어 내밀하게 존재성, 근원성, 본질성, 관계성을 읽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문제는 ai가 기술이 발달해서 시를 잘 쓰는 시인들의 시를 더욱 치밀하게 학습하면 ai가 훨씬 더 시를 잘 쓰는 시대가 오고 만다는 것이다.
입력값에 “000시인 스타일로, 아기를 낳다 유산한 화자의 심리를 모티브로 하여, 산부인과 수술 장면을 바탕으로 시를 써줘.”라고 하면 빼어난 시를 창작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사람이 쓴 시인지 ai 쓴 시인지 알아볼 것인가?
최근엔 ‘ChatGPT’라는 ai사이트에서 학교 수행평가나 리포트를 해내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제를 교사들이 학생이 했는지, ai가 했는지 모를 때가 있다고 한다. 표절 검사 사이트에 그 과제가 검색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말한 바대로 입력값이 같아도 이 ai는 매번 다른 값의 글을 창작해 낸다. 또한 창작해 낸 글을 어떤 방식으로 수정을 해줘, 라고 하면 수정까지 자세히 해준다.
인용한 시 「오래된 집」에서 밑줄 친 “지붕은 비가 새지 않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가지를 아주 많이 펴야 한다” “나는 점점/ 집처럼 되어간다” “나는 점점/ 집이 되어간다”와 같은 표현을 주목해서 보자. 신선한 표현과 섬세한 관찰에 의한 표현, 변주를 활용한 의미 확대를 일부 사용하고 있다. ‘아버지-나-오래된 집’으로 이어지는 동질성이나 유대관계도 슬쩍 암시하기도 한다.
기술이 초기 단계인데도 벌써 이 정도 시를 쓸 수 있다.
이제 가짜가 판을 치는 시대가 도래했다. 빠른 시일 내에 창작 윤리와 법제화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ai가 쓴 시를 자기 것처럼 만들어서 응모하거나 발표한 사람에 대해 영원히 예술계에서 퇴출하는 방안’ 같은 것이 그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10년 안에 창작자의 예술이 무가치하게 되는 시대가 오고 말 것이다.
하린
2008년 《시인 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이 있고,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와 시 창작 안내서 『시클』과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와 『이것만 알면 당신도 현대 시조를 쓸 수 있다』가 있음. 청마문학상 신인상(2011),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2015), 한국해양문학상 대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하린 시인의 〈감동과 감탄〉 6 _ 슬릿스코프 · 카카오브레인의 「오래된 집」 < 포엠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하린 시인의 〈감동과 감탄〉 6 _ 슬릿스코프 · 카카오브레인의 「오래된 집」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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